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December 08, 2015

구글 카드보드 사지 말 것. 가상 현실 (VR)은 아직 먼 것 같다.

서론

삼성이 Oculus와 제휴해서 갤럭시 S6/Note 5에 연결해 가상 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Gear VR 신모델을 최근 출시했고, 꽤 인기가 있는 것 같다. 게다가 몇 달 후면, 몇 년을 질질 끌던 Oculus Rift가 드디어 발매된다. 나는 갤럭시 S6/Note 5가 없기 때문에, 맛보기 용도로 구글 카드보드를 구매해 보았다.

일단 내가 가진 스마트 폰은 1920x1080 해상도에 펜타일 디스플레이를 가지고 있다. 카드보드는 싸게 산 것이기 때문에 품질이 좋을 것은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도 재미는 있을 것 같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미는 없고 한 30분도 안 되어 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여기에는 물론 카드보드 + 펜타일 디스플레이라는 문제도 있겠지만, 지금의 가상 현실 기술 자체의 근본적 문제도 있고 소프트웨어 문제도 있다.

본론

1. 스마트 폰으로 보는 가상 현실 자체의 문제점

스마트 폰은 가상 현실을 위한 전용 기계가 아니다. 그러므로 시스템 인터페이스가 가상 현실을 위해 만들어져 있지 않다. 게다가 가상 현실 앱조차도 가상 현실 부분이 시작하기 전까지, 시작이나 설정 부분 등이 일반 스마트 폰 UI로 되어 있다. 이 게 무슨 소리이냐면, 홈 화면에서 가상 현실 앱을 시작하거나, 시스템 볼륨 조절, 시스템 오리엔테이션 설정, 가상 현실 앱 시작, 가상 현실 앱 설정, 심한 경우 가상 현실 앱 조작을 하기 위해서 카드보드에서 전화기를 꺼내어야 한다. 즉, 매번 조작할 때마다 전화기를 꺼내어 조작하고 다시 카드보드에 넣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이 건 도저히 불편해서 가상현실을 볼 마음이 안 들게 만든다.


2. 카드보드 등 도구의 문제점

이 문제는 고급 VR 도구에서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급 도구는 안 써 봐서 그냥 카드보드 기준으로 말하자면, 전화기 테두리와 카드보드 테두리 등이 다 보인다. 전혀 화면의 내용이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냥 전망대에서 동전 넣고 보는 망원경 속 화면 정도의 느낌일 뿐이다.
그리고 지구는 먼지로 가득하다. 스마트 폰 화면, 카드보드 렌즈 등에 먼지가 있을 수밖에 없고 먼지를 닦아 낸다고 한들, 조작을 위해 스마트 폰을 꺼내 화면을 조작하면 다시 먼지가 붙는다. 이 먼지가 가상 현실 화면에서는 커다란 점이나 실 등으로 보여 시야를 방해한다.


3. 해상도와 성능의 한계

1080p의 펜타일 디스플레이는 평소에 픽셀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상 현실 도구로 보면 픽셀이 보일 뿐 아니라, 보기 싫은 펜타일 매트릭스까지 화면 전반에 선명하게 보인다. 예전 신문에서 사진을 자세히 보면 대각선 점들이 가득한 것처럼 보였는데, 마치 그런 느낌이다. 화질이 안 좋아서 가상 현실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몇 달 뒤에 나올 Oculus도 양쪽 눈의 해상도를 합치면 1080p 정도라고 알고 있다. 과연 픽셀이 보이지 않을까? 보일 것 같다.

그리고 게임이나 입체 렌더링 등에서 딜레이가 느껴진다. 이 점은 S6나 Oculus 등의 더 좋은 CPU를 가진 제품에서는 개선되었을 수도 있다.


4. 소프트웨어의 한계

앱 스토어에서 도시를 가상 현실로 보여 준다는 앱을 받아 보았다. 어떻게 보이느냐면, 내가 360도 돔(dome) 안에 들어가 있고, 그 돔의 벽면이 도시의 사진으로 칠해져 있는 느낌이었다. 전혀 내가 그 도시에 있다는 착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내 주변이 사진으로 덮여 있다는 느낌이었다.  구글 스트리트 뷰의 가상현실도 그런 비슷한 느낌이었다.
구글 카드보드 앱의 가상 현실 비디오에 들어가면 결국 유튜브에서 360도 비디오를 찾아 보여 주는데, 이 인터페이스가 가상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비디오가 시작될 때까지 카드보드에서 전화기를 꺼내어 조작해야 한다.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5. 가상 현실 기술 자체의 한계

적어도 내가 알기로 Oculus든 Gear VR이든 결국 그냥 양 눈에 서로 다른 이미지 두 개를 보여 주는 것이다. 문제는 이 게 근본적으로 현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사람이 눈동자를 움직이거나 초점을 조절해 보는 곳을 조절할 수 있다. 그런데 카드보드에서 보니 이 입체점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할 수가 없다. 즉,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게 아니고, 내게 보이는 것을 수동적으로 보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실제의 사물을 보는 느낌이 드는 게 아니고, 기껏해야 극장에서 보던 3D 영화 화면을 보는 것 비슷한 느낌일 뿐이었다.

정말 현실처럼 보이려면 가상 현실 기기가 사람의 눈동자를 추적하고, 초점을 추적(이 건 가능한지 모르겠다, 사람 눈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해서 거기에 맞는 이미지를 보여 주어야 할 것인데, 아마 이 건 당분간 불가능할 것 같다.

결론

정말 현실이라는 착각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가상 현실을 바란다면 카드보드는 물론이고 곧 나올 Oculus도 그 기대를 만족시켜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특히 카드보드는 거의 정상적 사용이 불가능한 제품으로, 그냥 재미로 한 번 보려면 모를까, 가상 현실 앱을 계속 사용하겠다고 사는 짓은 무모하다고 생각된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나오 듯이, 우리 인간이 현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가상 현실을 체험하는 것은 내가 죽기 전에 가능할까?

Saturday, November 28, 2015

반딧불이의 무덤(火垂るの墓)을 보았다. 어떻게 이 게 일본 미화로 보일 여지가 있는가?

반딧불이의 무덤(반딧불의 묘라고도 번역하는 듯) 1988년 지브리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오래된 영화이다보니 예전부터 제목은 들었지만, 별로 제목이 재미없다보니 영화도 재미없을 것같아서 안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모 사이트에서 가장 슬픈 애니메이션 순위를 봤는데 이 작품이 1위여서, 봐 보았다.

줄거리는 간단히 말하자면, 일본과 미국의 전쟁이 거의 끝나갈 때 쯤인 1945년 경의 일본의 한 마을에서, 아버지가 전쟁터에 나가고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과 같이 살던 소년이, 폭격으로 어머니가 죽자, 여동생과 무슨 버려진 탄광같은 곳에서 둘이서 살다가, 여동생이 영양실조 등으로 인한 병으로 죽는다는 것이다.

배경이 배경이니만큼, 분명히 한국 사람이면 "군국주의 미화" 뭐 이런 걸 예상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영화를 보기 시작할 때 쯤부터 들었다. 군국주의 미화가 나올 거라고 예상한 게 아니고, 그렇게 오해를 받을 게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국내 리뷰를 찾아 몇 개 대강 읽어 보았다. 리뷰어 자체가 그런 생각을 가진 경우는 안 보였는데, 리뷰의 내용에 한국 사람들이 그런 인상을 받는 경우가 있다는 식의 내용이 있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이, 폭격 직후 사람이 죽고 집이 불타고 있는 과정에서 한 40~50대 쯤 되어 보이는 공무원이나 경찰같은 (제복을 입고 있으니) 남자가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는 장면, 폭격으로 민간인들이 죽고 마을이 폐허가 되는 장면이 많이 나와 미군이 나쁜 놈이라는 인식을 심어 준다는 것,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가 타고 간 해군함이 졌다는 소식을 듣고 주인공 소년이 "대일본 제국이 졌느냐"고 묻고 우는 장면 등이다.

솔직히 말해, 저런 걸 보고 군국주의 미화나 일본 제일주의 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나는 그 사람이야말로 반일 교육과 한국의 국수주의에 세뇌되어 제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는 남자를 보고 "아 천황이 정말 대단하신 분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본 것은, 천황 미화와 일본의 국수주의에 세뇌되어 저 상황에서도 천황 만세를 외치는 불쌍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군사 시설 타격의 도중에 부수 피해로 민간인이 죽는 것은 요즘도 일어나지만, 저렇게 대놓고 민간인 마을을 공습하는 게 당시로는 전쟁 범죄가 아니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 폭탄 공격을 위키피디아에서 검색해 보니, 13만 명이 죽었고, 대부분 민간인이었다고 한다. 아마 군사 시설에 원자 폭탄을 떨어뜨린 게 아니고, 그냥 사람이 사는 도시에 떨어뜨렸나 보다. 전쟁의 명분으로는 분명히 일본이 잘못되었고, 미국이 옳은 편이었다. 그리고 일본군도 적국의 민간인들을 많이 죽였을 테니, "미군은 나쁜 놈, 일본군은 우리 편"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니다. 내가 느낀 것은, 위의 정치가들이 정한 싸움으로 밑의 국민들은 자의가 아니게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라는 것과, 사람들이 폭격에 맞아 죽는 것을 보며 어느 편이 되었든 전쟁을 하면 군인은 나쁜 놈이 된다는 것이었다. 폭격으로 죽은 민간인이 수 십 만 명은 될 텐데, 그들 중 폭격에 맞아 죽어도 쌀 만큼 나쁜 사람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저 때 죽은 사람들 중 대부분은 일본 천황이 세계를 정복하는 것과 그냥 자기 가족들이 평안하게 사는 것 중 두 개를 고르라고 한다면 후자를 고르지 않았을까? 폭격을 하는 미군들도 자기가 죽이는 사람들의 비참한 모습은 모르고, 정치가들로부터 "미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 이런 의식에 세뇌되어 목숨 걸고 전쟁에 참가하고 있었을 불쌍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일본 제국이 졌느냐고 묻는 장면... 이 건 누가 봐도, 정말 천황을 위시한 대일본제국이 좋아서 제국이 졌느냐고 묻는 게 아니고, 자기 아버지가 참가한 군이 졌느냐, 즉 자기 아버지가 졌느냐, 즉, 자기 아버지가 죽었느냐 하는 질문이다. 영화의 내래이션이 한 말이 아니다. 영화에 나오는 1945년의 소년이 한 말이다. 1945년의 일본 소년이, 그럼 미국 편일까? 미국이 옳고 일본이 나쁜 전쟁을 일으켰다는 걸 알았을까? 당연히 모를 것이다. 그 소년이 아는 세상은 일본이 다였을 테니, 일본이 미국에 이기기를 바라는 건 당연한 것이다. 아무리 봐도 감독이 "대일본 제국이 이겨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볼 수가 없다. 그렇게 보인다면 그 사람의 정신이 이상한 것으로 밖에 생각이 안 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일본의 국수주의를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것같다. 그러면서 정작 우리 나라 자체의 국수주의는 깨닫지 못한다. 남이 하면 국수주의이고, 우리가 하면 애국이고 뭐 그런 거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생각이나 행동들이 좀 객관적으로 보면 일본 이상으로 더 국수주의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유시민 의원인가, 국민 의례에 쓰이는 문구가 파시스트적이라고 했다가 전국민한테서 욕을 얻어 먹고 취소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유시민 의원의 생각에 동감한다. "나는 자랑스러운 조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아니 어떻게 이런 부끄러운 문구가 있을 수가 있는지? 이건 대어놓고, 국가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라는 내용이다. 저 문구에서 "조국"을 "대일본"으로 바꾸고 일본에서 초등학생들에게 "나는 자랑스러운 대일본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이런 문구를 아침마다 말하게 한다는 사실이 한국에 알려졌다고 생각해 보자. 분명 KBS 뉴스에 "일본 제국주의 부활", "군국주의 세뇌 교육" 뭐 이런 내용으로 크게 보도될 거다. 하지만, 일본이 아니라 우리가 하니까 애국이다.

