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pril 30, 2012

11번가, "이제! 크롬, 파이어폭스, 사파리, 오페라에서도 주문하실 수 있습니다"?

결론, 기대한 내가 바보지.

"이제! 크롬, 파이어폭스, 사파리, 오페라에서도 주문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며칠 전부터 보고 기대를 많이 했었다. 마침 11번가에서 뭐 살 일이 없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 뭐 살 일도 있고, 마침 가상 머신도 사용하기 힘든 상황이라, Lion에서 Safari를 이용해 결제를 해 보려고 했다.

구매하기 버튼을 누르니 결제 페이지로 넘어가는데, 자동으로 "KCPPluginHubSetup.exe"를 다운로드한다. 뭐 맥이라 실행은 못 해 보지만, 이름을 봐서는 결제 모듈 플러그인 프로그램인 것 같다. 이 사람들은 바보인가? 완전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이지.
이 걸 맥에서 어쩌라고...
한국 사용자들이 그토록 액티브X를 추방하자고 하는 이유가 뭔데. 단순히 액티브X라는 것을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플랫폼에서도 쓸 수 있도록, 기본 웹 브라우저 지원 기능 외에 운영체제 종속적인 부가 기능을 쓰지 말자는 것이다. 그런데 저렇게 떡하니 결제 모듈 Windows 프로그램을 따로 깔게 만든다. 즉, 이건

    [자동 설치되는 ActiveX 결제 모듈]
           ---> [수동 설치되는 네스케이프 호환 플러그인 형식의 결제 모듈]

이렇게 바꾼 꼴밖에 안 될 것이다. 조삼모사이다. 전자를 후자로 바꾼다고 고맙다고 할 것 같은가? 뭐, 일부는 있겠지. 그냥 다 상관 없고 크롬에서 되게만 해 달라고 하는 사람들. 저 것을 안 깔았더니, 결제 버튼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Amazon처럼, 아무 브라우저에서나 결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좀 똑똑해져 봐라. 아마존 보니까 카드 번호 기억시켜 두고 결제하다가, 물건 수령지 주소를 바꾸니 카드 번호를 다시 넣으라고 하더라. 보안과 편의를 적절히 유지하는 셈이지. 그런데 국내 대형 쇼핑몰 봐라. 전부 매번 카드 종류, 주소, 골라야 한다 (물론 주소록에서). 그렇게 보안이 걱정되면 (사실 걱정되는 거 아니고 의무적으로 그렇게 하겠지만), ActiveX를 써서 접속했을 때 카드와 물건 받는 주소, 전화 번호를 기억시켜 두면, 그 다음부터는 아무 브라우저로 접속해도, 같은 주소로는 복잡한 절차없이 구매를 하게 하면 되잖아. 카드 번호가 노출되는 것도 아니고, 피해자 집으로 해커가 물건을 보낼 일도 없을 테고. 그리고 물건 구입 사실은 SMS로 알려 주고.

제발... 국내 금융, 쇼핑 사이트들아, 좀 똑똑해져라.

나는 아이패드3보다 갤럭시 탭 11.6을 기다린다.

나는 현재 갤럭시 탭 10.1을 가지고 있다. 갤럭시 탭은 작년에 샀었고, 아이패드 2가 있는지 모르고 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패드 2를 쓰는 사람은 회사에 꽤 있었고, 그 사람들 것을 빌려서 잠깐이지만 만져 봤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아이패드를 안 사게 된 것은, 그 낮은 해상도 때문이었다.

아이패드 2로 웹 페이지를 보면 글짜가 흐리멍텅하다. PDF는 솔직히 보기 싫어지는 수준이었다. 그냥 인쇄해서 보고 말지. 그러다가 갤럭시 탭 10.1 광고를 보니, 해상도가 아이패드보다 높았다. 그 외에도 아이패드와는 다르게, 스테레오 스피커를 장착하고 있었고, 카메라 플래시, (Wi-Fi only 모델인데도) GPS, 진동 피드백 기능 등이 있었다. 하드웨어적으로는 내가 원하는 것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작년 7월 정도에 샀으니 그렇게 해서 갤럭시 탭 10.1을 쓴 지가 10개월 가까이 되어간다. 그런데 갤럭시 탭 10.1을 쓰고 있으니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낮은 CPU 성능과 적은 메모리

앱과 앱 전환이 느리고, 동영상의 경우 720P도 끊기는 일이 있다. 메모리는 명목상 1GB이나 실제로는 750MB정도로 나오고, 그나마 항상 350MB 정도는 시스템이 먹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앱을 몇 개 띄워 놓으면 메모리가 부족해 전환 시 앱이 꺼져있는 경우가 있다.

해상도가 더 높았으면

갤럭시 탭 10.1로도 아이패드 2보다 액정이 좋았다. 하지만 이 것도 PDF를 보기에는 약간 모자라더라. 더 높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iPad 3가 고해상도로 나왔으니 갤럭시 탭 다음 버전도 고해상도로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소프트웨어 개선

솔직히 아이패드에 비해 시스템의 부드러움이나 세련도는 떨어진다. 게다가 업데이트도 늦다. 빨리 아이스크림 샌드위치가 나왔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패드보다 갤럭시 탭이 소프트웨어적으로 모든 면에서 열악하다는 것은 아니다. 장단점이 있다. 예를 들면, 아이패드에는 위짓이 없으므로, Wi-Fi/ 블루투스를 끄고 켜려면 일일이 설정에서 매번 찾아 들어가야 한다. 갤럭시 탭에서는 어디에 있든지 시스템 메뉴에서 쉽게 조정이 가능하다. 그리고 iOS에는 토런트 클라이언트가 없다. 안드로이드는 애플이 허용해 주지 않는 부류의 애플리케이션이 풍부하다. 예를 들면, 웹 브라우저만 해도 FireFox, Chrome 등이 더 있다. 하지만 서로 장점은 배워야 하는 법.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개발자도 iOS를 좀 참고해서, 부드럽고 세련된 이미지를 주도록 인터페이스를 좀 개선할 필요가 있다.

아이패드3는 고해상도라는 장점이 있다. 갤럭시 탭 11.6은 아무래도 올 해 여름 (8월) 정도는 되어야 나올 것 같다. 갤럭시 탭 10.1도 미국에서 6월, 한국에서 7월에 나왔으니까. 기다리기 지겨우니 그 동안 아이패드3를 사서 테스트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는 갤럭시 탭 11.6이 더 가지고 싶다. PDF를 보려면 더 큰 화면이 필요하다. 아이패드의 4:3보다는 갤럭시 탭의 16:9가 가로 너비 맞춤 모드로 PDF를 볼 때 더 글자가 크게 보인다.

갤럭시 탭 11.6에 바라는 것

아이패드 3를 들어 보니 무겁더라. 나는 갤럭시 탭 10.1이 가벼워서 마음에 든다. 그리고 아이패드처럼 뒷 면이 매끈한 철로 되어 있는 것이 싫다. 갤럭시 탭이 플라스틱이라고 싸구려 느낌이 난다고 하지만 뒷 면에 나무 빗금 처리가 되어 있어, 손으로 잡아 보면 안 미끄러진다. 플라스틱이라 열 전도도 알루미늄보다 덜한 것 같다. 미안하다. 나는 예쁜 것보다 실용적인 게 더 좋더라.

