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들의 주장에 따르면, 뭐든 좋은 게 있다면 하나님이 대단해서이고 나쁜 게 있다면 인간이 잘못해서이다. 아주 웃기는 발상이다. 예를 들면, 미국 대통령 후보로 나오려고 했던 마이클 허커비라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것은 미국인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 사건을 해결하려고 노력한 경찰관과 시민들은 모두 하나님이 보낸 것이라고 한다. 미친 사이코가 아닌 이상, 자기에게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 아이들이 총에 맞아 죽어 가는 걸 막지 않고 있었을까? 그 따위 신이 공정하고 사랑에 넘치는 신이라고?
사람의 몸만 해도 내가 봤을 때는 결점 투성이이다. 내 주변에 어디 아프거나 병 없다는 사람 본 적이 없고, 나도 최근 몇 년 들어 갑자이 이곳저곳이 고장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크리스천들에 따르면 인간의 몸은 하나님이 완벽하게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왜 병이 발생할까? 뭐 안 물어 봤지만 위의 크리스천 논리를 쓰면 답은 뻔하다. 인간이 잘못해서겠지. 뭐든 좋은 건 하나님의 덕이고 나쁜 건 인간 탓이니까. 추운 날 밖에 오래 있다가 감기에 걸렸다고? 추운 데 간 인간이 잘못이라고 하겠지? 그런데 생각해 보자, 어째서 완벽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신이 추운 날 밖에 있어도 감기에 안 걸리게 인간을 만들 생각을 못 했나? 능력이 없었나?
병 외에도 우리 몸에는 구조적인 결점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인간의 눈이다. 사실 인간의 눈 뿐 아니라, 모든 척추동물의 눈이 같은 결점을 가지고 있다. 그 것은 망막 사이로 시신경이 통과해야 하므로 망막에 구멍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구멍이 있는 곳으로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다. 이 것을 테스트하기 위해서, 흰 종이에 X 자 두 개를 수평으로 좀 떨어뜨려 그린다.
X X
그 후, 한 쪽 눈을 감고, 한 쪽 X를 바라보면서 종이를 머리 바깥 쪽으로 좀 움직여 본다. 어느 지점에 이르면 다른 쪽 X가 사라진다. 물론 그 사라진 쪽 X를 보려고 주목하면 눈알이 움직이므로 다시 보이게된다.
위의 그림은 위키피디아에서 가져 온 것인데, 왼쪽이 척추동물의 눈이고 오른쪽이 무척추 동물의 눈이다. 척추동물의 눈은 시신경이 보다시피 빛이 들어오는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이상한 "디자인"이다. 그래서 신경이 망막을 통과해야한다. 하지만 무척추 동물의 눈은 이런 단점이 없이 잘 보인다.
내 눈을 가지고 실험한 결과, 흰 종이 위의 X가 맹점에 걸려 사라지면 그 자리가 하얗게 보인다. 사실 시신경이 없으므로 그 부분에는 아무 것도 볼 수 없기 때문에 검게 보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뇌가 주변의 영상을 적절히 가공해서 덮어버리기 때문에 주변 종이 색인 흰 색으로 보인 것이다. 마치 포토샵에서 티를 덮기 위해 주변 이미지를 이어 붙이는 것과 같다. 참 놀라운 기능이다. 물론 또 이러면 "그 것 봐, 하나님이 다 생각을 가지고 만든 거다" 이렇게 주장할 크리스천이 꼭 있을 것 같다. 제발.... 완벽한 존재가 왜 잘못을 하고 그 잘못을 보완하는 기능을 만드나? 왜 무척추 동물 눈을 자기가 그렇게 사랑한다는 사람 눈보다 더 완벽하게 만드나?
진화는 계획된 것이 아니다. 랜덤하게 나타난 변화가 생존에 조금이라도 유리하면 그 것이 살아남는 것이므로,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 중 제일 좋은 게 살아 남는 것이다. 맹점이 있어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던 개체가 아예 눈이 잘 안 보이던 개체보다 더 쉽게 살아 남았을 것이고, 맹점이 있어도 그 부분을 뇌 속의 이미징 소프트웨어로 (리처드 도킨슨의 표현) 보정해서 완전한 시야를 만들어 내던 개체가 맹점이 있고 그 부분으로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던 개체보다 더 쉽게 살아 남았을 것이다.