도대체 조국이라는 게 뭔가? 왜 자꾸 국가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게 당연한 것인 듯 아이들에게 가르치는가? 국가라는 게 인간의 위해 필수의 존재인가? 아니다.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존재하면 그만이다. 국가는 우리가 필요에 따라 무슨 무슨 동호회에 가입하듯, 우리의 필요에 의해 가입한 모임일 뿐이다. 추상적인 존재이다. 구체적으로는 국가라고 하면 정부와 그 조직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정부와 그 조직을 지키기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인데, 사실 그런가? 나는 내 가족이 죽는 것보다 대한민국 정부가 무너지고 다른 정부가 되는 걸 고르겠다. 나와 내 가족이 죽는다면 그까짓 정부가 누가 되든 무슨 상관이며, 큰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다. 지도자가 바뀐다고 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국가라는 것 자체가 없어진다고 한들, 내가 죽는 것보다는 낫다.

나는 반딧불이의 무덤을 보면서, 개인 위에 군림하는 국가라는 이데올로기로 인해 파괴되고 불쌍하게 죽어간 가족을 보았을 뿐이다. 차라리 국가가 없었더라면, 그냥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과 아무도 없는 산 속에서 살았더라면 저 소년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Wednesday, November 11, 2015

슬견설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도덕 상대 주의

고등학교 때인가 중학교 때인가 교과서에서 "슬견설"이라는 것을 읽었다. 다들 알겠지만 내용은, 두 사람이 앉아서 얘기를 하는데, 한 사람이 며칠 전에 마을 사람들이 개를 때려 죽여 먹는 걸 보고 불쌍해서 다시는 개고기를 안 먹겠다고 결심했다고 하자, 다른 사람이, 자기는 며칠 전에 어떤 사람이 옷에서 이를 잡아 태워 죽이는 걸 보고 불쌍해서 다시는 이를 안 잡겠다고  생각했다고 대꾸하는 것이다. 지은 이가 말하고자 한 것은, 개나 기생충이나 같은 생명이니까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보면 같은 생명이 아니냐 뭐 즉, 인간의 편견을 가지지 말고 객관적으로 보라 뭐 이런 거였다. 선생님도 그렇게 설명했던 것 같고 아마 시험에 나왔을 때 답도 그 거였을 거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할 말이 많다.

얼마 전에 구글에서 개 사진을 검색하다가 끔찍한 걸 보았다. 개 귀에 무슨 자잘한 것들이 잔뜩 박혀 있는 것이었는데, 합성 공포 사진인가 싶어서 눌러 봤더니 그 게 아니고 개 귀에 진드기 (tick)가 잔뜩 박혀 있는 것이었다. 개 벼룩은 말로 들어 봤는데, 개 진드기는 잘 모르고 있어서 검색을 해 봤더니 아주 광범위하고 흔한 기생충인 것 같다. 주로 개 귀 쪽에 들러붙어 피를 빨고 개가 죽을 때까지 안 떨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우연인지 사실 얼마 전에 distemper라고 하는 개 바이러스 비디오도 봤었다. 그 때, 익히 알고 있던 광견병 (rabies)도 검색해 보니, 개나 인간의 뇌에 잠입해 거의 100% 숙주를 죽이는 생각보다  무서운 바이러스였다.

개를 괴롭히는 이, 진드기, 벼룩, 디스템퍼 바이러스, 광견병 바이러스... 모두 생명이다. 물론 바이러스는 생명이 아닌 걸로 볼 수도 있지만, 그런 바이러스들도 우리 인간이나 개와 같은 RNA 구조를 가지고 있는 걸로 봐서 우리와 공동 조상을 가진 것은 분명하며, 생명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인간이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른 것일 뿐이다.

그러면 저 것들도 다 생명이니 개와 같은 취급을 해 줘야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슬견설의 주장에 따르면 개는 큰 동물이까 좋아하고 이는 해충이니까 싫어하는 것은 인간의 편견이라는 것인데, 나는 여기에 반대한다. 절대적인 도덕의 기준은 없으며, 도덕의 기준은 상대적이고,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도덕 기준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으며, 그 기준으로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는 게 나의 주장이다.

도덕이라는 것은 인간의 사고 속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이다. 우리가 알기로 인간 외에 도덕이라는 개념을 가진 존재는 없다. 나는 신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신이 정말 있다고 한들, 신의 도덕은 그 신의 주관적 도덕일 뿐이다. 절대적이라는 것은 성립할 수 없다. 신의 도덕이 절대 도덕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그 주장을 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의견인 것이며, 그 것을 수학적 증명처럼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없다.

뭔가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도덕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 대부분의 인류의 주관적 생각에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그 주관적 생각의 공통점이 객관적인 것으로 보이는 착시현상일 뿐이다. 예를 들어, "죄 없는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라는 것은 마치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도덕"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것은 인류 진화의 과정에서 주변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일 경우 집단이 성립할 수 없기에 그렇게 하지 않는 개념이 우리 뇌에 있고,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주관적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미래에 대다수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서 절대적인 것으로 보일 뿐이다. 만일 인류 이외의 지적 생명체가 우주에서 발견되었는데, 그들의 도덕은 인간을 보이는 대로 잡아 죽이는 것이라고 한다면, 무슨 기준으로 "죄 없는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가 절대적인 도덕이라고 그 우주 생명체에게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객관적이고 절대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도덕은 아무 것도 없다. 모두 상대적인 것이다.

절대 다수 사람에게, 꽃은 예쁘게 보이고, 썩은 생선은 끔찍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동물에게는 꽃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썩은 생선은 번식을 위한 중요한 도구이기 때문에 썩은 생선이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뭐 어차피 꽃이나 썩은 생선이나 모두 우리 인류가 지구에 나타나기 전부터 있던 존재이고, 예쁘다/끔찍하다는 인간의 뇌가 만들어 낸 것일 뿐 객관적인 사실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 개념이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고 다른 동물에게는 썩은 생선이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으니, 우리 인류도 객관적이 되어서 꽃과 썩은 생선을 같이 아름답게 보려고 노력해야 할까? 왜 그래야 할까?

이동 속도는 상대적이다. 이동 속도를 측정하려면 이동하는 물체에 대항해 기준이 되는 물체가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기준 물체에 절대적인 게 있을 수가 없다. 사람이 시속 10 킬로미터로 달린다고 하면, 이 때 기준은 지구의 땅이다. 하지만 반드시 땅을 기준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땅이 사람의 속도를 측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땅을 기준으로 삼는 건 그냥 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주관적 편의사항이 아닌가? 지구는 일 년에 한 번 씩 태양 주위를 돈다. 초당 30 킬로미터라는 엄청난 속도이다. 시속 10킬로미터로 달리는 사람은, 태양을 기준으로 본다면 시속 수 십 만 킬로미터로 달리고 있는 게 된다. 그리고 우리 은하계를 기준으로 본다면 시속 수 십 억 킬로미터 쯤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 게 되지 않을까? 이렇게 속도라는 것에 절대적 기준이 없을 때, 우리에게 계산하기 편리하고 직관적인 땅(지구 표면)을 두고 굳이 다른 기준으로 생각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우리 대부분의 인간의 생각으로 봤을 때, 개는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이로운 동물이고, 이나 벼룩 등은 우리의 피를 빨고, 병을 옮기고, 우리를 죽이는 해로운 동물이다. 개나 이가 모두 같은 동물인 건 맞다. 하지만 생명의 가치가 높다/낮다라는 것 자체가 도덕이고 이런 도덕은 절대적인 게 있을 수가 없다. 모든 지적 사고 능력을 가진 존재가 서로 다른 도덕 기준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우리 인간의 도덕 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가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의 가치를 우리에게 해를 주는 존재의 가치보다 더 높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개가 이보다 절대적으로 가치가 높다"고 선언한다면 이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인 이상 "인간에게 있어 개가 이보다 가치가 높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기준으로밖에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인간에게 있어"라는 부분을 매번 말할 필요가 없다. 그냥 속도라고 말하면 땅 기준이 것이 암묵적으로 이해되어 있듯이, "개의 가치가 이보다 높다"라고만 해도 이 건 인간의 기준으로 그렇다라는 것이 암묵적으로 이해되어 있기 때문이다.