그러니 갤럭시 탭 11.6을 만들 때 아이패드 3 따라하지 말고 그냥 10.1의 전통을 이어서 성능만 개선하고 사용자들이 지적한 문제만 고쳐라. 너무 이것저것 바꾸면 갤럭시 탭이라는 브랜드의 통일성이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나는 10.1 그대로에다가 해상도 높이고 CPU 성능 높이고, 메모리만 늘여도 10.1에서 11.6으로 바꿀 것이다. 테그라 3를 쓴 아수스 트랜스포머 프라임을 테스트해 보니 1080P도 아주 가뿐히 잘 돌아가던데...

다음의 모 부류들...

다음같은 사이트에 가 보면, 아이패드 3, 갤럭시 탭 11.6 두 개 중 한 쪽 편을 들어 그 한 쪽이 대단한 기계이고 한 쪽은 쓰레기라고 단언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 조건 없이 무턱대고 "어느 게 더 낫다"라고 말하는 자는 바보다. 자기가 똑똑한 줄 알겠지만, 그런 자들은 바보이다. 어느 쪽이 나은가는 사람의 용도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그 사람이 무얼 원하는지부터 먼저 듣고 나서 어느 쪽이 낫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Tuesday, April 24, 2012

개거지같은 한국 경찰청 사이버 테러 대응 센터 웹 사이트의 수준

얼마 전에 네이버 ID가 해킹을 당했다. 네이버를 잘 쓰지 않아서 예전에 만들어 둔 비밀 번호를 안 바꾸고 있었더니만, 네이트나 엡손 등 다른 사이트가 해킹당하면서 내 비밀 번호가 유출되었나 보다. 나는 공공 PC에서는 로그인을 안 하므로, 내 잘못으로 비밀 번호가 유출되었을 것 같지는 않다.

네이버 측은 조치도 없이 그냥 경찰청 사이버 대응 센터에 신고하란다. 자기들이 이용자 대신해서 경찰에 수사 의뢰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어쨌든, 내 스스로 시간 내어 사이버 테러 대응 센터 (네탄)에 신고하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 인터넷 프로그래밍의 저질 수준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면서 손을 들었다.

처음에는 맥의 사파리에서 접속을 했다. 신고를 하려면 가입을 하라고 하더군. 가입을 하려고 했다. 제대로 안 되길래 역시나 했다. 그래서 가상 머신의 Windows XP에서 Internet Explorer를 사용해서 접속해 봤다. 실명 인증은 통과하는데, 가입 폼에서 막혔다. 이 무식한 한국 저질 웹 프로그래머들은 항상 고정된 한국식 가입 폼을 쓴다. 나는 집 우편 번호 다 외우고 있는데, 왜 매번 동명 검색해서 넣어야 하는데? 이 거지들... 생일도 직접 못 넣고 폼에서 골라서 넣어야 하나 본데, 버튼을 누르면 스크립트 오류가 발생해 버린다.

욕하면서 최후의 강수를 썼다. 네탄을 신뢰할 수 있는 사이트에 등록하고, 쿠키를 모두 허용, 팝업 모두 허용으로 했다. 물론 가상 머신에 백신도 없다. 그런데 여전히 안 되고, 다시 해도 안 되고, 뭐 "실명 인증 세션이 지났네" 이러면서 안 되다가, 결국 서버 스크립트 오류를 내고 뻗어 버리더라.

로그인 페이지 버튼을 누르면 "아이디나 비번이 맞지 않습니다" 이러면서 공식 기관이 "비번"이런 속어나 쓰고... 어이가 없다. 주민등록번호도 "민번"이라 그러지? 어디 전문대 나와서 학원 속성 교육 받은 아르바이트생 데려다가 사이트 만들었나... 저런 수준의 웹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곳이 과연 사이버 해킹을 대응할 수 있을까 하는 아주 강력한 의문이 들었다.

믿을 곳 없다. 그냥 내가 내 정보 보호해야지.

Saturday, April 21, 2012

크리스천의 무지막지한 야웨 합리화

에스겔 9장 (http://nocr.net/index.php?document_srl=27279&mid=korwrm)을 보라.
그를 따라 성읍을 두루 돌아다니며 쳐 죽여라. 너희 눈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고 그들에게 인정을 베풀지도 말라. 늙은이, 젊은이, 처녀들과 아이들과 여자들을 학살해 폐허가 되게 하라.
이게 크리스천이 더할 수 없는 완전한 사랑과 정의의 신이며 전지전능하다는 신이 직접 한 말이란다. 야웨의 명령을 따른 천사나, 선지자가 한 말이 아니다. 야웨가 직접 한 말이다. 뭐, 문맥을 고려해야 한다고? 앞에 다가 무슨 문맥을 붙여 봐라, 정당화가 되나. 설마 저 늙은이, 젊은이, 처녀, 아이들과 여자들이 모두 오원춘같은 연쇄 살인범이었다고 주장하지는 않겠지? 그 게 현실적으로 말이 되느냐?

물론 뱀이 말을 하고 악마와 천사가 하늘과 땅을 날아 다니는 판타지를 믿는 크리스천에게 뭔들 안 믿기겠느냐. 정당화하기 위해서 저 아이들이 모두 악마처럼 사악하다고 하겠지. 그래서 그런 아이들을 모두 학살하는 게 정의라고 하고 싶겠지. 정말 뇌가 제 기능을 못하게 변형되어 세뇌되어 버리면 어쩔 수 없는 걸까? 하지만 주위를 봐라. 도대체 어느 도시에 늙은이, 젊은이, 처녀, 아이들과 여자들이 모두 오원춘 같은 동네가 있어?

누가 구약에서 야웨가 사람들을 돌로 쳐 죽이라고 한 걸 비판하니까, 골수 크리스천으로 보이는 자가 돌이 하나님의 말씀을 비유한 것이란다. 정말 크리스천들의 아전인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당신이 그 좋아하는 "하나님의 말씀" 덩어리에 뇌가 다 튀어 나오고 피가 사방에 튀기면서 죽을 때까지 한 번 맞아 봐라.

당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모범적이고 선한 사람은 누구지? 간디? 테레사 수녀? 국경 없는 의사회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만약 자기가 반대하는 사람을 모두 쳐 죽이라는 말을 하고 다닌다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 거지? 아, 맞아.. 그들은 사람이고 야웨는 신이니까 신이 하는 것은 사람의 기준으로 볼 수 없다고 하겠지. 그런데 말이야, 그 말을 잘 생각해 봐라. 똑같은 일인데 사람이 하면 미친 짓이라는 걸 당신들도 인정하지? 그런데 단지 신이 했기 때문에 정당한 거야, 맞지? 뭔가 이상한 게 안 느껴져?

어떤 사람이 죽어 가는 사람 10명을 구했는데 1명을 오원춘처럼 잔인하게 죽였어. 당신은 그 사람을 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 약수 10통에 똥물 1 숟가락만 타도 그건 똥물이야. 당신이 그렇게 존경해마지 않는 야웨는 저렇게 사람들을 죽였어. 그런데도 선해?

