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이폰 5를 받았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기대가 너무 컸던 것 같다.
간단히 나의 iOS 역사를 말하자면, 나는 2009년 2월에 중고로 iPod Touch 2 8GB 모델을 21만 원 가량에 사서 처음 쓰게 되었다. 이 게 나의 첫 스마트 기기였다고 할 수 있다. 처음 샀을 때는 이 작은 기기로 웹도 되고 스카이프도 되고 일본어로 메일도 보낼 수 있는 게 너무나 신기했다. 아마 OS 버전이 2.3인가 그랬을 것이다. 그러다가 2011년에 iPod Touch 4 32G 모델을 샀고, 2012년 6월에는 iPad 3세대 16GB를 샀다. 이들은 다들 현재 중고로 팔아버린 상태이다.
불량
일단 개봉하면서 불량이 걸리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iPad 3세대는 그라데이션 액정이라고 불리는 한 쪽이 불그스름한 것이었고, 지난 주에 iPod Touch 5세대를 중고로 샀다가 액정 안에 먼지가 있어서 반품했다. 요즘들어 애플 제품 불량률이 너무 높은 건지, 아니면 내가 운이 더럽게 없는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아이폰 5를 개봉해서 일단 액정부터 살폈는데, 액정은 양호한 편이었다. 누런 색감도 아니었고, 불량 화소나 먼지도 없었다. 다만 가장자리 색이 약간 바랜 듯한 느낌이 들기는 하던데, 뭐 이 건 그냥 넘어가자. 문제는 테두리였다. 자세히 보니 미세하게 찍힌 자국과 점 같은 얼룩이 앞 뒤로 몇 개나 있었다. 왠지... 애플이 이대로 저물어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게 애플의 신조 아니었던가? 이런 문제가 있어도 고객이 자기 시간과 차비를 들여 바꾸러 가야겠지? 귀찮아서 그냥 쓰기로 했다.
나의 첫 번째 아이폰
iPod Touch/iPad는 써 봤지만 아이폰은 처음이다. Sim 카드를 넣어야 하는데 그림을 봐도 어떻게 하라는 건지 잘 이해가 안 되었다. 안드로이드 전화기들은 뒷 면을 열면 쉽게 넣을 수 있었는데 말이다. 주위 사람에게 물어 Sim 카드를 넣고 장착했다. Sim 카드도 애플이 제안한 이상한 나노 Sim인가 하는 아주 작은 걸 쓴다. 굳이 기존 마이크로 Sim을 두고 이 걸 만들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도대체 공간을 얼마나 절약하겠다고? 몇 mm 줄이겠다고 기존 다른 전화기들이 잘 쓰고 있는 표준을 버리고 왜 새로 만드나? Sim 카드의 취지가 뭐냐, 여러 전화기들을 쉽게 갈아가며 쓸 수 있게 하는 거 아니었나?
어라, LTE로 액티베이션이 안 된다.
안드로이드 기기는 처음 켜서 구글에 등록할 때 3G로 접속이 가능했다. 등록하기 싫으면 건너뛰고 나가도 된다. 그런데 애플의 경우 등록을 건너뛸 수 없었다. 그리고 LTE 모델인데도 No Service가 뜨며 Wi-Fi 접속을 요구했다. 왜? 할 수 없이 주변 안드로이드 유저에게 핫 스팟을 켜 달라고 해서 등록을 마쳤다. 등록을 마치자 전화가 가능했고 LTE 데이터도 연결되었다.
화면이 너무 작다.
갤럭시 넥서스에 너무 익숙해져서인가, 화면이 너무 작다. Wi-Fi로 이전에 사 두었던 게임들을 모두 다운로드했더니 전에 28.1GB (32GB라고는 하나 OS가 차지하는 공간이 있음) 중 19.5GB가 남았다. 피파 2013을 돌렸는데 선수가 너무 작아 플레이하기가 어렵다. 안드로이드 피파 2012도 구매했는데, 갤럭시 넥서스에서 적당히 할만했다.
잠깐 쓰자마자 안드로이드에 비해 단점이 눈에 띈다.