Tuesday, September 08, 2015

사회 초년생, 집 보러 부동산 다닐 때 주의할 점

대학 입학이나 취직을 해서 원룸이나 빌라 등을 알아 보러 부동산에 갈 때 정말 조심해야 한다. 이 글의 요지를 종이에 적어서 부동산에 들어가기 전에 확실하게 마음에 새기고 들어가라, 안 그러면 어느 샌가 홀려서 실수를 하게 된다.

1. 부동산의 바람잡는 말을 모두 무시하라.

그냥 부동산이 하는 말은 다 무시하고 자기 생각만 가지고 봐라, 부동산이 마치 잘 안다는 듯이 이 집은 이 게 참 좋고, 저 게 참 좋고 이런 식으로 자랑을 하고, 특히 부동산 두 명이 팀을 이뤄 바람을 잡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실상은 대부분 그 부동산도 그 집에 오늘 처음 와 본 사람들이다. 요즘은 부동산들이 자기네들이 보는 인터넷 사이트 보고 찾아가지, 미리 집을 잘 알고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부동산이 이 집은 참 조용하고, 여기 사는 사람들도 다 조용한 사람들이다, 라고 하는 것 믿지 말라. 부동산 자기가 거기 살아 봤나? 그냥 하는 말이다.

2. 부동산이 말 걸 때 꼭 필요한 말 외에는 대답하지 말거나 적당히 넘겨라.

사람이란 게 이 것 저 것 말하다 보면 하지 않아야 할 말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부동산에게 부동산에게 이용당할 점을 말하게 된다. 부동산들은 언변의 대가이다. 당신의 기분을 맞춰 주기 위해서 온갖 사탕발린 말을 다 하게 되고, 당신이 여기에 넘어가 부동산과 괜히  나한테 친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면, 조건이 안 좋은 데도 그 부동산을 그냥 나오기 힘들어지고, 다른 부동산으로 가기 힘들어진다. 꼭 필요한 말만 하라.

3. 계약금을 걸 수 있는 돈을 가지고 가지 말라. (현금 카드 등)

언뜻 보면 되게 좋아 보여 막 계약을 하고 싶어지는 경우가 있다. 참아라. 어차피 내일 간다고 안 없어진다. 당장 그 자리에서 부동산의 온갖 감언이설을 듣다 보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돈이 아예 손에 없으면 돈을 가지러 집에 가서 내일 와야 하고, 그러면 그 동안 판단력이 되돌아 오며, 아까 안 보였던 단점과 문제점들이 보이게 되어, 실수를 방지할 수 있다.

4. 화장실의 창문은 필수이다.
부동산들이 괜찮다고 하는데, 살아 봐라, 그 냄새와 곰팡이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환풍기 있어도 소용 없다. 환풍기는 공기 발생기가 아니다. 공기를 내 보내기만 하는 거지. 그런데 창문이 없는데 공기가 어디에서 들어온단 말인가?

5. 불 끄고 봐라.
부동산이 들어가면서 방과 주방의 불을 모두 켜는 경우가 있다. 불을 끄고 얼마나 햇빛이 들어 오는지 봐라.

6. 부동산이 주인에 대해 하는 말은 믿지 마라.
부동산이 이 집 주인은 참 좋은 사람이다 이런 식으로 자주 말하는데, 어차피 자기네들도 잘 모르는 사람이다. 그냥 하는 말이다. 그리고 부동산은 주인 편이다. 당신이 그 부동산을 다시 이용할 일이 있을까? 많아야 한 번 더? 하지만 원룸이나 빌라 주인은 그 부동산과 1년에만 수 십 번을 계약할 수도 있다. 부동산이 누구 편이겠는가?

7. 주인이 부동산으로 오기 전에 미리 계약 사항을 전화로 확인해라.
예를 들면 1년 계약을 하고 싶다고 치자. 부동산이 "아마" 주인도 해 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 믿지 마라. 부동산은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다 하는 것이다. 막상 주인이 올 때 쯤 되면 부동산은 계약서를 거의 다 작성해 버린다. 내가 중간에 계약 안 하고 그냥 나가는 걸 힘들게 하기 위해서이다. 주인이 와서 1년 계약 안 해 준다 이러면 계약서가 거의 다 써 지고, 주인까지 왔는데 안 한다 그러기도 미안해서 그냥 하게 된다. 부동산이 "아마 이렇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 다 무시하고, 직접 주인하고 전화를 해서 이렇게 계약할 건지 물어 봐라.

8. 부동산이 걱정말라, 사고 나면 내가 책임진다, 요즘 그런 사람 없다, 이런 말 모두 믿지 마라.
집 융자가 많다. 부동산이 걱정말라 사고 잘 안 난다, 이런 식으로 말할 거다. 그런데 법적으로 부동산의 책임이 없는 한 말로 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고 그냥 당신한테서 어떻게든 중개료를 받기 위해 하는 것일 뿐이다. 부동산 말에 쉽게 넘어 가지 말고 "정말 그럴까"를 잘 생각해 봐라.

그 주인이 부도낼 사람이 아니다, 내가 책임진다 이런 건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 내용이 아니다. 내 돈을 보호하고 싶다면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 내용만 믿어라. 정 부동산이 하는 말이 믿긴다면, 부동산한테 지금 한 말을 법적 효력이 있게 문서화 해 달라고 해 봐라. 절대 안 해 줄 것이다.

9. 보증금이 많을 때, 순위에 주의하자.
내가 계약을 세 번 째로 했다고, 보증금 3순위가 되는 게 아니다. 내가 계약을 세 번 째에 했더라도, 나보다 며칠 빨리 이사가는 사람이 둘 더 있어서 그 사람이 먼저 동사무소에 가서 신고하면 그 사람들한테 순위가 밀린다. 주의하자. 아주 중요하다.

10. 계약서를 작성하러 주인이 오는 걸 기다리는 동안 이렇게 하라.
부동산이 나의 신원을 적어 달라고 하거나 신분증 등은 복사하게 달라고 하면, 주인이 와서 얘기를 해 보고 계약서 적을 때 준다고 절대 주지 말라. 이런 걸 다 주고 나면 계약할 때 주인이 이상한 소리를 해도 계약을 안 하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다음 문구를 마음 속으로 계속 되뇌어라.
"조건에 안 맞으면 계약 안 하고 나간다."
"조건에 안 맞으면 계약 안 하고 나간다."
"조건에 안 맞으면 계약 안 하고 나간다."

11. 전화 번호를 따로 하나 준비하라.
부동산을 다니다 보면 별로 좋은 집을 소개해 주지 않아 그냥 나가려고 할 때 전화 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는 일이 많다. 가능하다면 알려 주지 마라. 부동산에 휴대 전화를 알려 주고 난 후로 그 지역 아파트 분양이 어쩌고 하는 문자 메시지 스팸이 몇 번 씩 온다. 부동산 다니기 전에는 한 번도 이런 스팸을 받아 본 일이 없으므로, 분명히 내가 전화 번호를 남긴 부동산 중에서 누가 내 전화 번호를 스팸 업자에게 팔아 먹은 것이다. 그 게 아니라도, 1~2년 지나 계약이 끝날 때가 되면 부동산에서 그 기간을 세고 있었는지, 집 구하지 않느냐는 전화가 온다. 아주 귀찮다.

집 보러 다니는 도중에 전화 번호를 물어서 안 가르쳐 주는 게 힘들다면, 세컨더리 휴대 전화를 하나 마련하라. 중고 스마트폰 하나 사 두면 비상시에도 요긴하게 쓸 수 있으므로 좋다. MVNO를 사용하면 월 기본요금 1000원 정도 되는 데도 있다. 요즘 부동산도 약아서 전화 번호를 알려 주면 가짜인가 확인하려고 그 자리에서 바로 걸어 보는 사람이 많다. 이럴 때를 대비해 세컨더리 휴대 전화를 주머니에 소지하고 부동산에 가라.

12. 현장에서 피처 리스트를 작성하라.
화장실의 창문 존재 여부, 싱크대 근처 창문 존재 여부, 보일러 컨트롤러나 에어컨이 방 안에 있나 방 밖에 있나, 등 여러 여부를 그냥 눈으로 보고 다니면, 나중에 부동산이 하나를 고르라고 압박할 때 실수로 어떤 점을 놓치고 고를 수 있다. 미리 그런 것들을 다 체크해 두고 나중에 그 중에 제일 나은 집을 비교해 골라라.




Friday, September 04, 2015

Just finished watching "April is your lie (4月は君の嘘)"

Contains a major spoiler. Do not read this, if you are going to watch the animation.


I was bored so I decided to watch some famous Japanese animation. On a Japanese ranking site, I had found that this animation, “April is your lie” was ranked at top. 

The animation began as a blond young girl (Kawori) in a school uniform was chasing a black cat on a street. After watching the first episode, I did not like the unusual look of characters (quite unique from other Japanese animations), and the first episode was not so interesting, and I expected it would be a kind of predictable “boys and girls become great piano players” story, like in a sports movie ends with the protagonist winning a big game after lots of hard practices. I was tempted to stop watching the series. I watched several more episodes, and it was still boring.

As Kousei developed feelings for Kawori, the story became a little bit interesting. And at somewhere between episode 7~10, Kawori was shown to taking lots of pills. It was easy to expect that she would either die or become unable to play violin. I wondered how it would end, so I kept watching the series through the end.

When I began watching this animation, I wondered what the title "April is your lie" meant. As I  was watching episodes after episodes, I forgot about the title. Then in the final episode, the meaning of the title was revealed. Kawori had been in love with Kousei long before they officially met each other. But she pretended to like Watari, because she knew that she would going to die soon and did not want to hurt Kousei by impressing her onto him.

Before I watched the final episode, I did not have any clue that Kawori liked Kousei. So I could not understand why Kawori and Watari were a couple. They had nothing in common, and they barely met each other right before Kawori met Kousei with Watari together. Kawori and Kousei seemed to have much in common such as the passion for music, so it made no sense to me that Kawori was a couple with Watari, not Kousei. Only at the final episode, this problem was soled. So, that was her Lie on April. 