인정해라. 구약은 무식했던 야만인 이스라엘 부족이 자기네를 통제하고 외부에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이야기이고, 기독교는 그 것을 기반으로 그리스에 널리 퍼져있던 신화와 이념을 끼워 맞춰 만든 것이며, 그것을 로마가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발전시킨 것이라는 것을.

Saturday, April 14, 2012

기계교라는 종교 때문에 자식을 살해한 부모

짜증이 나서 자세히는 읽지 않았다. 다만 기계교라는 종교가 있고, 그 종교에서 자신보다 상위에 있는 다른 사람이 지시한 대로 자신의 자식을 살해한 부모가 잡혔다는 것만 읽었다.

도대체 왜 종교라는 것을 허용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욕한다. 우리가 합의한 인권, 이성, 논리에 어긋나는 주장을 하는 사람을 욕한다. 그런데 왜 똑같은 짓을 하면서 단지 그것이 "종교"이기만 하면 그냥 넘어가야 하는가? 수많은 증거가 서로 뒷받침하고 있는 사실이 있는데, 그것에 위반되는 주장이 왜 종교라는 이유만으로 허용되는 것일까.

종교를 가진 사람은 종교가 유익하다고 한다. 예를 들면 종교를 가진 사람이 봉사 활동, 자선 활동을 많이 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들이 종교가 아니면 얻을 수 없는 것인가? 그것들이 종교 때문에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보다 더 가치가 있는가? 종교가 없어도 봉사 활동을 하는 사람도 많다. 원래 봉사 활동 안 할 사람인데 종교를 가져서 봉사 활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위선이다. 아닌가? 종교가 아니더라도, 봉사 활동의 필요성을 사람들에게 홍보하면 여건이 되는 사람들은 하게 된다. 마음의 평화? 차라리 철학책을 읽어라. 죽고나면 천당간다는 거짓 희망으로 얻는 마음의 평화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한 번 뿐인 인생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들 뿐이다.

종교가 왜 나쁜가. 그것은 어떠한 이성과 근거에도 기반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통 기독교(라고 주장하는 주류들)처럼 당장은 별로 안 해로워 보이는 종교들도, 결국 그 뿌리는 반이성에 근본을 두고 있다. 과학적 증거는 없으나, 그냥 믿으라는 것이다. 종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나. 이런 식으로 이성과 논리를 무시한 사고가 확산되면 거기서 더 나쁜 것들이 나올 토대를 마련하는 길일 뿐이다. 다른 종교보다 기독교에서 수많은 파생 사이비 종교가 나오는 것을 봐라. 기독교가 맹목적인 믿음을 강조하기 때문에 나쁜 놈들이 이 것을 이용하기 딱 좋기 때문이다. 현실을 제발 좀 봐라.

기계교가 뭔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사회에 이성과 논리, 근거를 중시하는 풍조가 널리 퍼져있다면, 저따위 아무 증거도 없는 이야기에 사람들이 빠질까. 자식을 죽이기 전에 정말 기계교가 사실일까라는 생각을 안 했을까.

나는 종교를 존중하지 않는다. 종교를 존중하라는 것은 거짓말하는 사람을 존중하라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내게 종교를 믿으라고 하고 싶거든, 별 어중이 떠중이가 오지 말고, 그 최고 신이 직접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라. 그러면 믿어 주겠다. 무서워서 내 앞에 나오지도 못하면서 자기가 우주 최고이니까 자기를 믿으라고? 내 앞에 나타나라고 이 거지같은 놈아.



Tuesday, April 10, 2012

로지텍 제품은 따로 수신기만 사도 된다!

한국에서 팔지 않는 MS 마우스+키보드 세트 (Wireless Desktop Comfort 5000)를 미국에서 두 개 샀었는데, 모두 수신기가 과열되더니 고장났다. 마우스와 키보드는 멀쩡한데, 수신기가 없어서 못 쓰게 생겼다. 검색해 보니, MS 제품은 수신기와 마우스가 하드웨어적으로 페어링되어 있기 때문에 대체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미국에서 산 거라 교환을 받으면 배송비가 더 들기에 그냥 버렸다.

이 번에 이베이에서 로지텍  MX 1100을 중고로 샀다. 받아 보니 박스도 없이 그냥 비닐에 마우스와 수신기만 들어 있었다. 수신기를 꽂으니 장치 설치 팝업은 뜨는데, 마우스가 반응이 없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마우스 고장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좀 생각해 보니, 이 중고 판매자가 원래 수신기/마우스 짝이 아니고 그냥 창고에 수북히 쌓여 있는 부품들을 적당히 두 개 집어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수신기와 마우스를 페어링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해 보니 로지텍은 가능하단다. 최근에 나온 유니파잉 수신기야 당연히 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래된  MX 1100까지 되는지는 몰랐다. 유니파잉의 경우에는 유니파잉 페어링이라는 다른 프로그램을 필요로 하고, MX 1100 같이 유니파잉이 아닌 구형 모델의 경우에는 아래의 페이지에서 프로그램을 받아 실행한다.

http://www.logitech.com/en-us/447/3516

실행하면 수신기를 꽂으라고 한다. 꽂는다. 그 다음 마우스를 껐다가 켜라고 한다. 껐다가 켜니 페어링이 되어 쓸 수가 있었다. 아주 간단했다. 단, 인식된 후에 수신기를 한 번 뺐다가 새로 꽂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표준 버튼 외의 나머지 부가 버튼들이 인식되지 않았다.


 이제 로지텍 제품은 수신기 걱정 없이 해외에서 살 수 있을 것 같다.



Tuesday, April 03, 2012

한국어의 대동사? / 韓国語の代動詞?

[한국어]
누구나 잘 알듯이, 영어에는 do라는 대동사가 있다. 이 것이 대동사인 이유는 다른 동사가 할 일을 대신 해 주기 때문이다. 원래 동사는 본동사라고 한다.
영어의 고어에서는 do없이 부정을 표현했다.
I say not. I know not.
그런데 어느 때부터 (영어 학자가 아니라 자세히는 모른다. 기초 교양 정도 수준이다.) do가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I do not say. I do not know.
잘 보면
say + not = 동사 + not
do + not = 동사 + not
으로 구조가 같다. 즉, 예전에 say가 하던 일을 이제는 do가 하고 있고, 실제 동사 say는 뒤로 밀려있다.

나는, 왜 영어권 사람들이 귀찮게 저런 대동사를 개발했을까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우리 말에도 거의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1)나는 아니 먹는다 (=안 먹는다).
2)나는 먹지 아니한다 (=먹지 않는다).

한 10년 전 쯤 읽은 책에서, 우리 말은 원래 부정이 1)처럼 동사 앞에 오는 게 맞단다. 2)는 일본식 표현이라는데, 정말 일본에서 온 것인지는 다른 학자가 연구하고 있겠지. 일본어라면 私は食べない。처럼 부정어가 뒤에 온다. 위의 2)번 예를 보면 먹다와 아니, 이 두 개만 있어도 될 것을 하다(마치 영어의 do와 같이!)라는 다른 동사가 또 끼어들어있다. 짧게 말할 수 있는 걸 길게 힘들여 말하고 있는 셈이다.