늘 하듯이 화면 상단에서 스와이프 다운을 했다. 날씨와 주식이 있는 메뉴가 나왔는데, 안드로이드에 비해 너무 썰렁했다. 말 그대로 날씨하고 주식밖에 없었다. 오늘 날짜도 안 보인다. 순간 안드로이드 노티피케이션 시스템의 위대함(?)이 갑자기 느껴졌다. 안드로이드 노티피케이션이 워낙 인기가 있으니 애플이 iOS 5에서 부랴부랴 따라했는데, 아직 한 참 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시 있으니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받을까 하다가 안 받았다. 안드로이드에서는 The Call을 깔아 두었기 때문에 스팸 번호면 착신 화면 위에 스팸이라고 뜨면서 자동으로 끊어져 버린다 (자동으로 끊어 버리게 내가 설정했다). 그런데 아이폰에서는 프로그램이 전화 시스템에 접근할 수 없기에 그런 기능을 구현할 수 없다. 잠깐 아이폰으로 바꾼 게 후회가 되었다. 아무래도 전화로서의 기능은 아이폰보다 안드로이드가 훨씬 나은 것 같다.
앱 스토어에 들어갔는데, 아이패드만 그런 줄 알았더니 아이폰에서도 스크롤이 뚝뚝 끊긴다. 2년 전 안드로이드나 마켓에서 스크롤이 끊겼지, 갤럭시 넥서스는 마켓에서 스크롤이 부드럽다. 그런데 애플이 스크롤이 끊기다니 개망신이다. 네트워크 문제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이렇게 끊기는 데 1년 가까이 안 고치고 있나?
인기 앱 목록을 쭉 보며 받을 걸 찾아 봤는데, 게임 몇 개를 빼고는 대부분 안드로이드에 다 있는 것들이었다. iOS에서만 되는 특별한 게 별로 없었다. 순간 애플이 조금만 방심하면 도태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면에 대해
갤럭시 넥서스에 비해 아이폰 화면이 더 밝고 화사한 느낌이다. AMOLED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화소가 닳기 때문에 안심하고 오래 켜 놓을 수가 없다. 아이폰은 LCD라서 그런 걱정이 없다. 그런 점에서 아이폰 화면이 더 좋은 면이 있다. 다만 너무 작기 때문에 좀 잘 안 보인다. 불과 2~3년 전에 쓴 iPod Touch는 화면이 더 작았는데 어떻게 썼나 싶다. 그 때는 그렇게 화면 작다는 생각이 안 들었었는데.
새로운 EarPod 음질 차이가 없다.
4년 정도 애플 번들 이어폰을 (돈도 없고 뭐가 좋은 건지도 모르겠고 해서) 써 왔다. 안드로이드 전화기에도 애플 번들 이어폰을 썼는데, 안드로이드 번들 이어폰이 조잡하거나 커널형이어서이다. 커널형은 걸어갈 때 귓 속에 닿아서 서걱서걱거려서 싫다. 애플 광고에 EarPod를 몇 년에 걸쳐 연구 개발했네 그래서 엄청날 줄 알았다. 그런데 들어 보니? 음질 차이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어폰 머리가 커서 귀에 잘 안 들어간다. 그리고 리모콘도 커져서 좀 보기가 싫다.
갤럭시 넥서스의 경우 이어폰이 꽂힌 상태로 이어폰을 건드리면 (돌리면) 잡음이 거의 나지 않으나, 새로운 EarPod의 경우 잡음이 지지직 난다.
스피커 음량은 확실히 갤럭시 넥서스보다 낫다.
욕실에서 안드로이드 기기로 Richard Dawkins의 audiobook을 자주 듣는데, 갤럭시 넥서스의 경우 볼륨을 최대로 해도 소리가 작아서 샤워를 틀면 잘 안 들렸다. 아이폰의 경우 음질을 최대로 하면 너무 시끄러워서 볼륨을 좀 낮추고 샤워를 했으며, 그래도 잘 들렸다. 안드로이드 기기 중 스피커가 뒤에 조그맣게 있는 경우가 많은데... 애플이 특허 낸 거 아니면 애플처럼 기기 옆 면에 달아라. 뒤에 있으면 바닥에 놓으면 잘 안 들린다. 스피커 음량이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집에서 이어폰 계속 끼고 있으면 귀도 아프고 해서 나는 주로 스피커로 듣는다. 스피커 음량이 크다고 해서 손해 볼 건 없다.