Kawori left a mail to Kousei right before she took the surgery, to tell him that it was Kousei who she loved. The surgery went bad and she died. To be honest, in a few episodes before the final episode when it was known that Kawori was taking the surgery, I thought ‘Please do not be a childish happy ending like she will be magically completely cured and becomes able to play violin.’ But her death was so sudden in the final episode (it just went to straight to the graveyard scene), even though it was I myself who wanted a sadder ending, I became sad. And I became sadder when I knew Kawori had been  in love with Kousei all along. Kousei discovered Kawori’s feelings after reading her mail, but she did never know that Kousei also loved her. This is sad, because she does not exists any more, and she can never know about that.

People change as the live. What defines the identity of a person? His body changes so it is not that. Then his thoughts are. But his thoughts are also changes as time changes. That is, the feeling of myself is a delusion. For example, the I as a child was a different being and it does not exist anymore even though I am still alive. Kousei’s heart would also change as he grows old. Perhaps he would meet a new girl and his memory of Kawori would become paler and paler and finally someday, even though Kousei remembers that he had feelings for Kawori, he may not be able to feel it as a feeling anymore. Having the knowledge of “I loved her” and feeling “I loved her” is a different thing. When I was a kid, I loved to have large transforming robot toys. I remember I did, but I cannot feel it. I no longer feel the love for those toys.

So the Kousei Kawori knew would probably not exist any more after 10 or 20 years. But in her letter, her feelings are taken as a snapshot, and it would never change. If the letter will be read 20 years later, her feelings will still be there unchanged, and thus her identity will remain. If our thoughts define our identity, 15-year-old Kawori will keep remain in the letter, unlike alive Kousei whose thoughts shall change.

I do not believe in love, and I have already read or watched many death-involving love stories; but still, such a love story moves my heart. Probably because I am like many other humans who cannot be freed from human emotions.

I am going to watch “April is your lie” from the beginning again, just to find out Kawori’s feelings.

=========Appended one day later==========
Watching the parts of the animation where Kawori and Kousei interact gave me new feelings and thoughts, because now I know that Kawori was expecting her death, and in love with Kousei. The elaborate directing of the animation kind of deceived me to think that Kawori was afraid of losing the ability of playing violin not of the fact that there is a high chance she is going to die.

Now I know why Kawori cried as she was returning home with Kousei in the night when she had escaped the hospital to visit an empty school. I thought it was because she was worried about losing the ability to play violin, it was not. It was because the moment was going to be the most wonderful and beautiful , and probably the last, memory she would ever have.

A love that cannot last despite their feelings is always a beautiful thing; a sadly beautiful thing. If Kawori could have lived long, as a normal person, the love would have turned out a trifle thing. I mean, how many loves in middle school last 10 or 20 years? People's mind changes. It would not be an unbelievable thing, if they break up when they became 25 and found better people. But since Kawori dies at the age of 15, the love stays unchanged forever. Like frozen strawberries in a refrigerator, it does not go bad. But it is sad because it was frozen. It is dead like the frozen strawberries. That is a dilemma. If it is alive it will surely change and go bad. If it is frozen, it keeps its shape forever, but it is dead.

I am not sure what Kawori's disease is. But it is said because her death probably surely preventable when the human race finally gets full genetic and medical knowledge of the human body. A few thousands years later, we may be able to simply replace any organs in human body like we replace the battery of a wall clock. Kawori's sorrow is not a unbreakable, unavoidable, necessary destination. This has already happened before in the human history. People have suffered and died because of a disease that we can now fix in a day.

I hate deaths. I do not want people to die. Some people insists death is just a part of life. I do not  agree with them. There is no god who has made rules for the human race. We are not destined to, or must die. We have been dying just because we still have no ability to fight against some simple chemical rules which have no emotions or meanings. Humans will change the destination of their own destination in the future. And there shall be no death, eventually, until the end of the universe. 

Sunday, August 23, 2015

파리의 연인 드라마를 다시 보니 왜 이렇게 실망스러울까

군대에 있을 때 파리의 연인을 보았었다. 원래 밤 10시에 TV를 보는 것 자체가 사실 몰래하는 것이고, 야간 근무가 있는 날도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다 보지는 못했다. 한 가지 기억나는 건, 마지막회 하는 날에 야간 근무가 있어서 마지막 회를 못 봤다는 것이다. 어쨌든 당시에 부대원들과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고, 당시의 화제작이었기 때문에, 최근에 파리의 연인을 다시 보았다.

옛날 걸 다시 보면 느끼는 것이지만, 10년만 지나도 본 것을 많이 잊어 버리는 것 같다. 파리의 연인에서 10년 전에도 봤던 걸로 기억나는 부분은 "애기야, 가자"하고 박신양이 피아노 치면서 노래 부르는 부분 두 개이고, 나머지는 완전히 새로 보는 것같이 아무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 드라마를 거의 10년 간 안 보다가 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아주 많이 실망스러웠다.

1. 너무 많은 우연

길거리에서 자동차로 노점상을 받았는데, 마침 그 노점상 주인이 자신의 집 가정부일 확률은? 게다가 세느 강변에서 밤에 우연히 자전거를 고쳐 준 여자를 파리의 옷 가게에서 다시 만날 확률은? 그 여자가 또 자기가 연주하는 바에 친구 따라 올 확률은... 물론 드라마라지만 한 두 번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희박한 확률의 우연이 너무 자주 일어난다.

후반부에 가면, 꼭 중요한 대화를 하는데, 다른 중요한 인물이 거기 근처를 우연히 지나가다 듣는다든가, 우연히 회사에서 마주친다든가 하는 일이 너무나 많이 일어난다. 특히 오주은은 무슨 omnipresent한 신도 아니고, 김정은이 나오면 항상 어디선가 나타나 시비를 건다.

2. 별 동감이 안 되는 사랑의 깊이

박신양과 이동건 모두 김정은을 너무너무 사랑하게 된다.  둘 다 모든 것을 버리더라도 김정은을 택하겠다는 일념으로 움직이는데, 사실 그 이유가 별로 설득력이 없다. 만난 기간도 얼마 되지 않고, 특별히 뭐 대단하게 서로 많이 한 일도 없는데, 그렇게 짧은 시간에 죽을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사실이 현실적이지 않다.

오주은이 박신양하고 결혼하려고 설치는 이유도 공감이 되지 않는다. 단순히 자기가 멸시하던 친구 김정은이 재발인 박신양하고 결혼하는 게 샘 나서 그렇다고 해도 이해가 안 되며, 박신양에게 첫 눈에 반했다고 해도 이해가 안 된다. 처음에는 샘 나서 그런 것처럼 보이다가, 나중에 가면 박신양을 아주 사랑하는 것처럼 나오는데, 박신양은 오주은에게 한 번도 잘 해 준 적도 없고, 둘이 무슨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없다. 단지 박신양이 부자이고, 오주은의 부모가 정략적으로 둘을 결혼시키려고 했다는 것밖에 아무 것도 없는데, 왜 저렇게 쫓아 다닐까?

3. 현실적이지 않은 선악 구분

무슨 초등학생용 전래 동화도 아니고, 나쁜 놈들은 그냥 천성이 나빠서 하는 짓마다 나쁜 짓만 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특히 박신양을 쫓아 다니는 오주은과 제이모터스 사장 역 남자 배우가 그런데, 솔직히 이 세상이 저렇게 대놓고 나쁜 짓만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오주은은 보고 있는 것조차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말투 자체도 진짜 억지스럽게 못됐고, 표독스러운데, 그 게 가끔 그런 게 아니고, 나오는 내내 그렇다. 얼굴 표정도 내내 비꼬고 무시하고 짜증내는 표정이다. 도대체 평소에 늘 저런 식으로 말하고 표정 짓는 사람이 어디 있는지? 초특급 사이코패스 정도나 되어야 할까?

캐릭터가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도저히 공감이 안 된다.

4. 현실적이지 않은 남자 주인공

Fifty Shades of Grey라는 소설이 그렇게 유명하다길래 아마존에서 샘플을 받아 앞 부분은 좀 읽었는데,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유치해서 도저히 봐 줄 수가 없었다. 거기에 따르면 주인공은 30대 초반의 남자인데, 사장으로 돈이 무지하게 많고, 얼굴은 완벽하고, 운동도 잘하고, 머리 좋고, 여러 언어를 말하고, 무슨 헬리콥터인가도 운전하고 세계 빈민 구호 사업을 하고... 기타 등등 도저히 30대 초반에 다 이루기 어려운 것들을 하고 있었다.

이 드라마의 박신양도 거의 마찬가지다. 30대 초반에 재벌 회사의 사장인데, 경영 능력이 뛰어나고, 프랑스어도 잘 말하고, 대학교 때 하키 선수에다가, 피아노까지 잘 치고... 그런데 따르는 여자가 없었는지, 부모가 억지로 결혼시킨 여자 말고는 연애를 해 본 적도 없다고 한다. 도대체 이런 사람이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나. 

이동건 역시 비현실적이다. 잘 생긴 얼굴의 20대, 디자인은 몇 년 간 놀다가 회사에 갑자기 툭 들어가서 기존 직원한테 전혀 도움도 받지 않고 대작을 단기간에 만들 정도로 천재적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드럼 연주도 잘하는데, 여자 친구가 없다.

나는 문득 작가가 여자가 아닐까 싶었다. 왜냐하면 Fifty Shades of Grey도 작가가 여자였기 때문이다. 찾아 보니 역시 이 드라마의 작가가 여자였다. 이 드라마를 쓴 시점에 작가 나이는 30살 정도였다. 현실을 아직 잘 몰라서였나, 아니면 현실을 부정하고 자기의 환상 세계를 드라마로 이룩하고 싶었나.