"않다(=아니하다)"를 분석해 보면, 부정어+동사이기 때문에 그 책에서 주장한 원래 한국어의 표현처럼 부정어가 동사 앞에 온다. 그런데, 않다 전체를 하나의 부정어라고 보면, "먹지 않다"처럼 동사의 뒤에 부정어가 온다. 한국어적인 표현을 유지하면서 일본어적 표현을 받아들인 걸까? 나는 학자가 아니라서 연구를 할 수는 없지만, 나중에 관련 연구가 있다면 읽어 보고 싶다.

PS: 좀 관계 없는 이야기지만, 제발 "않좋다" 이렇게 좀 쓰지 말자. 바보도 아니고... 중학교 국어 수업만 들었다면 저 것의 발음은 [안초타]가 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아니면 말을 풀어 보든가. "아니하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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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語]

よく知られているように、英語にはdoという代動詞がある。これが代動詞である理由は、他の動詞の「代わりに」位置を占めているからであろう。この場合本来の同士は「本動詞」と呼ばれる。

英語の古語ではこのdoを使わずに否定を表した。
I say not. I know not.
だが、いつからか(私は英学者ではないので詳しくはわからない)doがその役を代わりにし始めた。

I do not say. I do not know.
よく見てみたら、
say + not = 動詞 + not
do + not = 動詞 + not
であり、構造は同じである。つまり、前はsayの位置だったところに今はdoがあって、本当の動詞sayは後ろに置かれている。

私は、なぜ英語圏の人はそんな風に面倒くさい代動詞を開発したのか考えたことがある。短く言ってもいいことを長く言っているじゃないか。でも、よく考えてみたら韓国語にも似ている現像がある。

1)나는 아니 먹는다 (=안 먹는다).
2)나는 먹지 아니한다 (=먹지 않는다).

十年ぐらい前読んだ本で、韓国語はもともと否定語を1)のように動詞の前に置いたと言っていた。 2)は日本から入ってきた言い方だと書いてあったが、それが本当かどうかは言語の学者が研究しているだろう。日本語なら私は食べない、みたいに確かに否定語は動詞の後に置かれる。上の2)の例を見れば、먹다と아니、この2つだけで表現できることに、하다(まるで英語のdoのように)というもう一つの動詞が入っている。簡単に話せることをわざと長く言っていることだ。

않다(=아니하다)の分析してみれば、否定語+動詞なのでその本で主張している韓国語の元の言い方のように否定語が動詞の前にある。でも、않다をひとつの否定語としたら、먹지 않다のように、動詞の後に否定語が置かれる。韓国語のいいかたを維持しながら日本語的な言い方を受け止めたということか。私は言語学者ではないので研究はできないが、いつかこれについて研究したのがあったら読んでみたい。

OS X Lion 불편한 점 하나 더 추가

Windows의 경우 탐색기나 파일 열기 대화 상자나 실제로는 같은 것이다. 같은 것의 다른 모드라고나 할까? 그래서, 파일 열기 대화 상자에서도 보기 설정을 바꾸거나 파일/폴더를 오른쪽 클릭해서 새 창으로 열거나 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OS X Lion에서는 그렇지 않다. 파일 열기 상자에서 보이는 파일/폴더를 오른쪽 클릭해도 아무런 메뉴가 나오지 않는다. 구현이 다른 것 같다. 큰 문제는 오늘 발견한 것인데, 파일 열기 상자에서 아이콘/섬네일 크기 조정을 할 수 없다.

Windows의 경우에는 탐색기는 파일 열기 대화 상자에서든, 똑같은 인터페이스로 아이콘/섬네일 크기를 256*256에서 16*16까지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그런데 Lion에서는 딱 고정된 작은 섬네일 이미지나, 리스트, 커버 플로 등 몇 가지밖에 고를 수 없다. 아까 사진을 업로드하려고 하는데, 사진 수 백장이 있는 폴더에서 원하는 사진을 하나 고르려니 아주 괴로웠다. 윈도면 섬네일 이미지를 크게 확대해서 보면 되는데, Lion은 그 작은 섬네일을 눈 빠지도록 자세히 보면서 찾아야 한다. 찾다가 포기하고 다른 모드 없나 뒤지다가 커버 플로로 해 보았는데, 이것 역시 수 백 장 중에서 한 장 찾기가 불편하다. 결국 다른 프로그램을 열어서 이미지를 찾은 후, 그 이름을 붙여 넣는 것으로 사진을 업로드했다.

Windows를 쓰면서 Windows가 탐색기가 좋다는 것을 잘 몰랐고, 오히려 불편하다고 생각했었는데, Lion을 써 보니 Windows가 편리하게 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Jobs나 맥 광신도들은 Windows를 쓰레기로 부르지만 Lion을 쓰면 쓸수록 Windows 파일 관리가 상대적으로 잘 되어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Monday, April 02, 2012

Lion의 MobileBackup을 꺼서 SSD 공간을 절약하자.

오늘 디스크 공간을 보니 생각지도 않게 백업이 24GB를 차지하고 있었다. 전처럼 1TB 디스크를 쓰고 있을 때야 뭐 24GB는 신경도 안썼지만, 지금처럼 120GB 디스크를 (OS X에는 89GB) 쓰고 있으니 24GB가 작은 게 아니다. 나는 TimeMachine을 NAS 서버에 설정했기 때문에, 도대체 이게 뭔가 싶었다.
검색을 해 보니, 이것은 Lion의 새 기능으로, 노트북에서는 기본적으로 켜져 있다고 한다. 모바일 특성 상, 백업 파일 서버 네트워크에 접근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로컬 디스크에다가 백업을 한다는 것이다. 혼자 쓰다 보니 서버를 항상 켤 필요는 없어서 안 쓸 때는 끄고는 했는데, 그래서 생겼던 것이다. 여기에 관해서
http://arstechnica.com/apple/reviews/2011/07/mac-os-x-10-7.ars/18

http://dear-apple.com/mobile-backups-are-taking-too-much-space-turn
를 읽어 보자.

뭐, 애플 측 설명으로는 적당히 남은 디스크 공간을 고려해 백업을 하고, 디스크 공간이 모자라면 오래된 것을 알아서 지운다고는 하나, 뭐 그렇게까지 백업을 자주할 필요도 없고해서 나는 기능을 끄고 싶었다.

터미널에
sudo tmutil disablelocal
라고 치면 된다고 한다. 한 번 꺼 봐야겠다. 참고로 위의 명령을 실행하고 재시작해야 한다.

Sunday, April 01, 2012

amoo21.com 다시는 이용 안 한다.

미국에서 뭐 받을 게 있는데, BOX 주소로는 배송을 안 한다고 했다. 내가 쓰고 있는 배송 대행 업체인 PKMALL이 하필이면 BOX 주소여서, 회사의 다른 사람이 쓰고 있는 amoo21.com이라는 곳을 이용하게 되었다. 여기는 주소가 BOX가 아니었거든.

