Saturday, November 28, 2015

반딧불이의 무덤(火垂るの墓)을 보았다. 어떻게 이 게 일본 미화로 보일 여지가 있는가?

반딧불이의 무덤(반딧불의 묘라고도 번역하는 듯) 1988년 지브리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오래된 영화이다보니 예전부터 제목은 들었지만, 별로 제목이 재미없다보니 영화도 재미없을 것같아서 안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모 사이트에서 가장 슬픈 애니메이션 순위를 봤는데 이 작품이 1위여서, 봐 보았다.

줄거리는 간단히 말하자면, 일본과 미국의 전쟁이 거의 끝나갈 때 쯤인 1945년 경의 일본의 한 마을에서, 아버지가 전쟁터에 나가고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과 같이 살던 소년이, 폭격으로 어머니가 죽자, 여동생과 무슨 버려진 탄광같은 곳에서 둘이서 살다가, 여동생이 영양실조 등으로 인한 병으로 죽는다는 것이다.

배경이 배경이니만큼, 분명히 한국 사람이면 "군국주의 미화" 뭐 이런 걸 예상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영화를 보기 시작할 때 쯤부터 들었다. 군국주의 미화가 나올 거라고 예상한 게 아니고, 그렇게 오해를 받을 게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국내 리뷰를 찾아 몇 개 대강 읽어 보았다. 리뷰어 자체가 그런 생각을 가진 경우는 안 보였는데, 리뷰의 내용에 한국 사람들이 그런 인상을 받는 경우가 있다는 식의 내용이 있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이, 폭격 직후 사람이 죽고 집이 불타고 있는 과정에서 한 40~50대 쯤 되어 보이는 공무원이나 경찰같은 (제복을 입고 있으니) 남자가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는 장면, 폭격으로 민간인들이 죽고 마을이 폐허가 되는 장면이 많이 나와 미군이 나쁜 놈이라는 인식을 심어 준다는 것,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가 타고 간 해군함이 졌다는 소식을 듣고 주인공 소년이 "대일본 제국이 졌느냐"고 묻고 우는 장면 등이다.

솔직히 말해, 저런 걸 보고 군국주의 미화나 일본 제일주의 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나는 그 사람이야말로 반일 교육과 한국의 국수주의에 세뇌되어 제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는 남자를 보고 "아 천황이 정말 대단하신 분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본 것은, 천황 미화와 일본의 국수주의에 세뇌되어 저 상황에서도 천황 만세를 외치는 불쌍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군사 시설 타격의 도중에 부수 피해로 민간인이 죽는 것은 요즘도 일어나지만, 저렇게 대놓고 민간인 마을을 공습하는 게 당시로는 전쟁 범죄가 아니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 폭탄 공격을 위키피디아에서 검색해 보니, 13만 명이 죽었고, 대부분 민간인이었다고 한다. 아마 군사 시설에 원자 폭탄을 떨어뜨린 게 아니고, 그냥 사람이 사는 도시에 떨어뜨렸나 보다. 전쟁의 명분으로는 분명히 일본이 잘못되었고, 미국이 옳은 편이었다. 그리고 일본군도 적국의 민간인들을 많이 죽였을 테니, "미군은 나쁜 놈, 일본군은 우리 편"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니다. 내가 느낀 것은, 위의 정치가들이 정한 싸움으로 밑의 국민들은 자의가 아니게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라는 것과, 사람들이 폭격에 맞아 죽는 것을 보며 어느 편이 되었든 전쟁을 하면 군인은 나쁜 놈이 된다는 것이었다. 폭격으로 죽은 민간인이 수 십 만 명은 될 텐데, 그들 중 폭격에 맞아 죽어도 쌀 만큼 나쁜 사람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저 때 죽은 사람들 중 대부분은 일본 천황이 세계를 정복하는 것과 그냥 자기 가족들이 평안하게 사는 것 중 두 개를 고르라고 한다면 후자를 고르지 않았을까? 폭격을 하는 미군들도 자기가 죽이는 사람들의 비참한 모습은 모르고, 정치가들로부터 "미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 이런 의식에 세뇌되어 목숨 걸고 전쟁에 참가하고 있었을 불쌍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일본 제국이 졌느냐고 묻는 장면... 이 건 누가 봐도, 정말 천황을 위시한 대일본제국이 좋아서 제국이 졌느냐고 묻는 게 아니고, 자기 아버지가 참가한 군이 졌느냐, 즉 자기 아버지가 졌느냐, 즉, 자기 아버지가 죽었느냐 하는 질문이다. 영화의 내래이션이 한 말이 아니다. 영화에 나오는 1945년의 소년이 한 말이다. 1945년의 일본 소년이, 그럼 미국 편일까? 미국이 옳고 일본이 나쁜 전쟁을 일으켰다는 걸 알았을까? 당연히 모를 것이다. 그 소년이 아는 세상은 일본이 다였을 테니, 일본이 미국에 이기기를 바라는 건 당연한 것이다. 아무리 봐도 감독이 "대일본 제국이 이겨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볼 수가 없다. 그렇게 보인다면 그 사람의 정신이 이상한 것으로 밖에 생각이 안 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일본의 국수주의를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것같다. 그러면서 정작 우리 나라 자체의 국수주의는 깨닫지 못한다. 남이 하면 국수주의이고, 우리가 하면 애국이고 뭐 그런 거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생각이나 행동들이 좀 객관적으로 보면 일본 이상으로 더 국수주의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유시민 의원인가, 국민 의례에 쓰이는 문구가 파시스트적이라고 했다가 전국민한테서 욕을 얻어 먹고 취소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유시민 의원의 생각에 동감한다. "나는 자랑스러운 조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아니 어떻게 이런 부끄러운 문구가 있을 수가 있는지? 이건 대어놓고, 국가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라는 내용이다. 저 문구에서 "조국"을 "대일본"으로 바꾸고 일본에서 초등학생들에게 "나는 자랑스러운 대일본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이런 문구를 아침마다 말하게 한다는 사실이 한국에 알려졌다고 생각해 보자. 분명 KBS 뉴스에 "일본 제국주의 부활", "군국주의 세뇌 교육" 뭐 이런 내용으로 크게 보도될 거다. 하지만, 일본이 아니라 우리가 하니까 애국이다.