5. 황당한 결말

사실 결말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상상이었다"라는 말을 어디에선가 들은 것밖에 기억을 하고 있지 않았다. 군대에 있어서 마지막 회는 다시 못 보았고, 그대로 잊혀졌던 것 같다. 다시 보니 차라리 모든 것이 상상이었다고 하는 게 훨씬 더 나았을 것 같다. 이 건 무슨 도플갱어도 아니고...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원래는 박신양이 회사에서 쫓겨 나고 파리로 가서 말단 일부터 새로 하는 새 인생을 시작하다가 김정은과 다시 만나게 되는 이야기였는데, 시청자들이 반대해서 결말이 바뀌었다고 한다. 초반부와 결말부를 미리 프랑스에서 다 찍어서 왔다가, 결말이 바뀌어서 편집해서 썼다고 한다. 하긴, 마지막 화에 박신양이 파리의 자동차 센터에서 정비공으로 일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도저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한국에서 자동차 대기업 사장이었던 사람이 프랑스로 유학 가서 자동차 정비공을 한다는 게 말이 되나?


결론


이 드라마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은 박신양의 사랑해도 될까요 노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나머지는 현실적이지도 않고, 재벌과 출생의 비밀과 우연히 겹겹이 뒤섞인 전형적 한국 드라마인 것 같다. 좋은 영화나 드라마는 몇 년 지나 다시 보면 새로운 감동을 얻을 수 있을 건데, 파리의 연인은 다시 안 보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중에 다시 볼 생각도 없다.

도대체 이런 드라마가 인기가 있는 이유가 뭘까 하고 생각을 했다. 일단 내용으로는 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객관적인 사실은, 이 드라마가 국내에서 엄청나게 인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작품이 좋은 것과, 작품이 인기가 있는 것은 서로 다른 성질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어떤 음식이 몸에 좋은 것과, 입에 맛있는 것이 서로 다른 성질이듯이. 물론 나에게는 이런 드라마를 쓸 재주가 없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없는 능력이라고 해서 모든 능력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파리의 연인 작가는 사람들이 보기를 좋아하는 드라마를 쓰는 능력은 있는 것 같지만, 좋은 작품을 만드는 사람인 것 같지는 않다.

뭐 물론 "좋은 것"의 기존이 사람마다 다를 테긴 하지만.

Tuesday, July 28, 2015

Why do mosquitoes fly round my ear?

We all know it is annoying. So I searched the web. A web site said this was because our ears 'smelt' and mosquitoes were attracted to that smell. (I cannot find the web site now.) Interesting.

Perhaps it is not the smell; it could be something else. But that does not affect the hypothesis I am going to elaborate. It does not matter why mosquitoes are attracted to our ears, the important fact is that mosquitos are attracted to our ears. My hypothesis is that attracting mosquitoes to our ears is the result of human evolution, as a defense mechanism against mosquitoes.

Mosquito is most likely the number one animal that kills the most people in the world. It transmits numerous deadly diseases and unlike other deadly insects, it is everywhere. So it is apparent that as the number of mosquito-bites increases, so does the risk of getting deadly diseases. Thus, I can say those individuals who had less mosquito-bites had higher chance of survival (even if the difference were small, it could be significant when accumulated for several millions of years).

During this summer, I caught and killed a lot of mosquitoes. Often I discovered the mosquitoes because they buzzed round my ears. If they attacked my back or my leg first, I would not have discovered them and probably been bitten. In fact, those times I got bitten, I was sleeping or the mosquito bit my leg. Killing mosquitoes is relatively easy once we have found them; it is finding them that is difficult because they are silent, small, and agile.

Our ears are good for detecting things omnidirectionally, and unlike eyes, they are always 'on' even in the dark. So, as long as we are awake, if mosquitoes buzz round our ears, we have a high chance of noticing them. And if a mosquitoes is round your ear, that also means it is in the 'killing range' of your hands. So the individuals who successfully attracted mosquitoes to their ears than to their legs had higher chance of dodging the bite, and prospered. Thus, by the power of natural selection, current humans have the ability to attract mosquitoes to the ears.

Now, one might ask, "But, do our ears really intentionally attract mosquitoes? Isn't it just mosquitoes happen to be attracted to our ears?" Well, when we talk about evolution, there is no distinction whether it is purposeful or not. "Purpose" is something humans have made up. It only exists in our heads. In reality, if (for any reason) A exists and B happens if A exists (for whatever reasons), one could say A's purpose is to cause B. This is a kind of anthropomorphism to make it easy for us to understand. It would not do harm if we are not stupid. Dr Dawkins and other evolutionary scientists use this method to explain things. If you read their books, you would know what I mean.

Wednesday, July 01, 2015

How to fix ugly Japanese font in File Explorer and other built-in apps in Windows 10

On English version of Windows 10, Japanese texts such as file names in File Explorer or texts in built-in apps such as Music, look ugly, as if they were rendered using some kind of Chinese font.

I have tried many things and found a solution. I need to install the Japanese Supplementary Fonts in Optional Features. To do this, open Settings, type Optional Feature, and then install the Japanese Supplementary Fonts. Now, restart Windows.

The same thing applies to Korean. Google Chrome displayed some Korean text (such as those in Google search result) with squares. After installing Korean Supplementary Fonts, it was fixed.

This seems to be caused that the web page is using some old Korean fonts that were available in Windows 7/8 by default, but not in Windows 10. This could be a problem of that web page, but it is definitely Microsoft's fault that Microsoft's own File Explorer and built-in apps do not use new Japanese fonts and try to use old Japanese fonts that are not available in Windows 10 by default and then falls back to some Chinese font.

I have submitted this problem using Insider's Feed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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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판 Windows 10의 파일 탐색기와 기본 앱 등에서 일본어 텍스트가 이상한 글꼴로 지저분하게 표현된다. 방법을 찾아 이것저것 해 본 결과 방법을 찾긴 했다. 물론 내 시간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만은. Settings에서 Optional Feature를 입력 후, Japanese Supplementary Fonts를 설치하고 Windows를 새로 시작하면 일본어 텍스트가 Meiryo 글꼴로 깨끗하게 표시된다.

Google Chrome에서 영어 Google로 간 후 검색을 하면 검색 결과의 한글이 네모로 보였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Korean Supplementary Fonts를 설치하니까 해결되었다.

Saturday, June 27, 2015

Why it is disgusting that Christians praise evolution as the divine way to create humans

It is well known that most evolution-deniers are believers of the Abrahamic religions (Christianity, Islam, and Judaism -- in case you did not know, they are basically variations of the same thing). They have been desperate to deny that evolution is real by fabricating false evidence, arbitrarily defining terms, or by resorting to world-wide conspiracy theories. You know, the common theory that all scientists are actually followers of Satan, and they are trying to abolish your faith to God using wicked lies like evolution, geology, or the Big Bang theory. If you think that kind of theory is a rare fringe thing that only a small number of crazy idiots believe, have look at this.

But it has become increasingly difficult for intelligent christians to deny evolution, due to overwhelming and growing number of evidence that support evolution. So, many such enlightened christians, including the Pope, began to accept evolution. Even some educators/scientists of evolution say there is no reason for evolution and religions cannot coexist. Yes, evolution can be compatible with SOME religions. But NOT with christianity, or at least the christianity most of the christians know of.

Christianity claims,

  1. God knows everything (omniscience)
  2. God can do anything, as long as it is not illogical (omnipotent)
  3. God loves humans more than anything else.
These things are incompatible with evolution. Some christians might think evolution is some sort of magical way that makes animals and plants gradually better to adapt to the environment. Animals are not just getting better like the way you get muscles by training. That is rather Lamarckism, not evolution. The method of real evolution is very simple. By killing off inferior individuals. Nature does not care for any mercy or justice. If an animal individual successfully cheats on its mate to produce more offsprings, then the genes of such individuals will pass on, instead of those individuals who tried hard in an honest way but failed to mate.

Some christians praise the human immune system as god's gift. And they think evolution is god's method too.... To evolve immune systems in the evolutionary way, it is inevitable that many poor people must have suffered tremendous amount of agony and horrible deaths. Mostly, those who survived the attacks of microbes and viruses passed their genes to their offsprings, and that is why most humans are now immune to many such bad things. Is this really a method of a human-loving, omniscience, omnipotent being?

If god already exactly knew how he wanted human body to be and he had the ability to materialise his thought instantly, why did he use such an sub-optimal, cruel method? It seems as if that god did not know how the human body should be like (not omniscient) or was unable to materialise the human body without a long-term method like evolution (not omnipotent) or probably thought the biological diversity is worth all those of agony of those individuals who failed to survive (no preference for humans over other forms of life).

In the evolution way, a baby whose parents have died should die, too. Their parents failed to survive for any reason, so chances are the baby would also have those inferior genes. Sometimes, their parents had very good genes but died due to some random accident. Evolution does not care for this kind of details. It is not the most optimal method in the first place. Killing off some good genes does not make much difference, as long as much of them survive and much of the bad genes die. But if you can choose whether to let the baby die or save the baby, would you choose to let the baby die? Basically, the christians who praises evolution is praising their god for leaving those weak individuals such as those kind of babies to die.

Probably, their only excuse would be that infamous "god works in mysterious ways". The behaviour of their god clearly looks against the common sense of all sane people, and can be called evil if it were done by a human. If I would ask them if they would do like such a thing, they would say no. Yet they claim since it is God, it is a mysteriously good behaviour. Why are there such double-standards? If all people think something is evil and your god is doing that, isn't it very likely that your god is evil, instead of being mysterious?

Open up your eyes and see the world. Is this really the optimal world for human? No, not the excuse of human sins. Do you really believe we humans are capable of causing all the biological phenomena just by sinning? Who can explain the intricate structure and mechanisms of salmonella in relation to some people's not believing in god or stealing or murdering each other?

For thousands of years, some people have suffered unimaginable agonies due to leprosy. They were isolated, scorned, and sometimes beaten to death, as people thought leprosy was some sort of punishment from gods. Little did they know that it was caused by the living of some simple, mindless bacteria, bacteria that have no purpose of living but simply just exist for the sake of existence. So, did your god not know such a thing could evolve? Or did he just leave those people to suffer for the sake of evolution? If any small good things happen, christians thank god because it is god who made them happen. If so, why did not help those miserable people by eliminating those bacteria from our world?