그런데 진짜 더럽게 복잡하다. PKMALL에서는 물건을 주문하고 나서, 게시판에 제품명, 트래킹 넘버, 가격, 산 곳, 이 정도만 적으면 된다. 신청하는데 1~2분 걸리려나. 그런데 이 amoo라는 곳은 배송 신청 폼이 진짜 복잡하다. IE가 아닌 브라우저에서는 광고가 잘못 배치되어 폼을 가려 더 짜증이 난다.

그리고 PKMALL에서는 물건이 오면 SMS로 알려주는데, 여기는 아무 연락이 없다. 내가 몇 번이나 물건 왔느냐고 물으니 그제서야 게시판에 왔다고 답글을 달아 줬다. 게시판에 답글이 와도 메일이나 SMS 등의 통지가 오지 않는다. 매번 로그인해서 게시판에 가서 확인해야 한다.

어쨌든 물건을 두 개 따로 주문했는데 (같은 날에) 잘 몰라서 일단 신청 후 [배송 보류]를 눌러 놨다. 두 개 다 도착했다고 해서 두 개를 같이 배송해 달라고 했더니, 안 된단다. 신청하는 시점에서 묶음 배송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1)두 개를 따로따로 받거나
2)하나를 더 신청하면서 기존 두 개와 같이 배송해 달라고 신청해야 한단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법은 어디에 있지? 고객의 편의는 하나도 없군. 여기가 면세 지역에 있어 부가세를 안 내어도 되고, 무게가 커질수록 배송비가 PKMALL보다 적은 장점이 있지만, 정말 너무나 불편해서 다시는 여기 안 쓸 것이다. 이번 거 배송 받고 나면 사이트 탈퇴할 것이다.

Saturday, March 31, 2012

의대 교수가 노아의 방주가 과학적으로 가능하단다



그 많은 동물이 다 방주 안에? 
김정훈 연세대 의대 교수 한국창조과학회 이사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을 역사상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회의론자들에게, 특히 많은 조롱을 받았던 성경기록 중의 하나는 아마도 창세기에 나와있는 노아의 방주일 것이다. 성경은 기록하기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으나, 노아와 함께 방주에 있던 그의 가족과 동물들은 생명을 보존하였다고 한다(창 7:22-23). 그렇다면, 홍수이후 오늘날 우리가 보는 모든 지상의 동물들은 과거 노아의 홍수 때, 방주 안에서 생명을 보전하였던 그 동물들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말이 되는데, 과연 노아의 방주 속에 그 많은 동물들을 한 쌍씩 실을만한 충분한 공간이 있었을까? 
없지요. 왜 오늘날 우리가 보는 동물만 계산하나요? 멸종되어 화석으로 발견되는 수많은 동물들은 악마가 만든 가짜인가요? 한 쌍으로 어떻게 종족을 유지할 수 있나요? 현대를 보면 개체가 몇 십 마리로 줄어 들면 유전적 다양성 상실로 이미 멸종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의대 교수인데 그런 걸 모르시나요, 모른 척 하시는 건가요?

성경은 방주의 제도를, 길이가 300규빗, 넓이가 50규빗, 그리고 높이가 30규빗이라고 분명하게 기록(창 6:15)하고 있는데, 한 규빗을 대략 45cm으로 보면, 길이가 약 140m, 넓이가 23m, 그리고 높이가 14m가 되어, 방주의 크기는 미국의 철도 화물차량 522칸에 해당하는 부피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화물차량 한 칸에는 대략 240마리의 양을 실을 수 있다고 하니, 방주 안에 양을 싣는다면, 자그마치 125,280마리의 양이 들어갈 수 있게된다. 자, 그러면 이제 지상의 동물 가운데 방주에 들어갈 동물의 수를 헤아려 보기로 하자. 
열차의 화물차 한 칸에 약을 240마리 실을 수 있다고요? 그 상황이 어떤지 생각해 보셨나요? 아마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다닥다닥 붙은 상태겠죠. 그 기준으로 동물이 사는 공간을 계산하다니, 정말 할 말이 없네요. 의대 교수인데 어떻게 그 따위 주장을 하나요? 만원 버스에 사람 100명이 탈 수 있으니까 아파트 한 동 정도 공간이면 수십 만 명은 살 수 있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 같네요.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홍수로 인하여 땅에서 생명의 기식이 있는 육체가 다 멸절할 것이므로(창 6:17),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각각 그 종류대로 한 쌍씩 그 생명을 보전케 하라고 말씀하시었는데(창 6:20), 오늘날 지구상에 살아있는 동물 중 이 범주에 해당하는 것은 우리가 소위 포유류, 조류, 그리고 파충류와 양서류라고 부르는 것들로서, 이들 모두를 합한 종의 수는 대략 17,600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이들을 한 쌍씩 실으려면 35,200마리의 동물이 필요하게 되는데, 이들의 몸의 크기는 각기 다르지만, 한 계산에 의하면 이들을 크기 순으로 배열하였을 때 중간에 위치하는 동물은 대략 조그마한 쥐의 크기에 해당되며, 양보다 더 큰 동물은 대략 1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여유 있게 잡아 이들의 평균 크기를 양으로 생각한다면, 방주에 실어야할 동물의 수는 결국 양 35,200마리에 해당하게되고, 앞서 말한 바대로 방주에는 125,280마리의 양을 실을 수 있으므로 이들 동물을 각종의 수대로 한 쌍씩 싣고도 그 두배 이상의 공간이 방주에는 남게된다는 계산이다. 아마도 방주의 남는 공간에는 노아의 식구와 동물들이 먹을 식량과 그들의 배설물, 그리고 통풍을 위한 여유 공간으로 쓰였을 것이다. 
도대체 이런 거에는 왜 레퍼런스가 없나요? 누가 종의 수가 17600이라고 하나요? 누가 양보다 큰 동물 종류가 11%라고 하나요? 동물들은 다들 3차원 공간에 떠서 일렬로 붙어 있었나요? 그 동물들을 구분해 넣으려면 벽과 층 등이 필요하지 않나요? 그 공간은 왜 계산에서 빠지나요? 그거 다 무시해도 교수님 계산대로 하면 한 동물이 자기 몸의 4배 정도 부피의 공간을 차지할 수 있네요. 그리고 가장 자리에 있는 동물들 빼고는 햇빛도 못 보겠군요. 교수님, 일제 시대 고문 기구 아시나요? 교수님이 빛도 안 들어 오고 교수님 몸 부피의 4배가 되는 공간에서 1년 살아 보실래요? 동물들이 다들 죽은 직사각형 물건이라서 완전 밀착해서 방주에 실렸다고 보고, 남는 공간이 자기 몸의 3배네요? 코끼리가 1년에 자기 몸 무게의 몇 배의 식물을 먹고, 몇 배의 배설물을 내는지 아시나요? 동물들은 뭘 먹었나요? 종 별로 한 쌍 씩 실었는데, 사자가 먹은 식량은 뭐며, 열대/온대/한대에서 온 각 동물들을 위한 환경은 어떻게 유지되고, 동물들은 죽은듯이 그냥 가만히 있었나요? 검색해 보니 2010년까지 발견된 살아있는 포유류/조류/양서류/파충류는 약 2만 5천 종이고, 문제는 곤충이 130만 종이네요.이미 멸종되어서 화석으로 발견되는 수많은 종은 왜 계산에서 빠지나요? 130만 종의 곤충도 홍수에 다 죽었을 텐데, 하느님이 곤충은 그 후에 창조했다는 건가요?