사진도 너무 많은 기대를 했나?
아이폰 3GS 때까지만 해도 아이폰은 사진 품질이 다른 고가 휴대 전화에 비해 열등한 기기였다. 그러다가 4에서 갑자기 최고급 품질을 가진 기기가 되었다. 그 전통은 계속 이어졌고, 5는 역대 아이폰 중 가장 품질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사진 품질을 많이 기대했는데... 찍어 보니 갤럭시 넥서스와 별 차이를 모르겠다. 작은 화면으로 봐서 그런가?
게다가 좀 웃긴 상황이 생겼다. 집에 오는 길에서 기본 설정으로 찍었더니 플래시가 터지면서 사진 전체가 희뿌옇게 찍혔다. 같은 위치에서 (눈이 오기는 했지만) 갤럭시 넥서스로 찍었을 때는 역시 플래시가 터졌지만 아이폰처럼 전체가 희뿌옇게 찍히는 웃기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갤럭시 넥서스에는 오히려 반짝이는 멋진 효과가 났는데... 플래시를 끄고 찍은 아이폰 5 사진도 갤럭시 넥서스보다 못한 생각이 들었다. 가로등 근처를 보면 이상한 계단 모양 계조가 생겨있다. 갤럭시 넥서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갤럭시 넥서스 기본 설정 (플래시 자동으로 터짐)
갤럭시 넥서스 (위의 사진 찍고 잠시 뒤 플래시 끄고 찍음)
아이폰 5 기본 설정 (플래시 자동으로 터짐)
아이폰 5 (위의 사진 찍고 잠시 뒤 플래시 끄고 찍음)
iCloud 백업 (약간 다른 이야기)
위의 사진을 첨부하려고 포토스트림 동기화를 기다렸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뜨지 않았다. 알고 보니 포토스트림은 프라이머리 계정만 동기화되는 거였다. 내 경우 미국/일본/한국 용으로 애플 계정이 세 개 있다. 아이폰은 미국 계정으로 동기화해 놓고 맥북에서는 한국 계정/미국 계정을 등록해 놓았는데, 먼저 등록된 한국 계정이 "프라이머리 계정"이 되어있고, 미국 계정은 세컨더리 계정으로 설정되어 있었는데, 세컨더리 계정은 포토스트림 동기화가 안 된다고 나와 있었다. 즉, 한 사람이 여러 계정 만들어서 애플에 돈 내고 추가 공간을 안 사고 계정의 공간을 합쳐서 쓰는 걸 막으려는 애플의 수이다. 사진까지 다 포함해서 5GB는 너무 적지 않나? 돈도 많이 벌었을 텐데.. 구글은 사진 공간과 Google Drive는 별개인 걸로 알고 다중 계정 동기화 제한도 없다. 계정을 하나로 합치고 싶은데 사 놓은 앱들을 옮길 수도 없다. 한 계정에서 다른 계정으로 모든 앱을 넘기는 기능을 애플과 구글이 좀 허용했으면 좋겠다.
앱 동기화 끄는 기능이 어디로 갔지?
분명히 예전 버전 iTunes에서는 동기화할 항목을 고르는 게 있었는데, 최신 버전에서는 그 게 안 보인다. 음악을 "수동"으로 넣으려고 케이블을 꽂고 음악 파일을 드래그한 후 적용을 눌렀는데 갑자기 수 GB나 되는 앱들을 맥북으로 동기화한다. SSD라 공간도 적은데 말이다. 어차피 서버에 다 있는 앱 바이너리 파일을 왜 노트북 디스크에 캐시하는지 모르겠다. 앱 설정만 캐시하는 것도 아니고.
충전은 빠르다.
갤럭시 넥서스에 비하면 아이폰 충전은 정말 빠른 것 같다. 라이트닝 케이블이라는 독자 규격을 쓴 건 마음에 안 드나, 내가 USB/HDMI 등의 케이블에서 제일 싫어하는 성질인 "방향성"을 해결해 준 건 정말 마음에 든다. 솔직히 매번 USB 케이블 연결할 때 다들 고생하지 않나? 컴퓨터마다 방향도 일관되지 않고 구멍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앞 뒤 구분도 잘 안 될 뿐더러, 컴퓨터에 따라서는 뻑뻑해서 힘주어 넣다 보면 반대 방향으로도 꽂히는 경우가 있다. 이번에 회사에서 받은 HP 데스크톱의 경우 USB 메모리를 반대로 꽂았는데 꽂히더라. 인식이 안 되어서 보니 반대로 꽂혀 있었고, 메모리 접촉면이 손상되었다.