인간 눈을 야웨같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존재가 순식간에 만들어냈다면 나는 조금도 감탄하지 않고 오히려 더 잘 못 만들었음을 따질 것이다. 사실 내가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고 하더라도 더 완벽한 인간 눈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모두들 시력이 2.0 쯤 되어 불편한 안경을 쓸 필요가 없으며, 밤에는 반딧불처럼 불 빛이 나와서 어두운 곳도 잘 볼 수 있고, 늙어 죽을 때까지 노안 같은 건 오지 않아 책을 잘 볼 수 있으며, 눈알이 손상되면 새 눈알이 돋아 나고, 맹점도 없으며, 눈 병도 없고, 충혈도 안 되는 눈을 디자인할 것이다. 어째서 그 눈이, 야웨가 만들었다는 사람의 눈보다 더 못한가? 왜 신이 나조차도 생각할 수 있는 결점들을 생각 못 했나? 도대체 어디를 봐서 야웨가 완벽한가? 아니면 크리스천들이 잘 하는 변명대로, 원래 완벽했는데 그 먹지 말라는 사과를 먹어서 눈이 이렇게 변했나?
하지만, 실제 인간 눈은 40억년 간의 진화를 통해 지금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는 우리 선조의 선조가 되는, 말미잘 비슷한 선조부터, 물고기 비슷한 선조, 도마뱀 비슷한 선조, 쥐 비슷한 선조, 원숭이 비슷한 선조, 침팬지 비슷한 선조들의 목숨을 건 생존 경쟁이 있었고, 그 싸움에서 이긴 개체들만의 정보를 물려 받아 지금 내가 내 눈으로 이 글을 보면서 쓰고 있는 것이다. 크리스천들은 진화론을 사람들이 믿으면,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나와서 인류가 망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 경험은 정반대이다. 오히려 진화론을 공부하고부터, 내 몸의 기능의 하나하나를 40억년의 기록이라는 관점에서 보게되어, 더 신기하고 더 재미있고 더 놀랍게 생각되었다. 아이들에게 진화론을 가르친다고 해서 절대로 크리스천들이 주장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개와 고양이같은 동물들도 40억년전부터 불과 최근 몇 천만 년 전까지 나와 같은 선조를 공유하다가 갈라져 나간 사촌들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동물의 생명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성을 갖추게 된 인간이라는 동물의 소중함을 더 느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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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December 31, 2012
Saturday, December 29, 2012
Methink it is like a weasel에 대한 크리스천들의 반론에 대해
Richard Dawkins의 유명한 책인 The Blind Watchmaker에는 어떻게 누적되는 자연 선택에 의해 복잡한 생명체가 나타날 수 있는지를 아주 잘 보여 주는 예가 있다.
원숭이에게 타자기를 주고 아무 글자나 막 치게 했을 때 "Methink it is like a weasel"라는 문구가 만들어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실제 원숭이는 무작위로 키를 두드릴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지금부터 태양계가 없어질 때까지 자판을 두드려도 위의 문구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크리스천들이 진화를 부정할 때 드는 논리도 이 것이다. 막 두드리다가 우연히 "Methink it is like a weazel"이 나오는 게 불가능한 것처럼 사람이 어떻게 아무 계획 없는 진화로 사람처럼 복잡한 게 만들어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내 중학교의 학교 목사가 수업 시간에, 시계 부품을 상자에 넣고 100만 년 흔들어도 시계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논리이다.
Richard Dawkins는 실제 진화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제일 처음에 랜덤한 문구에서 시작한다. 예를 들면 "adjfksadjf kdsafjklasdj sdfjlsad" 이런 것이다. 그리고 자연 선택을 의미하는 컴퓨터 논리가 "Methink it is like a weasel"과 가장 많은 문자가 일치하는 것을 고른다. 그리고는 그 문자열을 기반으로, 일치하지 않은 문자를 랜덤하게 변화시킨다. 그리고 이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은 자연 선택을 나타내는 것으로, 최종 결과 (생존에 아주 유리)에 조금이라도 더 비슷한 것 (생존에 조금이라도 더 유리)이 더 살아남을 확률이 많다는 논리에 기반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반복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최종 결과에 다다르게 된다.
이 시뮬레이션에 대해 크리스천과 창조론자들이 반박하는 논리가 있다. 그런데 그 논리가 아주 유치하고 무식하므로 소개하려고 한다. 크리스천들의 주장은, 자연 상태에서 돌연 변이는 랜덤한 것인데 왜 최종 결과와 일치하는 문자는 고정시키고 다른 것만 랜덤하게 변화시키느냐는 것이다. 불쌍하게도 이런 반박을 자랑스럽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반박은 이 시뮬레이션의 요지나 자연 선택, 진화 자체를 이해 못 하는 주장이다.