그런데, 여기에서 성경이 말하는 종류(히브리어로 min)이라는 단어가 실제로 오늘날 생물학자들이 정의하는 종을 지칭하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은데, 창조과학자들은 대체로 성경에서 말하는 종류를 적어도 생물 분류학상의 *속*이나 *과*에 해당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방주에 들어갈 동물의 수는 더욱 더 줄어들게 되어 방주는 그들을 수용하고도 더욱 충분한 여유 공간을 가졌을 것이다.

생각하는 자는 믿을 수밖에 없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막연한 추측을 떠나 실제로 계산을 해봄으로서 우리는 성경의 정확함을 발견하게 된다. 위에서 양보다 큰 지상의 동물은 전체의11% 정도라고 했는데, 그러면 그 중에서도 공룡과 같이 몸집이 큰 동물은 과연 어떻게 방주에 실었을까? 생각하는 자는... 그렇다! 동물을 방주에 싣는 목적은 그 종류를 보전하기 위함이므로, 방주에 실리는 동물은 사람으로 치면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나이(young adult)이어야 가장 생식적으로도 적합하지 않았을까? 공룡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몸집도 비례하여 커감으로, 이 나이의 공룡은 아직 그리 방주에 못 들어갈 만큼 크지는 않았지 않았겠는가?! 현대 동물을 보면 생식이 가능한 개체는 이미 거의 자신이 클 수 있는 최대 크기로 자란 것들이요. 공룡 종류가 도대체 몇 종인 줄 알고 하는 소리인가요? 도대체 전세계에 퍼져 살았던 공룡들을 어떻게 사람 몇 명이 다 산 채로 끌어다가 배에 실었나요?

한편,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홍수는 자그마치 1년여나 지속되었다고 하는데(창 7:11, 8:13), 방주 안에서 이들 동물들과 함께 타고 있던 노아의 가족 8명이 그 많은 동물들을 1년 동안이나 돌보는데 이들 8명의 사람만으로 과연 이 일이 가능하였을까? 
불가능하지요.

연구된 바에 의하면, 오늘날 기계화된 최신 설비를 갖춘 공장식의 가축 사육장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전혀 기계화되지 않은 시골에서의 가축 사육의 경우에도 단지 한사람만의 힘으로 수백 마리의 토끼, 돼지와 송아지 등을, 혹은 수천 마리의 비둘기나 암탉 등을 돌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경우는 비교적 자유스러운 시골 환경에서 동물의 교배 등을 통해 보내는 시간을 포함하여 나온 계산이지만, 제한된 공간을 갖는 방주 안에서는 이 같은 일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어 한 사람당 더 많은 동물을 돌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다가 만약에 각 동물들이 필요로 하는 식량을 각기 그들의 우리 곁에다가 비치하는 방법으로 동물들을 방주에 배치하였다면, 동물들에게 식량을 운반하느라 보내는 시간과 노동을 충분히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었을 것인데, 방주의 제도를 알려 주셨던 하나님께서 이와 비슷한 방식의 가장 효율적인 동물 관리 방법을 또한 노아에게 알려 주시지 않았겠는가? 이 같은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8명의 노아의 가족이 한 사람당 약 4,500마리(혹은, 방주에 실린 동물을 분류학상 속의 범주로 본다면, 한 사람당 2,000마리)의 동물을 돌보는 것도 오늘날의 상식에 비추어 보아도 충분히 가능한 일임을 알 수 있다. 
도대체 그 연구는 누가 한 건가요? 한 사람이 외부 사회의 아무 도움 없이 수 백 마리 동물들을 기를 수 있다고요? 똑같은 동물 수 백 마리면 모르겠지만, 한 사람이 하루에 2000가지 종류의 4500마리의 동물을 돌보는데, 2000종의 각각 다른 사료를 자기가 만들어 매일 관리하고 2000종이 요구하는 생활 환경을 유지/관리하고 청소하고 했다고요? 상식에 비추어 충분하다는데, 도대체 누구 상식인가요? 사료를 우리 곁에다가 배치하면 1년 동안 썩지 않나요? 교수님이 2000 종의 동물 배설물을 하루에 치워 보실래요? 교수님 말대로라면 대형 동물원을 그냥 교수님 혼자서 운영할 수 있겠네요. 물리 법칙을 위반하는 "마법"을 부리는 하느님이 뭐 어떻게 잘 해 줬겠지 이러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죠. 마법을 썼다는데 더 이상 무슨 논쟁이 가능하겠습니까.

세상이 홍수로 멸망하고 있는 동안, 방주 안에 있는 동물들은 약 1년에 걸친 적지 않은 기간을 그 속에서 보내야만 되었는데, 방주의 용량은 이들을 다 수용하고도 상당 부분의 여유 공간이 있을 만큼 넓기는 하였지만, 이들의 활동을 제한하였을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대부분의 동물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면이나 또는 이와 비슷한 수준의 활동 둔화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비록 온도나 계절과 같은 주위 환경의 변화에 의하여 그 정도가 조절되고 있기는 하지만, 제한된 공간에 처하거나 몸의 필요에 따라서는 온도나 계절에 아랑곳 없이도 나타난다고 한다. 만약, 방주의 동물들이 평균 이틀에 한번정도 이 같은 활동 둔화기를 가졌다면, 노아의 8식구가 돌봐야될 동물의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게 될 것이며, 그에 따른 식량의 소비도 반으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 만약에 동물들이 4일 중의 3일을 활동 둔화기로 보낸다면, 그 수는 더욱 줄어 한 사람당 1,123(혹은 500)마리의 동물만 돌보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동물들을 권념하사(창 8:1)>라는 말이 나오는데, 우리는 그것이 동면과 비슷한 동물의 활동 둔화 상태이었는지 혹은 어떤 다른 초자연적 돌보심이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형태로든 이들을 잊지 않고 특별히 돌보셨다는 사실이다. 
전형적인 기독교 논리 두 개가 나오네요. 
1)전혀 증명되지 않은 "누가 그러더라", 이렇게 전제를 만들고, 그 다음부터는 그것을 사실로 삼아 그 후의 주장을 증명하기.
2)몰라, 내도 이해는 안 되는데, 하느님이니까 우리가 모르는 어떤 방법으로 잘 하셨겠지.
무슨 동물들이 1년에 3달을 먹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죽은 듯이 가만히 있습니까? 북극곰이나 그렇겠죠. 동물들은 자기 생활에 필요한 공간이 있고, 그 공간보다 좁은 데 갇혀 있으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다는 사실은 아시나요? 현대에서 그런 짓을 하면 동물들 대부분이 스트레스를 받아 상당수가 죽을 것 같은데요? 교수님 주장의 근거는 뭔가요?
다시 반복되는 하느님의 "마법" 논리는 할 말이 없네요.  