도대체 조국이라는 게 뭔가? 왜 자꾸 국가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게 당연한 것인 듯 아이들에게 가르치는가? 국가라는 게 인간의 위해 필수의 존재인가? 아니다.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존재하면 그만이다. 국가는 우리가 필요에 따라 무슨 무슨 동호회에 가입하듯, 우리의 필요에 의해 가입한 모임일 뿐이다. 추상적인 존재이다. 구체적으로는 국가라고 하면 정부와 그 조직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정부와 그 조직을 지키기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인데, 사실 그런가? 나는 내 가족이 죽는 것보다 대한민국 정부가 무너지고 다른 정부가 되는 걸 고르겠다. 나와 내 가족이 죽는다면 그까짓 정부가 누가 되든 무슨 상관이며, 큰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다. 지도자가 바뀐다고 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국가라는 것 자체가 없어진다고 한들, 내가 죽는 것보다는 낫다.

나는 반딧불이의 무덤을 보면서, 개인 위에 군림하는 국가라는 이데올로기로 인해 파괴되고 불쌍하게 죽어간 가족을 보았을 뿐이다. 차라리 국가가 없었더라면, 그냥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과 아무도 없는 산 속에서 살았더라면 저 소년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Wednesday, November 11, 2015

슬견설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도덕 상대 주의

고등학교 때인가 중학교 때인가 교과서에서 "슬견설"이라는 것을 읽었다. 다들 알겠지만 내용은, 두 사람이 앉아서 얘기를 하는데, 한 사람이 며칠 전에 마을 사람들이 개를 때려 죽여 먹는 걸 보고 불쌍해서 다시는 개고기를 안 먹겠다고 결심했다고 하자, 다른 사람이, 자기는 며칠 전에 어떤 사람이 옷에서 이를 잡아 태워 죽이는 걸 보고 불쌍해서 다시는 이를 안 잡겠다고  생각했다고 대꾸하는 것이다. 지은 이가 말하고자 한 것은, 개나 기생충이나 같은 생명이니까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보면 같은 생명이 아니냐 뭐 즉, 인간의 편견을 가지지 말고 객관적으로 보라 뭐 이런 거였다. 선생님도 그렇게 설명했던 것 같고 아마 시험에 나왔을 때 답도 그 거였을 거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할 말이 많다.

얼마 전에 구글에서 개 사진을 검색하다가 끔찍한 걸 보았다. 개 귀에 무슨 자잘한 것들이 잔뜩 박혀 있는 것이었는데, 합성 공포 사진인가 싶어서 눌러 봤더니 그 게 아니고 개 귀에 진드기 (tick)가 잔뜩 박혀 있는 것이었다. 개 벼룩은 말로 들어 봤는데, 개 진드기는 잘 모르고 있어서 검색을 해 봤더니 아주 광범위하고 흔한 기생충인 것 같다. 주로 개 귀 쪽에 들러붙어 피를 빨고 개가 죽을 때까지 안 떨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우연인지 사실 얼마 전에 distemper라고 하는 개 바이러스 비디오도 봤었다. 그 때, 익히 알고 있던 광견병 (rabies)도 검색해 보니, 개나 인간의 뇌에 잠입해 거의 100% 숙주를 죽이는 생각보다  무서운 바이러스였다.