누가 USB 디자인했는지 잘 모르겠다만, 최소 방향에 일관성이 있든가, 아니면 양면으로 다 꽂히게 하든가 해야지 지금 현실은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위짓 없는 것은 짜증난다.
갤럭시 넥서스에서는 무제한 3G를 쓰고 있었지만 아이폰이 되면서 LTE 용량 제한이 있다. 실수로 LTE로 큰 파일을 받는 것을 막으려고 데이터를 끄려고 했더니 설정에서 여러 단계를 찾아 가야 가능했다 (데이터 끄기와 LTE 끄기가 별도로 있는데 차이는 나중에 알아 봐야겠다). 안드로이드면 바탕 화면에 쉽게 위짓으로 원터치 토글이 가능하다. 기기에 따라서 노티피케이션 바에서 쉽게 토글할 수도 있다. 애플은 매번 설정을 찾아 들어가서 여러 단계를 거쳐 해야 한다. 이 것은 정말 짜증난다. 설정 토글은 빠르게 할 수 있도록 애플이 무슨 시스템을 마련해야할 것 같다.
시스템 크리덴셜이 중앙집중식으로 관리되지 않는다.
이미 앱 스토어와 iCloud에 애플 계정으로 로그인되어 있는데도, 같은 애플 제품에, 애플 계정을 쓰는 Find Friends나 게임 센터에 로그인하라는 화면이 각각 다시 나왔다. 솔직히 모바일 기기에서 로그인 정보를 쳐 넣는 것은 짜증나는 일이다. 안드로이드의 경우 시스템에 중앙 집중식으로 계정을 한 번 등록해 두면, 각 앱들은 계정의 크리덴셜을 공유해 쓸 수 있어, 다시 로그인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비밀 번호가 앱으로 공유되는 게 아니다. "로그인되었다는" 토큰만 공유된다.
예를 들어 내 구글 계정이 id:steve, password:1234라고 치자. 안드로이드 시스템에서 저 정보로 로그인해 두면 gjklajfiajriofjsidj 이런 토큰이 생긴다 (임의의 값임). 앱들은 이 토큰을 얻을 수 있고, 구글 서버로 gjklajfiajriofjsidj을 보내면 구글 서버에서는 steve로 인식하는 거다. 애플처럼 매 프로그램에서 새로 로그인하는 것보다 훨씬 발전된 시스템이다.
안드로이드보다 못한 일본어 시스템
Google Japanese Input이 나오기 전까지는 iOS의 일본어 입력 시스템이 압도적으로 우위였다. 사실 그 점 때문에 iOS 기기가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Google Japanese Input 안드로이드 버전이 나오면서 상황은 완전 역전되었다. Google의 입력 시스템이 훨씬 더 문장 분석을 잘 하고, 더 정확하고 최신인 후보를 보여준다. 아이폰에서 일본어를 몇 자 입력하다가 Google Japanese Input이 다시 쓰고 싶어졌다.
구글 전화 번호부 (contacts) 동기화가 안 된다.
구글 계정을 입력했으나, Mail, Calendars, Notes밖에 뜨지 않는다. 즉, 전화 번호부 동기화가 안 된다. 내 전화 번호는 모두 구글 계정에 있는데 동기화가 안 되니 이 거 전화를 걸 수가 없다. 맥북에서 구글 전화 번호를 동기화하고 그 걸 다시 아이폰으로 동기화해야할 것 같다. 아무래도, 하드코어 구글 유저에게 아이폰은 좀 아닌 것 같다.
나머지는 좀 더 써 보고...
기대가 너무 컸는지 여러 단점만 크게 보이는데, 좀 더 써 보고 장단점을 분석하겠다. 갤럭시 넥서스보다 할부 원금이 5배 가까이되는 점을 고려해 봤을 때, 솔직히 갤럭시 넥서스에 비해 아이폰 5를 추천하기는 힘들 것 같다, 특히 구글 유저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