그 많은 동물이 다 노아의 방주 안에 있다는 사실이 언뜻 보기에는 믿겨지지 않아도, 알려진 과학적 정보를 토대로 철저한 계산을 하여보면 오히려 그 역사적 사실성을 더욱 뒷받침할 수 있음을 발견하게된다. 미국 창조 과학 연구소의 John Woodmorppe는 노아의 방주에 관한 모든 문제들을 연구하여 <노아의 방주: 그 적합성 연구>라는 역작을 내놓았니 이 주제에 관하여 더 자세히 알기를 원하는 분은 이 책을 구하여 읽어보기를 권한다. 
교수님의 말을 객관적인 말로 다시 옮기면, …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믿겨지지 않더라도, 기독교 근본주의자나 목사들이 주장하는 정보를 토대로 내 편의대로 계산을 하여 보면 오히려 성경 구절을 뒷받침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이겠네요. 장님이 다른 장님한테 묻는다고, 또다른 미친 기독교 신자가 쓴 책을 더 읽어 보라는데, 그게 뒷받침이 되나요? 

-이브의 배꼽, 아담의 갈비뼈-중에서

Wednesday, March 28, 2012

iOS, Windows, Android 일본어를 깨끗하게 보자.

Windows에서도, iOS에서도, 시스템 로캘을 한국어로 했을 경우 일본어 글꼴이 매우 보기 싫게 보인다. 이것은, 일본의 가나와 한자 등이 한글 글꼴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도대체 한글 글꼴에 들어 있는 가나는 왜 이렇게 보기 싫은 걸까? 일부러 보기 싫으라고 만든 것도 아닐 텐데, 왜 이렇게 보기 싫게 생겼는지 모르겠다. 일본어 글꼴로 보는 일본어와 한글 글꼴로 보는 일본어는 정말 천지 차이이다.

Windows의 경우
시스템 로캘을 영어나 일본어로 바꾼다. 이것을 바꾸려면, 제어판의 국가 및 언어 옵션으로 간 후, 가장 오른쪽에 있는 고급 탭에서 비유니코드용 언어나 시스템 로캘 (Windows 버전에 따라 용어가 다름)을 바꾼다. 한글판 Windows는 이것이 기본적으로 한국어로 되어 있다. 이것을 바꾸고 나면 일본어가 일본어 글꼴로 표시되어 깨끗하게 보인다. 물론 한글은 한글 글꼴로 보이므로 차이가 없다. 단, 이렇게 했을 경우, 유니코드를 지원하지 못하는 구식 프로그램, 인코딩 고려 안 한 플래시 사이트들에서 한글이 깨어져 보일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프로그램/사이트는 가능한 이용을 안 하고, 꼭 필요한 경우에는 가상 머신에 시스템 로캘을 한국어로 해 놓고 쓴다.

iOS의 경우
마찬가지이다. 설정에서 일반으로 들어간 후, 다국어인가 하는 곳에서 언어를 영어나 일본어로 바꾼다. 그런데 주의할 것이 있다. 언어가 한국어로 되어 있을 때 영어로 바꿔도 일본어 글꼴이 나오지 않는다. 이 때에는 먼저 일본어로 갔다가 다시 영어로 바꾸면 일본어가 일본어 글꼴로 표시된다. iOS는 2007년에 만들어진 최신 운영체제이므로, 유니코드를 지원 안 하는 애플리케이션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되고, 글자가 깨어져서 못 쓰는 일도 거의 없다. 대부분 별 문제가 없으나, 예를 들면 음악 태그를 유니코드가 아닌 한국어 인코딩으로 넣어 놓았을 경우 음악 태그가 깨어져 보일 수 있다.

안드로이드의 경우
마찬가지이다. 설정으로 가서 언어 및 입력에서 시스템 언어를 영어나 일본어로 바꾸면 된다. 유니코드로 되지 않은 음악 태그가 깨어져 보이거나, 일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프로그램에서 글자가 깨어져 보일 수 있다.

굳이 일본어  뿐 아니라, 영어의 경우에도 한글 글꼴에 들어 있는 영어 문자는 너무 가늘고 못 생겼다. 영어도 영문 글꼴로 표현하면 훨씬 가독성이 높고 선명하다.

전지 전능한 신과 자유 의지

이 내용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을 것이다. 기독교 측에서 저것을 어떻게 해명하는지는 아직 자세히 읽지는 못했다. 몇몇 일반 신자가 자기 마음대로 해명하는 것을 몇 번 들었을 뿐이다.

전지 전능이란,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기독교의 신은 그런 존재이다. 아, 그런데 그 것을 주장하고 나니, 인간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다. 아차... 크리스천 중 누구는,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인간에게만은 자유 의지를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단순하게 문제를 피해갈 수 있을까, 크리스천?

나비 효과라는 것을 알 것이다. 어떤 사건은 많은 사건의 영향을 받는다. 야웨가 단지 인간에게만 자유 의지를 주었다고 치더라도, 미래는 결정될 수 없다. 적어도 지구 상에서 벌어지는 일은. 예를 들어 내가 내일 무엇을 할지 야웨도 모르는 자유 의지가 있다고 치자. 야웨는 내 컴퓨터에게는 자유 의지를 주지 않았고, 이 컴퓨터가 언제 어디에 있게 될 지, 그 미래를 다 알고 있으며, 이 컴퓨터가 고장나고 말고를 야웨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고 치자. 내가 내일 이 컴퓨터를 발로 차서 부술까 부수지 않을까? 내가 내일 이 컴퓨터를 중고로 다른 사람에게 팔아 버리지 않을까? 내가 내일 이 컴퓨터로 무슨 행동을 할 지 야웨가 모르는데, 어떻게 그 컴퓨터의 미래를 알 수 있을까? 컴퓨터 뿐 아니다. 예를 들면 인간은 강에 댐을 만들 수가 있다. 강에 댐을 만들면 수많은 동물의 운명이 바뀌게 되며, 그 지역의 기후가 바뀐다. 인간이 댐을 지을지 말지 야웨가 미리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가 없다.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에. 모른다면, 야웨는 그 주변 기후 변화와 수많은 동물들의 생사도 모르게 된다. 이건 딜레마이다. 어떤 기독교 사이트를 가 봤더니, 신은 시간의 바깥에 있어서 그런 시간의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단다. 무슨 소리야? 구약을 보시지. 신이 시간의 흐름에 영향을 안 받나. 야웨가 나중에 인간이 한 일을 알고는 화를 내서 벌하는 게 한 두 번인가? 시간을 마음대로 되돌릴 수 있다는 건가? 기독교의 궤변과 변명은 끝이 없다. 애시당초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수 백 년의 연구를 거쳐 그럴 듯하고 어렵게 꾸민 후, 변명에 변명을 거듭하고 거짓 증거와 증인을 만들어 이루어진 종교이니 어련할까.