개를 괴롭히는 이, 진드기, 벼룩, 디스템퍼 바이러스, 광견병 바이러스... 모두 생명이다. 물론 바이러스는 생명이 아닌 걸로 볼 수도 있지만, 그런 바이러스들도 우리 인간이나 개와 같은 RNA 구조를 가지고 있는 걸로 봐서 우리와 공동 조상을 가진 것은 분명하며, 생명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인간이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른 것일 뿐이다.

그러면 저 것들도 다 생명이니 개와 같은 취급을 해 줘야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슬견설의 주장에 따르면 개는 큰 동물이까 좋아하고 이는 해충이니까 싫어하는 것은 인간의 편견이라는 것인데, 나는 여기에 반대한다. 절대적인 도덕의 기준은 없으며, 도덕의 기준은 상대적이고,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도덕 기준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으며, 그 기준으로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는 게 나의 주장이다.

도덕이라는 것은 인간의 사고 속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이다. 우리가 알기로 인간 외에 도덕이라는 개념을 가진 존재는 없다. 나는 신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신이 정말 있다고 한들, 신의 도덕은 그 신의 주관적 도덕일 뿐이다. 절대적이라는 것은 성립할 수 없다. 신의 도덕이 절대 도덕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그 주장을 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의견인 것이며, 그 것을 수학적 증명처럼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없다.

뭔가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도덕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 대부분의 인류의 주관적 생각에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그 주관적 생각의 공통점이 객관적인 것으로 보이는 착시현상일 뿐이다. 예를 들어, "죄 없는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라는 것은 마치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도덕"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것은 인류 진화의 과정에서 주변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일 경우 집단이 성립할 수 없기에 그렇게 하지 않는 개념이 우리 뇌에 있고,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주관적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미래에 대다수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서 절대적인 것으로 보일 뿐이다. 만일 인류 이외의 지적 생명체가 우주에서 발견되었는데, 그들의 도덕은 인간을 보이는 대로 잡아 죽이는 것이라고 한다면, 무슨 기준으로 "죄 없는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가 절대적인 도덕이라고 그 우주 생명체에게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객관적이고 절대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도덕은 아무 것도 없다. 모두 상대적인 것이다.

절대 다수 사람에게, 꽃은 예쁘게 보이고, 썩은 생선은 끔찍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동물에게는 꽃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썩은 생선은 번식을 위한 중요한 도구이기 때문에 썩은 생선이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뭐 어차피 꽃이나 썩은 생선이나 모두 우리 인류가 지구에 나타나기 전부터 있던 존재이고, 예쁘다/끔찍하다는 인간의 뇌가 만들어 낸 것일 뿐 객관적인 사실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 개념이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고 다른 동물에게는 썩은 생선이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으니, 우리 인류도 객관적이 되어서 꽃과 썩은 생선을 같이 아름답게 보려고 노력해야 할까? 왜 그래야 할까?

이동 속도는 상대적이다. 이동 속도를 측정하려면 이동하는 물체에 대항해 기준이 되는 물체가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기준 물체에 절대적인 게 있을 수가 없다. 사람이 시속 10 킬로미터로 달린다고 하면, 이 때 기준은 지구의 땅이다. 하지만 반드시 땅을 기준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땅이 사람의 속도를 측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땅을 기준으로 삼는 건 그냥 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주관적 편의사항이 아닌가? 지구는 일 년에 한 번 씩 태양 주위를 돈다. 초당 30 킬로미터라는 엄청난 속도이다. 시속 10킬로미터로 달리는 사람은, 태양을 기준으로 본다면 시속 수 십 만 킬로미터로 달리고 있는 게 된다. 그리고 우리 은하계를 기준으로 본다면 시속 수 십 억 킬로미터 쯤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 게 되지 않을까? 이렇게 속도라는 것에 절대적 기준이 없을 때, 우리에게 계산하기 편리하고 직관적인 땅(지구 표면)을 두고 굳이 다른 기준으로 생각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우리 대부분의 인간의 생각으로 봤을 때, 개는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이로운 동물이고, 이나 벼룩 등은 우리의 피를 빨고, 병을 옮기고, 우리를 죽이는 해로운 동물이다. 개나 이가 모두 같은 동물인 건 맞다. 하지만 생명의 가치가 높다/낮다라는 것 자체가 도덕이고 이런 도덕은 절대적인 게 있을 수가 없다. 모든 지적 사고 능력을 가진 존재가 서로 다른 도덕 기준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우리 인간의 도덕 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가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의 가치를 우리에게 해를 주는 존재의 가치보다 더 높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개가 이보다 절대적으로 가치가 높다"고 선언한다면 이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인 이상 "인간에게 있어 개가 이보다 가치가 높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기준으로밖에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인간에게 있어"라는 부분을 매번 말할 필요가 없다. 그냥 속도라고 말하면 땅 기준이 것이 암묵적으로 이해되어 있듯이, "개의 가치가 이보다 높다"라고만 해도 이 건 인간의 기준으로 그렇다라는 것이 암묵적으로 이해되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