Viruses and bacteria exist because evolution does not prefer us humans over them, because evolution has no sympathy, no mercy. If ANYONE or any being, including your god, has the power to stop the human mysteries but leave them as they are, I cannot regard that being as 'good'. I would not care if I have to exterminating any number of species, if that could put an end to human miseries caused by viruses and bacteria. (Luckily, there are ways to achieve that without hurting of most of other species.) 

There is a famous saying: You cannot have the cake and eat it. Likewise, the god that christians believe and real evolution (not Lamarckism) cannot coexist. Probably, it is a good time to choose between the two. If you think carefully with all the evidence, I am sure the answer is clear.

Wednesday, June 17, 2015

HTTPS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식이 높아졌으면

어떤 고등학생이 만든 한글 입력 프로그램이 있다. 그 고등학생은 지금은 어른이 되어 국내 유명한 대학교에서 박사 과정 수행 중이라고 한다. 그 한글 입력 프로그램은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데, 아주 정성과 시간을 많이 들여 만든 복잡한 프로그램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문제가 한 가지 있다. 프로그램이 디지털 서명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 사람의 홈페이지는, "디지털 서명이 되어 있지 않지만, 지난 십 여 년 간 이 프로그램을 개발해 온 저를 믿으신다면 안심하고 설치하세요" 비슷한 문구가 있었다.

컴퓨터 정보 분야는 아니었지만, 컴퓨터 공학 박사 과정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사실 잘 믿기지 않는다. 프로그램을 서명하는 것은, 프로그램 개발자를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 사람이 악의적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을 것은 나도 절대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그 사람과 최종 사용자의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악의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소위, man-in-the-middle attack) 그 게 HTTPS가 존재하는 이유가 아닌가? 그 사람의 프로그램은 디지털  서명이 되어 있지 않다. 그 사람의 홈페이지도 HTTPS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네트워크 라우터를 조작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홈페이지를 그대로 복사한 가짜 사이트를 그 사람의 진짜 홈페이지 주소로 보여지게 할 수 있다. 그 후 바이러스 등을 넣어 조작한 그 프로그램을 올려 놓는다면? 그 뿐 아니라, 그 프로그램을 받아서 바이러스 등을 넣어 다른 사이트 등에 올리는 것도 가능하다.

방금 본 외국 사이트의 IT 사이트의 뉴스에서 6억 대 정도의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이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원인은 간단한 것이었다. 삼성이 갤럭시에 내장한 키보드 프로그램이 업데이트를 할 때,  HTTPS가 아닌 HTTP 서버를 이용하며, 업데이트 파일 자체도 서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앞서 말한 그 사람의 프로그램과 같은 문제이다.

요즘 인터넷을 보면, 거의 아프리카 사바나같다. 맹수가 득실거리며 언제 어디서 뛰어나와서 목을 물어 뜯을 지 모르는 게 사바나이듯이, 인터넷에도 악의를 가진 해커들이 득실거리며, 조금만 틈을 보이면 그 틈을 이용해 해킹해 자기의 이익을 챙기려고 하고 있다. 다들 HTTPS의 필요성에 대해 좀 다시 한 번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특히 기업들... 몇 십 만 원 아끼려고 고객을 위험에 몰아 넣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Tuesday, March 17, 2015

啓聖中学校の校歌



一。

앞에 섰는 것 琵瑟山이요, 뒤에는 八公山 둘렀다
前に立っているもの琵瑟(ビスル)山であり、後ろには八公(パルゴン)山を巻いている

푸른 언덕에 啓聖学校는, 半空에 우뚝이 솟았네
青い丘に啓聖(キェソン)学校は、半空ににょっきりそびえる

啓聖, 啓聖, 万歳라
啓聖、啓聖、万歳よ

우리 啓聖, 万万歳
私達の啓聖、万々歳

햇빛과 같은 너의 光彩를
日差しのような君の光彩を

세상에 비춰라,永遠無窮 비춰라
世に輝かせ、永遠無窮輝かせ

우리의 자랑인 啓聖아
私達の誇りの啓聖よ

二。

배움에 주려 울고 있는 자, 여기 와 배부름 얻어라
学びに飢え泣いている者、ここに来て満腹得よ

어둠에 서서 彷徨하는 자, 너희의 찾는 길 예 있다
闇に立ち彷徨う者、君らの探す道ここにある

繰り返し

三。

真理로 터를 세운 이 学校, 새 生命 死海에 흐른다
真理で基を築いたこの学校、新しい生命が死海に流れる

天地는 비록 変할지라도, 啓聖의 精神은 永遠히
天地はたとえ変わっても、啓聖の精神は永遠に

繰り返し

Monday, March 02, 2015

Even the quote-mined version of Richard Dawkins' purpose of live seems better than Christians'.

To see what the picture is saying, click the picture. 

So basically, Christians think the purpose of life is to serve god (mainly) and fellow men (probably meaning helping your fellow men in serving god), and they think atheists like Dr Dawkins think life is meaningless because we are robots built by DNA.


I covered the atheists' meaning of life a few years ago in my previous post, and it even contains Dr Dawkins' direct video message about the meaning of life. http://typingcat.blogspot.com/2012/08/no-meaning-of-life-for-atheists.html

The quotes in the picture above seem to be taken from the Selfish Gene without context. The 'purpose' in the sentence means the 'purpose' of DNA. Mind you, 'purpose'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 There is no purpose in nature. It is a concept we humans have invented. What is the purpose of a stone? To help us to build a stone tool? No, that is our point of view. Stones cannot think, therefore there is no purpose; they are just there. We project our purpose to them. Seeking purpose on something other than human is like asking what is the smell of a melody. It is undefinable.

What Dr Dawkins meant in the quote-minded passages above is that:
  1. DNA exists because it replicates, and there is no hidden purpose or magic in that.
  2. All life forms including humans are created during the process of DNA replicating itself.
  3. There is no hard-defined purpose for human life, you define yours, and if you are happy with it, it is good enough.
Actually, I am quite surprised that a person who read the Selfish Gene could make that kind of excerpt. The person is either
  1. tremendously stupid, did not read the whole book, and only skimmed the book to find anything to criticise atheists
  2. cunning enough to deliberately quote-mine those in order to deceive gullible, uneducated Christians.
, and I am afraid it is more likely the latter.

However, even if the purpose if life for atheists were really "live for the sake of living and creating more life", it seems to be vastly better than the other choice to serve that homophobic, kitty-killing (yeah, he drowned all kitties with the flood), egomaniac god of Christians. And I suspect most Christians do not even think like that; they are just paying lip service, like how we always say physical beauty is shallow and yet are attracted to pretty people. I mean really, how many Christians really think their top priority in their life is serving their god? How many of them are willing to sacrifice their personal life to serve god, like sacrificing their son? Are you willing to sacrifice your son to serve god, if your god order you to kill your son, as he said to Abraham? 

Well, I would rather be a purposeless replicating machine than a slave. 

Wednesday, February 25, 2015

사용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보안"을 요구하는 한국의 사이트들

Coursera라는 무료 인터넷 대학 사이트가 있다. 거기에서 Usable security라는 과목을 신청 후 첫 번째 비디오를 봤는데, 평소에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 같은 말이 나왔다. 사용자가 하려는 일에 방해가 되는 보안을 요구하지 말라는 것.

한국 사이트들은 참 특이하다. 내가 전세계 여러 사이트를 쓰지만 (대부분이 미국 사이트이긴 해도), 한국 사이트들만큼 어디 한 군데가 하면 다른 데서 똑같이 따라하는 나라는 없는 것 같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1. 집 주소 입력 시, 우편 번호를 직접 입력 못하게 막고 반드시 팝업 창에서 검색해 고르게 한다.
  2. 메일 주소를 한 번에 못 치게 하고 반드시 도메인 부분을 @ 뒤의 별도 칸으로 빼서 드롭다운을 둔다.
  3. 제딴에는 보안을 요구한다는 사이트들은 입력 윈도에서 copy는 물론 선택과, paste도 막는다. 암호 입력 윈도가 아닌데도 말이다.
  4. 보안을 위한다며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막는다.
뭐 당장 생각나는 것만 저 정도이다. 자기 집 우편 번호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까,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까? 그 깟 여섯 숫자 입력하는 걸 귀찮게 팝업을 띄우고 주소를 입력하게 한다. 게다가 한글 특성상 검색이 잘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어떤 사이트는 "가나다동"이라고 쳐야 나오고 "가나다"라고 치면 안 나오는 곳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우편 번호만 입력하면 동까지 자동입력해 주면 되잖아!

메일 주소는 도대체 왜 별도의 칸으로 띄우는 걸까? 저건 2000년대 초반부터 저러더니 아직도 저러고 있다. 요즘 브라우저들이 똑똑해져서 메일 주소같은 건 자동 완성해 주는 데도 말이다.  그리고 도대체 오른쪽 버튼을 막아서 무슨 보안을 얻겠다는 건지? 요즘 모든 브라우저에 개발자 도구가 다 탑재되어 DOM까지 on-the-fly로 수정할 수 있는 현실인데 말이다.  어쨌든 웃긴 건, 대부분의 한국 사이트가 마치 서로 베낀 듯이 저런 허잡한 짓을 똑같이 하고 있고, 외국 사이트에서는 저런 짓을 하는 사이트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뭐 그 중 보안 관련해서 한국 사람이라면 정말 짜증나는 경험이 많을 것이다. 도대체 사용성은 일체 고려를 안 한 짓만 골라서 한다. 한국 은행이나 정부 사이트 자체가 정말 스트레스를 주고 꼭 필요하지 않으면 절대로 가고 싶지 않게 만든다. 게다가 그 외의 한국 사이트들도 역시 짜증을 주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암호를 주기적으로 변경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암호도 각 사이트마다 다른 이상한 규칙을 강제 적용한다. 문제는... 외국 사이트들은 암호를 submit하기 전에 암호가 잘못되었다고 바로 보여주는 데 비해, 한국 사이트들은 대부분 submit한 후에 암호가 규칙에 안 맞다고 처음부터 새로 입력하라는 것이다. 어떤 사이트들은 숫자/영어/기호를 섞어 쓰라고 하고, 어떤 사이트는 기호를 넣은 암호를 submit했더니 기호는 안 된다고 다시하란다.