일치하는 문자는 생존에 유리한 성질을 의미한다. 그리고 실제로는 수많은 개체가 있다. 살아 남는 수많은 개체 중 그 생존에 유리한 성질을 가진 것도, 가지지 않은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크게 봤을 때 그 성질을 가진 개체가 전체 개체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커져가는 쪽으로 점점 흘러간다는 게 진화이다. 그 것을 이 시뮬레이션에서, 일치하는 문자가 고정되는 것으로 개념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생존에 유리한 방법은 아주 많다. 예를 들면, 같은 아프리카 지역 안에서도 수 백 가지의 동물이 서로 독특하게 자기만의 유리한 방법으로 진화해서 살고 있다. 다만 예를 들기 위해 "Methink it is like a weasel"이라는 하나의 문자열을 골랐을 뿐, 실제 자연에서는 진화의 최종 결과가 딱 고정된 게 아니라는 거다.
이런 기본적인 것도 이해를 못하고, 저런 무식한 반박을 반박이라고 걸고 있는 지적 창조론 "과학" 사이트를 보니 참 한심하다. 지구를 공에 비유해서 밤 하늘의 달 모양 변화를 설명하고 있는데, 빌딩도 있고 산도 있고 울퉁불퉁한데 어떻게 지구가 공이냐고 반박할 수준의 지능을 가진 자들이다.
원숭이에게 타자기를 주고 아무 글자나 막 치게 했을 때 "Methink it is like a weasel"라는 문구가 만들어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실제 원숭이는 무작위로 키를 두드릴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지금부터 태양계가 없어질 때까지 자판을 두드려도 위의 문구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크리스천들이 진화를 부정할 때 드는 논리도 이 것이다. 막 두드리다가 우연히 "Methink it is like a weazel"이 나오는 게 불가능한 것처럼 사람이 어떻게 아무 계획 없는 진화로 사람처럼 복잡한 게 만들어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내 중학교의 학교 목사가 수업 시간에, 시계 부품을 상자에 넣고 100만 년 흔들어도 시계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논리이다.
Richard Dawkins는 실제 진화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제일 처음에 랜덤한 문구에서 시작한다. 예를 들면 "adjfksadjf kdsafjklasdj sdfjlsad" 이런 것이다. 그리고 자연 선택을 의미하는 컴퓨터 논리가 "Methink it is like a weasel"과 가장 많은 문자가 일치하는 것을 고른다. 그리고는 그 문자열을 기반으로, 일치하지 않은 문자를 랜덤하게 변화시킨다. 그리고 이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은 자연 선택을 나타내는 것으로, 최종 결과 (생존에 아주 유리)에 조금이라도 더 비슷한 것 (생존에 조금이라도 더 유리)이 더 살아남을 확률이 많다는 논리에 기반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반복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최종 결과에 다다르게 된다.
이 시뮬레이션에 대해 크리스천과 창조론자들이 반박하는 논리가 있다. 그런데 그 논리가 아주 유치하고 무식하므로 소개하려고 한다. 크리스천들의 주장은, 자연 상태에서 돌연 변이는 랜덤한 것인데 왜 최종 결과와 일치하는 문자는 고정시키고 다른 것만 랜덤하게 변화시키느냐는 것이다. 불쌍하게도 이런 반박을 자랑스럽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반박은 이 시뮬레이션의 요지나 자연 선택, 진화 자체를 이해 못 하는 주장이다.
일치하는 문자는 생존에 유리한 성질을 의미한다. 그리고 실제로는 수많은 개체가 있다. 살아 남는 수많은 개체 중 그 생존에 유리한 성질을 가진 것도, 가지지 않은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크게 봤을 때 그 성질을 가진 개체가 전체 개체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커져가는 쪽으로 점점 흘러간다는 게 진화이다. 그 것을 이 시뮬레이션에서, 일치하는 문자가 고정되는 것으로 개념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생존에 유리한 방법은 아주 많다. 예를 들면, 같은 아프리카 지역 안에서도 수 백 가지의 동물이 서로 독특하게 자기만의 유리한 방법으로 진화해서 살고 있다. 다만 예를 들기 위해 "Methink it is like a weasel"이라는 하나의 문자열을 골랐을 뿐, 실제 자연에서는 진화의 최종 결과가 딱 고정된 게 아니라는 거다.
이런 기본적인 것도 이해를 못하고, 저런 무식한 반박을 반박이라고 걸고 있는 지적 창조론 "과학" 사이트를 보니 참 한심하다. 지구를 공에 비유해서 밤 하늘의 달 모양 변화를 설명하고 있는데, 빌딩도 있고 산도 있고 울퉁불퉁한데 어떻게 지구가 공이냐고 반박할 수준의 지능을 가진 자들이다.
