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방송되었던 "뿌리 깊은 나무"의 초반부를 재미있게 보았다. 물론 뒤로 갈수록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재미도 없었다. 초반부에 많은 사람이 기억에 남았을 대사는, 태종이 죽기 직전에 세종을 붙잡고는, (정확히는 내가 기억을 못하겠지만 다음과 같은 요지의) "네가 하려는 짓은 멍청한 것이지만,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해 내라, 그래서 후대 사람들이 나의 가장 큰 업적은 너를 다음 임금으로 정한 것이라고 말하도록 해라."라고 한 것일 것이다.
태종과 세종은 성격이 많이 다르다. 태종은 무력을 앞세워 반대 세력들을 죽이고 절대적인 정치를 했지만, 세종은 과학과 지식, 협의를 중시했다. 그런데 태종은 세종을 왕으로 세웠다. 내가 역사를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고, 태종의 아들 중에 워낙 마땅한 인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세종을 왕으로 세울 수밖에 없었다고 그러는 사람도 있었다. 뭐 어쨌든 적어도 태종이 세종을 왕으로 세우는 것을 받아들인 것은 맞을 것이다. 세종이 왕이 되지 못했으면 우리 민족은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끔찍하다. 정말 태종의 최대 업적은 세종을 왕으로 세운 것인 것 같다.
어제 애플의 새로운 CEO인 팀 쿡이 50조 가량을 주주들에게 배당하기로 하는 등의 정책을 발표했다. 스티브 잡스는 유능한 인물이었다. 아무도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다큐멘터리를 보니, 그와 같이 일하려면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 잘은 몰라도, 그의 고집대로,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대부분의 일이 진행되었으리라. 그리고 애플은 사회 기부를 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기부를 하는 일은 좋은 것이지만, 기부를 안 하는 것이 나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든 잡스는 그런 사람이었다. 잡스가 죽기 전인 작년에도 이미 수 십 조 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가지고 있었지 돌려 줄 생각은 안 했다. 어찌 보면, 잡스와 쿡의 관계가 태종과 세종의 관계와 비슷하지 않은가?
태종이 정적을 제거해 놓았기에 세종이 문화를 펼 수 있었듯이,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거대 기업으로 만들어 놓았기에, 팀 쿡이 원하는 바를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가 후계자로 고른 인물이, 잡스가 전혀 하지 않던 일을 한다. 현금 보유의 반이나 되는 큰 돈을 3년에 걸처 나눠 주기로 했다. 쿡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지만, 잡스가 고른 인물이라면 분명히 뭐가 있을 것이다. 잡스의 최대 업적이 팀 쿡을 다음 CEO로 세운 것이 될 수 있을까? 매년 정기적으로 나오는 애플 제품을 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올 해 가을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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