정말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그 사이트 개발자는 그렇게 복잡한 암호를, 사이트마다 다르게 해서,  사이트마다 다른 ID와 함께, 주기적으로 변경해 가면서, 자동 입력 안 하고 손으로 입력해 가면서 쓰고 있나? 요즘 사람들이 쓰는 사이트가 적어도 개인당 100개는 넘을 거다. 정말 그 많은 사이트들에 대해 저렇게 할 수 있는 게 인간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사이트마다 공통된 암호 변경 인터페이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첫 접속부터 비밀 번호 변경까지 끝내려면 빨라도 5분은 걸릴 거다. 한 달에 100개 사이트에 5분씩 써 보자... 500분 =8시간이다. 거의 하루 전체를 투자해야 한다. 아예 한 달에 하루 비밀 번호 변경 공휴일을 만들지 그래? 

도저히 불가능하다. 복잡한 암호를 요구하기 때문에 복잡한 암호를 만들면 해커만 추측이 힘든 게 아니라, 나도 기억을 못한다. 그래서 어디 적어 놓고 복사해 넣으려면 paste가 안 되게 막아 놨다. 소스를 보니 onpaste="return false"를 넣어 놨더구만.  정말 뭘 바라는 걸까? 사람이 로봇인 줄 아나? 왜 불가능한 걸 요구하는 것이냐.

이제 사람이 각 사이트마다 서로 다른, 대칭 암호를 기억해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한 시점에 이르렀다. 정부와 각 사이트들 개발자들이 그 점을 좀 인정했으면 좋겠다. 이제는 비밀 번호가 자동으로 관리되어야 하고, 사용자들이 더 쉽게 그 장점을 누릴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내가 언뜻 생각해 본 건 다음과 같다. 물론 나보다 전문가인 사람들은 더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겠지만.
  1. 각 사이트가 공통된 회원 가입/비밀 번호 변경/탈퇴 API를 제공한다. 이 건 정부에서 쉽게 강제할 수 있을 것이고, 사이트 개발자한테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 공통된 API가 있다면 비밀 번호 변경이나 탈퇴를 비밀 번호 보안 관리 프로그램이 일괄적으로 빠르게 처리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회원 가입 시에도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2. 각 사이트들이 모두 OTP 인증 옵션을 도입한다. 지금은 아이핀이라는 사설 업체 서비스를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인데, 대칭 암호이다. 입력에 짜증만 나고, 주민등록번호와 다를 바가 없다. 아이핀 비밀 번호가 털리면 다 털리는 것이다.
  3. 각 사이트가 통합해서 (정부 등의 중계 서버를 거치든가 해서) 해킹 시도나, 보안 관련 메일을 하나로 묶어 보낸다. 지금은 들쑥날쑥 제 멋대로 보내니, 스팸 필터에 걸려 지워지고, 잘 관리도 안 되어 결국 잘 안 보게 된다.

Thursday, January 15, 2015

건강보험공단, 가상 머신에서 미리 보기 안 되게 막은 것 보기

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에 가서 내 정보를 좀 보려고 했다. 뭐 별 기대도 안 했지만, 역시나 다른 정부 사이트들과 마찬가지로 허잡하고 짜증나게 만들어 놨다. 제발 alert() 좀 아껴 쓰라고 말하고 싶다. 그 중,  과거 건강 검진 결과를 볼 수 있는 항목이 있길래 보려고 했다. 가상 머신이라서 볼 수가 없단다.


어디 제출하는 증명서도 아니고, 그냥 내 컴퓨터에서 내 건강 검진 결과를 보겠다는데, 가상 머신이든 말든 자기들이 무슨 상관인지?  아마 이 방법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해 보니 일단 건강 검진 결과를 보는 데에는 성공했고, 아마 다른 정부 사이트의 프린터 제약도 같은 방법으로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문서 한 장 보는 것이고, 문서 파쇄기가 있다면 이 방법을 쓰지 말고 그냥 프린트해서 보고 파쇄하는 게 더 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문서 파쇄기가 없기 때문에 프린트했다가 그냥 버리면 오히려 더 정보 유출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이 방법을 적용해 봤다.

1. 프린터 드라이버를 아무 거나 설치한다.

Windows에서 프린터 추가 버튼을 누르고 아무 프린터나 설치한다. (사실 아마 정부에서 문서 발급용으로 인정된 프린터만 되겠으나....) 귀찮아서 그냥 맨 위에 나오는 Brother 사의 프린터 드라이버를 골라서 설치했다.

 2. 프린터가 설치되면 오른쪽 마우스 버튼을 클릭해 프린터 속성으로 들어간다.

3. 고급 탭으로 간 뒤,  프린트된 데이터가 프린트가 실패했을 때 삭제되지 않도록 체크한다.

3. 이제 [인쇄하기] 버튼을 누르고, 아까 설치한 가짜 드라이버를 골라 인쇄한다.


실제로는 없는 프린터이므로 인쇄는 당연히 실패하게 된다. 하지만 그 데이터가 C:\Windows\Drive\Windows\System32\spool\PRINTERS 안에 저장된다. 

4. 웹을 검색해 SPL 뷰어를 받는다. 


내 경우에는 그냥 맨 위에 나오는 개발자 샘플 프로그램을 받았는데,  샘플이라 별다른 설치도 필요 없었고 그냥 exe를 바로 실행하면 되었다.  만들다 만 것 같아 기능이 없긴 하지만 보는 것과, 다시 출력하는 기능이 있었다.

파일을 열면...

아래와 같이 문서가 보인다.




Wednesday, January 14, 2015

Keep It Simple Stupid VS Keep It Simple Smart.

Recently I have been reading an e-book on Google Play Book on Nexus 7. I normally use Kindle for Android, but this particular book was not found in Kindle Store. Nexus 7 is awkward to use in portrait mode, because the bezel is so thin in that mode. On the contrary, the bezel is very thick in landscape mode. Obviously, it is meant to be used in landscape mode.
The problem is that, unlike Kindle for Android, Google Play Book lacks many options. In landscape mode, it shows one page on a screen if it decides it is running on a phone, and two pages if it decides it is running on a tablet, and there seems to be no way to change it. It decides that for users, thus making it simple. But this is also stupid, because Nexus 7 is not much wider than a phone. Depending on personal situation or preference, one may want one page even on a tablet.

Google Play Book, when text size is 150% on Nexus 7 landscape.
Kindle with similar font size on Nexus 7 landscape.
A web site I found from Google said that Google Play Book lacks options but that could be a good thing because of the KISS (Keep It Simple, Stupid) principle. But is it?

Minimalism seems to have became immensely popular, probably because everyone wants to be the next Apple. But the correct minimalism should mean minimal efforts are required for consumers (or users) to get what they want, not minimal functionalties. I would call the former one Keep It Simple Smart, and the latter one Keep It Simple Stupid. A good software should be simple in a sense that it automatically behaves in the way that most users would want or expect. A better software is simple in that sense, but also is simple in a sense that it allows that default behaviour to be modified easily if the user will.

Sunday, January 11, 2015

한국판과 비교되는 일본판 애니메이션 음악들

1. よあけのみち (フランダースの犬) 플란다스의 개

아마 80년대 말 쯤에 KBS2에서 방송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래되어서 지금 기억하고 있는 한국판 노래가 그 때 봤던 노래인지, 나중에 EBS 등 방송국에서 방송한 때의 노래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유튜브에 있는 EBS판과 일본 원판을 들어 보면 품격의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난다.

한국판이 일본판을 거의 그대로 가져 온 것이라 가사도 비슷하고 멜로디도 거의 같은데, 다른 한국판 애니메이션 노래들이 그렇듯이 dumb down되어 다른 느낌으로 바뀌어 있다. 일본판에서는 "lalalala lalala zingen zingen kleine Vliders"라는 네덜란드어가 나오고 파트라슈가 나비 떼를 쫒으면서 노는 장면이 나온다. 네덜란드어로 아마 작은 나비들이 춤춘다는 뜻일 텐데, 작품의 배경인 벨기에의 느낌도 나고, 영상과 어울리며, 신나고 밝은 느낌을 줘서 내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그런데, 한국판에서는 한국 아이들은 외국어를 못 알아 들어서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 "랄랄라 랄랄라, 랄라라랄라 라라라라"로 바뀌어있다.

이 노래는 즐겁고 밝은 멜로디이면서, 동시에 가슴이 아련한 가사를 가지고 있다. 「忘れないよ、この道を。パトラッシュと歩いた、空に続く道を。」(잊지 않을 거야, 이 길을. 파트라슈와 걸었었다, 하늘로 이어지는 이 길을) 플란다스의 개의 결말을 안다면 이 가사가 슬프게 느껴질 것이다.

2. きこえるかしら (赤毛のアン) 빨강머리 앤

아마 90년대 중후반 쯤에 KBS에서 자주 봤던 기억이 난다. 노래도 기억이 난다. 빨강머리 앤이 민들레 홀씨에 둘러싸이면서 빙빙 도는 장면이 나오는 노래였다. 어렸을 때 한국판 노래를 좋아해서 자주 불렀었다. 적어도 빨강머리 앤 한국판은 일본판 dumb down 버전은 아니고 완전한 오리지널 곡인 것 같다. 

그러다가 작년 쯤에 일본판 노래를 들었다. 처음애는 한국판 인상이 깊어서, 일본판이 이상했다. 그런데 몇 번 듣다 보니, 역시 한국판과 비교할 수 없는 품격의 차이가 있었다. 한국판은 90년대에 녹음한 것일 테고, 일본판은 70년대에 녹음한 것일 텐데, 왜 한국판이 일본판보다 못한 걸까? 일단, 한국판은 편곡 자체를 무슨 유치원 노래같이 해 놨다. 거기에 비해 일본판은 거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것 같고, 노래도 가곡을 부르는 것같은 느낌이다. 가사 중간에 약간 틈이 있고 멜로디만 나오는 부분들 있는데, 그 부분들이 멋지다. 특히「風の故郷へ」부분 음악과 영상이 너무 멋지다. 