Friday, August 17, 2012
몇 천 년 지나면 인간은 모두 문어처럼 머리가 커져있을까?
예전에 어디에선가 읽은 기사에 따르면, 요즘 사람들이 주로 앉아서 머리를 쓰는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인간 뇌가 커지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듯이, 머리가 더 커지고, 팔 다리는 많이 안 써서 가늘고 길어질 것이라고 했다. 아주 쉽게 말하면, 공상 과학 영화에서 봤던 화성인처럼 된다는 것이다.
뭐, 그 소리를 들었을 당시에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본적인 진화론 책들을 읽은 지금에는 저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저 기사의 내용이 가능하려면, 머리가 크고 팔 다리가 가는 사람이 더 자식을 많이 남겨야 한다. 생존 경쟁과 번식 경쟁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아주 작은 차이도 죽고 삶, 번식 성공 실패를 가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인류는 그런 생존 경쟁을 넘어섰다. 머리가 1cm 더 크다고 한들 생존할 가능성이 0.001%도 높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여자들은 머리가 작아야 인기가 있고, 남자라고 한들, 머리가 큰 사람보다는 적당한 사람이 인기가 있을 것이다. 아예 머리를 떠나 머리가 크든 말든, 마음씨가 착하다든가, 운동을 잘 한다든가,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상대의 선택을 받아 번식에 성공할 가능성이 현재는 더 많을 것이다.
우리는 유전자의 껍데기이고, 유전자가 전달되는 것이지 우리가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유전자에 들어 있지 않은 정보는 후대에 전달되지 않는다. 우리가 아무리 머리를 평생 많이 써서 머리 굵기를 1cm 굵게 하고, 팔 다리를 가늘게 한다고 한들, 그 정보는 유전자에 원래 있던 게 아니다. 따라서 우리 자식에게는 전달되지 않는다. 진화가 일어나려면, 일단 어떤 특정 성질이 유리한 환경이 아주아주 오래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며, 그 특정 성질이 0.00001%만 더 있어도 살아날 확률이 상당히 높아질 정도로 생존 경쟁이 치열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인간은 그렇지 않다. 우리 인간은 유전자의 지배를 이제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 원래 그 근본은 유전자였지만, 이제는 유전자에 반기를 들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제어하려고 하고 있다. 마치 로봇이 로봇을 만든 사람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로봇 자체의 세상을 구축하는 것과 같다.
물론 여기에서도 과거 지식으로 쓰여진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이런 과학적 진화를 반대하고 나선다. 인류를 다시 중세로 퇴화시키려는 것이다. 줄기 세포 연구 반대하지 마라, 줄기 세포가 설사 사람이라고 한들, 그 줄기 세포가 죽는 것보다, 병을 못 고쳐 죽는 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더 아깝고 불쌍하다. 하나의 교리에 문자 그대로 집착해서 융통성 없이 지키는 크리스천들을 보면, 어린 왕자에 나오는 가로등 지기가 생각난다. 장미를 가꾸기 위해 그 위에 가로등을 두고 매일 켜고 끄라는 명령을 예전에 여왕으로부터 받았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 여왕도 죽고, 장미도 썩어 없어지고, 그 행성은 자전 속도가 빨라져 1분에 한 번 씩 밤 낮이 바뀌는데도, 예전 명령을 그대로 지키느라 아무 의미 없이 1분에 한 번씩 가로등을 켜고 끄는 가로등 지기....
이제 자연 선택으로는 우리 인간은 지금 모습에서 크게 변화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키가 커진다거나 비만이 늘어나서 체력이 약해지는 것은 단지 영양분 공급이 많아지고 운동 시간이 줄어든 탓에 생긴 현상이지 유전적 특성이 바뀐 것이 아니다.이들의 자식을 데려다가 1960년대와 같은 상황에 놓고 키운다면 그 아이는 1960년대 한국인과 똑같은 모습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 인간은 수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나이가 들면 눈도 나빠지고 이도 썩는데, 이를 스스로 복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수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며 살고 있다. 자연 선택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 인간 과학의 힘으로 이를 해결해야 한다. 예를 들어, 눈이 나빠지면 눈을 갈아 끼울 수 있고, 이가 썩어 빠지면 다시 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필요한 고통을 겪는 이들이 얼마나 줄어들 것이며, 눈이 안 보이던 사람이 눈을 뜨게 된 사람 중 대단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어 인류가 엄청나게 발전할지 누가 아는가.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는 진화. 나도 가능한 오래 살아서 우리가 진화하는 모습을 좀 더 멀리 보고 싶다.