빨강머리 앤은 Anne of Green Gables라는 소설을 기반으로 한 작품인데, 일본판 가사가 그 원작 소설에서 앤이 매튜를 기다리면서 느꼈을 감정을 정말 잘 표현한 듯한 느낌이 든다. 거기에 비해 한국판은 그냥 90년 대 어린이 노래의 클리셰를 대강 엮어 만든 느낌이다. "빨강머리 앤 우리의 친구"라니 이제 생각해 보면 "귀여운 둘리는 초능력 내 친구"하고 짝이 맞아 떨어지네. 원작 소설을 읽어 보면, 주근깨와 빨강머리는 앤이 아주 아주 아주 싫어하는 말이다. 그런데 노래 가사에 "주근깨 빼빼마른 빨강머리 앤"이라니 앤이 들었으면 아마 작사가를 한 대 쳤을 듯하다.

일본판 엔딩곡도 신비로운 느낌이 나는 좋은 곡이다.


3. キャンディ・キャンディ (キャンディ・キャンディ) 들장미 소녀 캔디

한국에서는 내가 아기였을 때 방송했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자체는 본 기억도 없고 내용도 모른다. 그냥 노래가 유명해서 알 뿐이다. 한국판 노래는 일본판과 멜로디는 거의 같고 가사도 번안한 수준인데,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역시 일본판의 수준이 더 높다.

한국판에서는 "괴로워도 슬퍼도"로 시작해서 "울면은 바보다 캔디 캔디야"로 끝을 내, 처음부터 끝까지 슬프고 괴롭고 우울한 인생일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일본판에서는 "괴로워도 슬퍼도 ~ 내 이름은 캔디"까지의 부분이 캔디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것들에 대한 밝고 활기찬 느낌의 내용의 가사이다. 그러다가 반전해서 「一人ぼっちでいるとちょっぴり寂しい 」(혼자서 있으면 조금 쓸쓸해)라는 가사로 밝음 속에 숨어 있는 쓸쓸함을 보이다가 맨 끝에서는 「なきべそなんてさよなら、ネ! キャンディ・キャンディ」(울보같은 거 이제 그만 두자, 알았지? 캔디 캔디)로 그 쓸쓸함을 이기고 다시 밝고 강한 모습을 보여 주면서 끝난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밝으면서 슬픈 노래가 좋다. 

일본판 노래는 堀江美都子(호리에 미츠코)라는 가수가 부른 것인데, 노래도 잘 부르고 목소리도 좋아, 다른 애니메이션에서는 주연 성우도 했다. 캔디말고도 다른 좋은 노래들을 불렀다.

4. 薔薇は美しく散る (ベルサイユのばら) 베르사이유의 장미

"나는 장미로 태어난 오스칼" 노래 부분이 기억이 나는 걸로 봐서, 어렸을 때 본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내용은 기억이 안 난다. 그러다가 작년에 일본판을 보게 되었고, 유튜브에서 한국판도 다시 들어 봤다. 

일본판의 경우 품격이 있고 가사도 깊다. 요즘 일본 애니메이션 노래도 이제는 이런 노래는 잘 없을 것이다.  유튜브에 현악기로 악기로 연주하는 동영상도 있었는데, 이렇게 연주해도 잘 어울릴 정도로 곡 자체의 품격이 있다. 

한국판은 일본 멜로디를 참조해서 새로 만든 곡인 것같다. 가사도 비스무리하다. 멜로디는 나쁘지 않은데, 편곡이 너무 조잡하다. 아이들이 뭘 알겠느냐 생각하며 저렴하게 만들어서 그런 것일까? 




5. ブルーウォーター「不思議な海のナディア」나디아

일본판을 듣고 나서, 한국판의 진실을 알고 이만큼 어이가 없었던 곡이 없을 것이다. 나디아는 초등학교 때 MBC에서 보고 재방영도 봤던, 가장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이다. 20살 넘어서 다시 보니 초등학교 때 봤었을 때같은 감동은 없었지만, 어쨌든 아주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다. "나디아 너의 눈에는 가득찬 ..." 으로 시작하는, "작곡: 마상원"이라고 자막이 나오던 걸 아직도 기억하는, 한국판 노래는 어렸을 때 자주 불렀던 좋아했던 노래였다.

그런데, 한국판은 일본판 멜로디를 일부 따고, 가사도 번역해서 만든 것이었다. 물론 그것 자체는 뭐 나쁜 일이 아닌데, 문제는 품질이다. 일본판을 듣고 한국판을 들어 보면 욕이 나온다. 아니 어떻게 저런 명곡을 가져다가 이런 노래로 바꿔 놨는가 하는... 일본판 처음에 나오는 갈매기가 날면서 「今君の目に一杯の未来、全てを輝かす」(지금 너의 눈에 가득한 미래, 모든 것을 빛나게 한다) 라고 시작하는 부분은 정말 웅장하면서 시원하고,  멋있다. 이 걸 가져다가 한국판에서는 유치원 스타일 편곡을 해 놨다.



Friday, January 09, 2015

영어/한국어/일본어를 동시에 쓰기 위한 안드로이드 키보드

넥서스 디바이스를 쓸 때 가장 불편한 점 중 하나가 키보드였다. 모바일 특성상 오타가 많이 나게 되는데, 그 것을 잘 수정하기 위해서는 고급 알고리듬과 사전 등의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마켓에 있는 한글 키보드 중에는 좋은 게 없었다. 그나마 구글 한글 키보드가 그나마 가장 괜찮았는데, 한글 단어 후보가 엉뚱하고 이상한 걸로 나오는 때가 많았고, 오타 수정도 잘 안 되었다.

그러다가 삼성 갤럭시 시리즈를 쓰게 되었는데, 한글 교정에 있어서는 가장 좋다. 대강 쳐서 오타가 심하게 나도, 대부분의 경우 후보에 맞는 문구가 나와서 쉽게 고칠 수 있다. 마켓에 있는 온갖 걸 다 테스트해 봐도 이만한 게 없었다.

내 상황이 특수할 수도 있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게 필요하다.

  1. 영어와 한글을 swype로 입력할 수 있어야 하며, 적절한 후보를 보여 주고, 철자 틀린 것을 고쳐 줄 수 있어야 한다.
  2. 일본어를 문장 단위로 변환할 수 있어야 하며, 가능하면 가나 플릭 모드가 지원되어야 한다. 애플 iOS를 쓸 때 아래와 같은 키보드를 썼기 때문이다.
일본어 입력을 해 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일본어 입력기는 구현이 아주 복잡하다. 한글이나 영어 키보드처럼 그냥 취미로 금방 만들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문장을 파싱해야 하고, 변환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마켓에 있는 일본어 입력기 중에서는 구글 일본어 입력기가 가장 좋다. 하지만 문제는 안드로이드에서 서로 다른 키보드 제품간 전환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쉽지 않은 게 아니고 귀찮다. 노티피케이션 드로어를 내린 후 거기서 키보드 고르기 항목을 누르고, 그 후 뜨는 팝업 리스트에서 다른 키보드를 골러야 하는 3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래서 한글과 일본어, 영어를 자주 번갈아가면서 쓸 때는 귀찮아서 할 짓이 아니다. 다행히 삼성 키보드는 일본어 가나 플릭도 지원한다. 문장 단위 변환도 된다. 그런데 고질적인 버그와 문제가 있고 안 고쳐지고 있다.
  1. 특정 조합이 입력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の 다음에 ?입력이 안 되는 등의 심각한 버그가 있다. 그런데 이 버그가 2년 이상 안 고쳐지고 있다. 고쳐지는 것 기다리다가 짜증이 나서 삼성 전자 홈페이지에다가 메일을 썼더니, 버그로 확인되었는데 언제 고쳐질지 확언을 해 줄 수 없다고 하더라.
  2. 자주 쓰는 단어 기억에 버그가 있다. こんばんは를 자주 쓰면 こんば까지만 쳐도 그 게 나와야 하는데 항상 こんにちは 등만 나오고 아무리 こんばんは를 자주 써도 후보에 나오지 않는다.
정말 마켓에서 이것저것 다 깔아 보았는데, 완벽한 게 없었다. 한동안 Go Keyboard를 써 보았는데, Go 시리즈는 스팸을 너무 많이 띄워서 기피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모든 Go 시리즈는 쓰지 않는다. Smart Keyboard인가 하는 것도 써 보았는데, 영어는 좋았지만, 한글은 좋지 않았고, 일본어 가나 플릭 모드도 되지 않았다.

구글 영어 키보드는 영어 입력에는 좋은데, 지원 언어 목록에 한국어와 일본어 등의 동아시아 언어가 없다. 구글 한글 키보드는 한글 입력도 어중간하면서, 영어 모드에서 swype가 되지 않는다. 구글 일본어 키보드는 일본어 입력은 좋은데, 영어 입력하는 데는 정말 불편하다. 이 세 개를 다 깔아 놓고 전환하는 건 불편하다. 왜 구글이 그냥 한 키보드에 영어/한국어/일본어 등을 다 지원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오늘 발견한 게 Swype + Dragon이라는 것이다. 트라이얼이 있고, 풀 버전은 천 원 정도 한다. 일반 한 키보드에서 한글, 영어, 일본어를 모두 지원한다. 한글을 일부러 대강 입력해 본 결과, 삼성 키보드에 버금갈 정도로 교정이 된다 (두 개 차이는 좀 더 써 봐야 알겠다). 일본어 가나 플릭 모드를 지원한다. 다만 한 번에 입력할 수 있는 문자열 길이에 제한이 있는지, 가나를 몇 십 자 이상 쓰면 더 이상 입력이 안 되고 일단 거기서 끊고 다시 진행해야 한다. 좀 더 써 봐야겠지만, 일단 한글 입력에 삼성 키보드에 버금가는 키보드가 마켓에 없기 때문에 그 점 한 가지만 해도 넥서스 디바이스 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좋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