뭐, 그 소리를 들었을 당시에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본적인 진화론 책들을 읽은 지금에는 저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저 기사의 내용이 가능하려면, 머리가 크고 팔 다리가 가는 사람이 더 자식을 많이 남겨야 한다. 생존 경쟁과 번식 경쟁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아주 작은 차이도 죽고 삶, 번식 성공 실패를 가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인류는 그런 생존 경쟁을 넘어섰다. 머리가 1cm 더 크다고 한들 생존할 가능성이 0.001%도 높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여자들은 머리가 작아야 인기가 있고, 남자라고 한들, 머리가 큰 사람보다는 적당한 사람이 인기가 있을 것이다. 아예 머리를 떠나 머리가 크든 말든, 마음씨가 착하다든가, 운동을 잘 한다든가,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상대의 선택을 받아 번식에 성공할 가능성이 현재는 더 많을 것이다.
우리는 유전자의 껍데기이고, 유전자가 전달되는 것이지 우리가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유전자에 들어 있지 않은 정보는 후대에 전달되지 않는다. 우리가 아무리 머리를 평생 많이 써서 머리 굵기를 1cm 굵게 하고, 팔 다리를 가늘게 한다고 한들, 그 정보는 유전자에 원래 있던 게 아니다. 따라서 우리 자식에게는 전달되지 않는다. 진화가 일어나려면, 일단 어떤 특정 성질이 유리한 환경이 아주아주 오래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며, 그 특정 성질이 0.00001%만 더 있어도 살아날 확률이 상당히 높아질 정도로 생존 경쟁이 치열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인간은 그렇지 않다. 우리 인간은 유전자의 지배를 이제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 원래 그 근본은 유전자였지만, 이제는 유전자에 반기를 들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제어하려고 하고 있다. 마치 로봇이 로봇을 만든 사람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로봇 자체의 세상을 구축하는 것과 같다.
물론 여기에서도 과거 지식으로 쓰여진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이런 과학적 진화를 반대하고 나선다. 인류를 다시 중세로 퇴화시키려는 것이다. 줄기 세포 연구 반대하지 마라, 줄기 세포가 설사 사람이라고 한들, 그 줄기 세포가 죽는 것보다, 병을 못 고쳐 죽는 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더 아깝고 불쌍하다. 하나의 교리에 문자 그대로 집착해서 융통성 없이 지키는 크리스천들을 보면, 어린 왕자에 나오는 가로등 지기가 생각난다. 장미를 가꾸기 위해 그 위에 가로등을 두고 매일 켜고 끄라는 명령을 예전에 여왕으로부터 받았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 여왕도 죽고, 장미도 썩어 없어지고, 그 행성은 자전 속도가 빨라져 1분에 한 번 씩 밤 낮이 바뀌는데도, 예전 명령을 그대로 지키느라 아무 의미 없이 1분에 한 번씩 가로등을 켜고 끄는 가로등 지기....
이제 자연 선택으로는 우리 인간은 지금 모습에서 크게 변화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키가 커진다거나 비만이 늘어나서 체력이 약해지는 것은 단지 영양분 공급이 많아지고 운동 시간이 줄어든 탓에 생긴 현상이지 유전적 특성이 바뀐 것이 아니다.이들의 자식을 데려다가 1960년대와 같은 상황에 놓고 키운다면 그 아이는 1960년대 한국인과 똑같은 모습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 인간은 수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나이가 들면 눈도 나빠지고 이도 썩는데, 이를 스스로 복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수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며 살고 있다. 자연 선택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 인간 과학의 힘으로 이를 해결해야 한다. 예를 들어, 눈이 나빠지면 눈을 갈아 끼울 수 있고, 이가 썩어 빠지면 다시 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필요한 고통을 겪는 이들이 얼마나 줄어들 것이며, 눈이 안 보이던 사람이 눈을 뜨게 된 사람 중 대단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어 인류가 엄청나게 발전할지 누가 아는가.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는 진화. 나도 가능한 오래 살아서 우리가 진화하는 모습을 좀 더 멀리 보고 싶다.
Monday, July 23, 2012
중/고등학교에서 진화론을 더 잘 가르치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유명한 질문이 있다. 예전에 이 질문을 들었을 때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을 것 같았다. 어느 쪽이 먼저라고 해도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모순은 내가 진화론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아마추어 수준으로 아는 것이지만, 그 때는 더 몰랐었다).
두 선택지 모두 답이 아니다. 그래도 그나마 가까운 것은 달걀이다. 정답은 그냥 알이겠지. 이 질문에 우리가 답을 할 수 없었던 것은 모든 종(species)의 구분이 명확해, 그 종의 첫 번째 개체가 존재했었다는 잘못된 상식에 기반한다.
얼마 전에 의대 2학년생이라는 사람과 인터넷으로 채팅을 한 적이 있다. 상대방이 의대생이라길래, 진화론이 맞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어 보니, 그렇다고 하길래, 나도 진화론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후, 한 가지를 물어 봤다.
종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람이 정한 것이며, 자연계에서 명확한 구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와 자식은 분명히 같은 종이지만 아주 작은 유전적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세대가 거듭되어 이 차이가 누적되어, 그 차이가 적당히 커지면 다른 종으로 구분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N이라는 생물 종이 있고, 1세대를 N1, 그 자식을 N2, 그 자식을 N3 이런 식으로 N1부터 N10000까지 늘어 놓으면 Nx와 Nx-1은 항상 같은 종이며, Nx와 Nx+1도 같은 종이지만 N1과 N10000은 다른 종이될 수도 있는 거라고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을 내 설명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부모와 자식이 항상 같은 종인데 N1과 N10000은 다른 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 못 하는 것이었다.
뭐, 사실 인터넷이라서 그 사람이 실제로 의대생이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 게 사실이라면, 의대생 정도 되는 교육을 받은 사람조차 진화론의 기본적 개념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생물을 배웠지만 나도 리처드 도킨슨의 책을 읽기 전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교육에 문제가 있다. 왜 이런 내용을 생물학 시간에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
어쨌든, 다시 달걀/닭 문제로 되돌아 가면, 어느 날 갑자기 닭이 아니던 새가 새끼를 놓고 봤더니 그 게 닭이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닭과 비슷한 새 종류가 있었고, 그 게 한 마리만 있던 게 아니고 수 천, 수 만 마리가 모여 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조류였으니 알을 낳고 있었을 것이다. 그 집단이 분리되어 살고 있던 지역의 환경과 상황에 맞게 지금의 닭이 가진 특징을 나타내는 유전자들이 서서히 "자연 선택"에 의해 퍼져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개체들이 그 유전자를 갖게 되었을 때, 그들은 이제 닭이라는 종이 된 것이다.
조류는 공룡과 같은 파충류로부터 진화한 것이고, 파충류는 양서류로부터 진화한 것이고, 양서류는 어류로부터 진화한 것이고 그들은 모두 알을 낳고 있었으니, 결국 닭보다는 알이 먼저가 되는 것이다. 닭걀은 아니지만.
두 선택지 모두 답이 아니다. 그래도 그나마 가까운 것은 달걀이다. 정답은 그냥 알이겠지. 이 질문에 우리가 답을 할 수 없었던 것은 모든 종(species)의 구분이 명확해, 그 종의 첫 번째 개체가 존재했었다는 잘못된 상식에 기반한다.
얼마 전에 의대 2학년생이라는 사람과 인터넷으로 채팅을 한 적이 있다. 상대방이 의대생이라길래, 진화론이 맞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어 보니, 그렇다고 하길래, 나도 진화론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후, 한 가지를 물어 봤다.
부모와 자식은 항상 같은 종(species)입니다. 그런데 진화론이 맞다면 어떻게 예전의 다른 종이었던 생물로부터 현재의 새로운 종의 생물들이 진화해 나올 수 있었나요?그 사람이 얼마나 시험해 보려고 물었던 것이다.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두 개체가 교배되어 자식을 낳으면 새로운 종이 생길 수 있는 것이 아닌가요?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다시 말했다.
전제했다시피, 부모와 자식은 항상 같은 종입니다.그러자 그 사람은 나에게 당신은 진화론을 믿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화를 내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나는 찬찬히, 나는 진화론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당신이 진화론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한 번 알아 보려고 그랬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설명을 해 주었다.
종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람이 정한 것이며, 자연계에서 명확한 구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와 자식은 분명히 같은 종이지만 아주 작은 유전적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세대가 거듭되어 이 차이가 누적되어, 그 차이가 적당히 커지면 다른 종으로 구분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N이라는 생물 종이 있고, 1세대를 N1, 그 자식을 N2, 그 자식을 N3 이런 식으로 N1부터 N10000까지 늘어 놓으면 Nx와 Nx-1은 항상 같은 종이며, Nx와 Nx+1도 같은 종이지만 N1과 N10000은 다른 종이될 수도 있는 거라고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을 내 설명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부모와 자식이 항상 같은 종인데 N1과 N10000은 다른 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 못 하는 것이었다.
뭐, 사실 인터넷이라서 그 사람이 실제로 의대생이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 게 사실이라면, 의대생 정도 되는 교육을 받은 사람조차 진화론의 기본적 개념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생물을 배웠지만 나도 리처드 도킨슨의 책을 읽기 전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교육에 문제가 있다. 왜 이런 내용을 생물학 시간에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
어쨌든, 다시 달걀/닭 문제로 되돌아 가면, 어느 날 갑자기 닭이 아니던 새가 새끼를 놓고 봤더니 그 게 닭이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닭과 비슷한 새 종류가 있었고, 그 게 한 마리만 있던 게 아니고 수 천, 수 만 마리가 모여 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조류였으니 알을 낳고 있었을 것이다. 그 집단이 분리되어 살고 있던 지역의 환경과 상황에 맞게 지금의 닭이 가진 특징을 나타내는 유전자들이 서서히 "자연 선택"에 의해 퍼져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개체들이 그 유전자를 갖게 되었을 때, 그들은 이제 닭이라는 종이 된 것이다.
조류는 공룡과 같은 파충류로부터 진화한 것이고, 파충류는 양서류로부터 진화한 것이고, 양서류는 어류로부터 진화한 것이고 그들은 모두 알을 낳고 있었으니, 결국 닭보다는 알이 먼저가 되는 것이다. 닭걀은 아니지만.
Saturday, February 25, 2012
진화론을 반박하(려고 애쓰)는 크리스천의 주장들에 대한 대답.
나는 생물학자가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리처드 도킨슨의 책과 다큐멘터리 등에서 얻은 아마추어 레벨의 수준이다. 그런 나도 이 정도는 대답할 수 있다. 그러면 생물학자들은 얼마나 더 잘 답할 수 있겠는가.
나는 기독교 중학교를 나왔다. 다음의 질문 중 일부는 실제로 목사가 성경 수업 시간에 애들에게 했던 것이다. 아직 중학생이라 잘 모르는 애들에게 저런 사이비 질문들로 종교를 주입하려고 한 것에 화가 난다.
1. 인간이 진화의 산물이면, 다른 동물은 왜 진화 안 했는데? 원숭이는 왜 아직 원숭이 상태로 있는 건데?
나는 기독교 중학교를 나왔다. 다음의 질문 중 일부는 실제로 목사가 성경 수업 시간에 애들에게 했던 것이다. 아직 중학생이라 잘 모르는 애들에게 저런 사이비 질문들로 종교를 주입하려고 한 것에 화가 난다.
1. 인간이 진화의 산물이면, 다른 동물은 왜 진화 안 했는데? 원숭이는 왜 아직 원숭이 상태로 있는 건데?
- 인간이 진화의 최종 단계가 아니야. 생명체에게 있어 진화란 가장 잘 살아 남아 번식하는 것일 뿐. 즉, 번식을 가장 잘 할 수 있도록 진화하는 거지. 그 관점에서 박테리아가 우리 인간보다 열등한 존재가 아니야. 인간의 가치인 "지능", "이성" 이런 것들로 보면 우리가 우위지.
- 다른 동물은 이미 그들이 가장 잘 살아 남을 수 있는 형태로 진화한 것이야.
- 원숭이와 인간의 공통 조상은 환경이 단절되며 서로 다른 환경에 맞도록 진화한 것이야. 지금 원숭이들이 산 곳에서는 그 원숭이 모양으로 살기에 불편함이 없었기에 그 모양이 거의 안 바뀐 것이고, 우리 인류가 나아간 곳은 그런 모양으로 살아 남을 수 없었기에 현재 모양으로 바뀐 것이지.
2. 중간 단계 생물 화석을 내 놔. 사람과 원숭이 중간 생물이 어디 있어?
- 기독교 논리와 다르게 이 세상은 흑백 논리가 아니야. 중간이 무수하게 많아. 디지털이 이니고 아날로그란 거지. 어제하고 오늘하고 확 다르게 보이는 사람은 없어. 2000년 1월 1일의 나나 2000년 1월 2일의 나와 구분이 안 되고, 1월 2일과 1월 3일의 나도 구분이 안 되고, 그런식으로 쭉 오늘까지 매일 그 전날과 비교해도 구분이 안 되지. 하지만 2000년 1월 1일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면? 다르지. 바로 그 차이야, 생물의 종이라는 건.
- 한 종이라고 해서 완전히 같은 개체들로 이루어진 게 아니야, 다들 달라. 하지만 한 종이면 거의 비슷비슷하지. 서로 다른데, 그 차이가 적당히 적어서 적당히 교배가 되면 한 종으로 그냥 우리 편의상 보는 거지. 원형 종이라고, A와 B는 교배가 되고, B와 C도 교배가 되고 C와 D도 교배가 되는데, A와 D는 교배가 안 되는 종이 있어. 어디까지가 하나의 종일까? 어느 날 새로운 종이 갑자기 확 나타나는 게 아니야. 항상 엄마는 자기와 똑같은 종의 새끼만 낳아. 그런데 아주 약간 차이가 있지. 그게 몇 백 만 년 누적되어 봐, 몇 백 만 년 전 조상하고 지금 개체하고 너무나 차이가 누적되어 그냥 다른 종이 되어 버리는 거야. 2000년 1월 1일의 나와 지금의 나처럼.
- 사람과 원숭이 중간 화석은 이미 많이 나왔어. 유인원 화석들 박물관에 가서 봐. 제발 똑같은 소리 그만하고.
3. 시계 재료를 깡통에 넣고 100억 년 흔들어 봐라, 그게 저절로 시계로 조립되나.
- 서로 특성이 다른 걸 가지고 비유하고 있잖아.
- 시계 조립은 기계적인 작용이지 화학 반응과 관계가 없어. 생물체의 진화는 화학 반응에 의해 처음 생성된 아주 원시적인 분자 화합물로부터, 같은 화합물을 생성하는 아주 단순한 작용이 진행되고, 그 과정에 여러 가지 이유로 생성 과정에 오차가 생기는 것에 기인하는 거지. 지금까지 내용은 확률적으로 어렵지 않지?
- 생물체의 진화는 그냥 뭐라 그럴까, 토탈러지라 그러나, 항상 참인 논리야. 가장 잘 복제하는 놈이 가장 잘 살아 남는다. 여러 가지 오차로 같은 화합물을 생성하는 것들의 여러 변종이 생겼어. 대부분 제대로 안 되겠지. 잘 되던 방식에서 뭔가 바뀐 거니 잘 안 될 확률이 높아. 그런 것들은 항상 참인 논리로, 복제를 못하므로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없어져.
- 그런데 저 과정이 동시 다발적으로 엄청나게 긴 시간 동안 반복돼. 그러다 보면 그 변종 중에는 오리지널보다 약간 더 복제를 효율적으로 하는 놈이 나온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지?
- 그럼 역시 항상 참인 논리로, 그 화합물은 똑같은 놈을 더 많이 만드는 데 성공하지. 이런 게 또 엄청나게 긴 시간 동안 반복돼.
- 이러면 계속 복제를 잘 하는 쪽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지.
- 인간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우리에게 보이는 건, 그렇게 우리에게 보이는 것이지 고정된 현실이 아니야. 예를 들어, 새끼 고양이는 우리에게 예뻐 보이지만, 벼룩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그냥 털 조각밖에 안 보이겠지. 우리가 보는 빨간 색. 외계인에게는 어떻게 보일른지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지.
- 생명체가 우리에게는 아주 특이하고 유전자와는 관계 없는 의식을 가진 특별한 존재로 보일 수 있겠지만,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그냥 유전자와 그 보호막 덩어리로 보일 수도 있겠지.
- 동물처럼 복잡하고 대단한 것이 화합물에서부터 나올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고정 관념을 버려.
4. 어떻게 이 모든 것이 이렇게 완벽할 수 있지? 신이 환경을 꾸미고 인간을 만든 게 아닌가?
-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지 마. 지구 환경이 우리를 위해 바뀐 게 아니고, 우리고 환경에 맞게 바뀐 거야.
- 지구 환경은 완벽하지 않아. 내가 만약 신이었다면, 바이러스나 기생충이 인간은 못 건드리게 하고, 인간은 100살이 되면 편안하게 죽게 디자인했을 거야. (제발! 인간이 사과를 먹어서 신이 벌을 준 거라고 하지 말자. 내가 완벽한 사랑의 신이었으면 그 자리에서 용서했을 거니까. 신이 나보다 못해?)
-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에만 해도 행성은 몇 천 조 개 이상 있을 거야. 그렇게 많다 보면 그 중 몇 개는 온도가 적당할 수도 있는 거지. 물도 적당할 수 있는 거고. 그리고 꼭 물과 온도가 지구와 같지 않더라도, 그 환경에 맞는 우리와 전혀 다른 타입의 생명체도 있을 수 있어.
- 다시 말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것을 그렇게 믿는 고정 관념을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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