내가 이런 말을 하면, 기독교를 깊게 "공부"한 사람이 "무식한 소리하고 있네, 그게 아니라..." 이러면서 나름대로 설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먼저 그 논리가 성경 구절에 기반하고 있다면 때려 치워라. 성경 자체가 사실인지 아닌지 입증이 안 되었는데 (물론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사실이라고 하니... 양보해서) 그것을 기반으로 증명을 확장해 봐야 의미가 없다. 수학 시간 증명을 봤겠지만, A가 참임을 증명해야 그 A를 기반으로 B가 참이라고 할 수 있다. A가 참인지 먼저 증명하지 않고 그것을 B가 참이라고 증명하는 데 쓰는 것은 안 된다. 그리고 증거가 없는 말장난 논리도 때려 치워라. 야웨는 시간의 밖에 있다는 등... 아무런 증거도 없이 말장난하는 논리라는 것이다. 그런 것은 아무리 어렵게 빙빙 둘러 설명해 봤자 결국 허황된 것이다. 먼저 그 설명의 기반을 현실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에 두어라. 뭐 그러면 결국 다음과 같은 말로 크리스천들은 변명을 마무리짓겠지. "종교는 과학으로 증명될 수 없다." 아, 예, 그렇지요.

오늘도 크리스천들은 뭐가 어떻게 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겠지. 전지 전능한 신이 있다면 미래는 이미 다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기도해 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이고, 전지 전능한 신에게 왜 기도를 하는가? 기도하기 전에 이미 당신이 기도할 내용을 다 알고 있지 않나? 뭐, 자기 암시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도 자체는 웃긴 일이지.

인생은 한 번 뿐이며, 죽으면 영원히 되살아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존재이다. 한 70살까지 살 거라고 계획을 잡고 있겠지만, 그건 베스트 시나리오이고, 사실은 내일 아침 출근길에 죽을 수도 있다. 당신은 아니더라도, 내일 아침 출근길이 죽는 사람이 한국에 적어도 한 명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렇게 짧고 귀한 시간에, 왜 보이지도, 들리지도, 있지도 않은 신과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나... 세상의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더 많지 않나? 그 시간에 고전 한 편을 읽어 보는 게 어떨까? 죽기 전에.

Tuesday, March 20, 2012

태종과 세종, 스티브 잡스와 팀 쿡

작년에 방송되었던 "뿌리 깊은 나무"의 초반부를 재미있게 보았다. 물론 뒤로 갈수록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재미도 없었다. 초반부에 많은 사람이 기억에 남았을 대사는, 태종이 죽기 직전에 세종을 붙잡고는, (정확히는 내가 기억을 못하겠지만 다음과 같은 요지의) "네가 하려는 짓은 멍청한 것이지만,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해 내라, 그래서 후대 사람들이 나의 가장 큰 업적은 너를 다음 임금으로 정한 것이라고 말하도록 해라."라고 한 것일 것이다.

태종과 세종은 성격이 많이 다르다. 태종은 무력을 앞세워 반대 세력들을 죽이고 절대적인 정치를 했지만, 세종은 과학과 지식, 협의를 중시했다. 그런데 태종은 세종을 왕으로 세웠다. 내가 역사를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고, 태종의 아들 중에 워낙 마땅한 인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세종을 왕으로 세울 수밖에 없었다고 그러는 사람도 있었다. 뭐 어쨌든 적어도 태종이 세종을 왕으로 세우는 것을 받아들인 것은 맞을 것이다. 세종이 왕이 되지 못했으면 우리 민족은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끔찍하다. 정말 태종의 최대 업적은 세종을 왕으로 세운 것인 것 같다.

어제 애플의 새로운 CEO인 팀 쿡이 50조 가량을 주주들에게 배당하기로 하는 등의 정책을 발표했다. 스티브 잡스는 유능한 인물이었다. 아무도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다큐멘터리를 보니, 그와 같이 일하려면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 잘은 몰라도, 그의 고집대로,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대부분의 일이 진행되었으리라. 그리고 애플은 사회 기부를 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기부를 하는 일은 좋은 것이지만, 기부를 안 하는 것이 나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든 잡스는 그런 사람이었다. 잡스가 죽기 전인 작년에도 이미 수 십 조 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가지고 있었지 돌려 줄 생각은 안 했다. 어찌 보면, 잡스와 쿡의 관계가 태종과 세종의 관계와 비슷하지 않은가?

태종이 정적을 제거해 놓았기에 세종이 문화를 펼 수 있었듯이,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거대 기업으로 만들어 놓았기에, 팀 쿡이 원하는 바를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가 후계자로 고른 인물이, 잡스가 전혀 하지 않던 일을 한다. 현금 보유의 반이나 되는 큰 돈을 3년에 걸처 나눠 주기로 했다. 쿡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지만, 잡스가 고른 인물이라면 분명히 뭐가 있을 것이다. 잡스의 최대 업적이 팀 쿡을 다음 CEO로 세운 것이 될 수 있을까? 매년 정기적으로 나오는 애플 제품을 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올 해 가을도 기대한다.

워킹 데드 (Walking Dead) 시즌 2 피날레

오늘 워킹 데드 시즌 2의 피날레가 미국에서 방송되었고, 토런트 사이트에 공유되었다. (http://extratorrent.com/torrent/2643150/The+Walking+Dead+S02E13+HDTV+XviD-2HD%5Bettv%5D.html)

좀비 영화를 좋아하는데, 귀신 영화같이 현실성이 없지 않으면서, 긴장감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드라마 속의 좀비는 좀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을 저렇게 썩어 가는 상태로 죽게 하는 바이러스는 충분히 나올 가능성이 있고, 바이러스의 특성 상, 접촉으로 감염될 가능성도 많다. 그러므로 링의 TV 귀신보다는 훨씬 현실적이다. 그리고 긴장감을 주는 것은, 조금이라도 물리면 보통 사람도 저렇게 변한다는 것이고, 조금만 물리면 전혀 되돌릴 치료제나 치료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리지 않을까 걱정을 하면서 보게 된다. 전쟁 영화에서도 사람들이 다치지만, 중상이 아니면 치료를 하면 낫게된다. 하지만 좀비에게 긁히기만 해도 좀비가 되어 버리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어쨌든, 오늘 시즌 2가 끝나면서 한 가지 사실이 발표되었는데, 그것은 이미 모든 사람이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고, 좀비에게 물려 죽지 않더라도, 죽는 순간 그 바이러스 활성화되어 좀비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좀비 영화를 보면서 내가 가진 궁금증이 하나 있는데, 이 것은 그 것을 어느 정도 해결해 준다. 영화를 보면, 좀비들은 사람을 잡으면 팔 다리를 뜯고, 내장을  찢어낸다. 저 상태로 좀비에게 먹힌다면 뼈만 남을 것이다. 그런데, 길 거리에는 약간의 손상만 입은 좀비들이 넘쳐난다. 좀비에게 물려야 좀비가 되는데, 좀비는 사람들을 다 뜯어 먹어 버리는데 어떻게 저렇게 거의 멀쩡한 좀비들이 넘쳐날까? 말이 안 된다. 그런데 그냥 죽어도 좀비가 된다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은 된다.

하지만, 여전히 좀비는 죽은 존재인데 그다지 먹지도 못하고, 생명 활동이 멈춘 상태에서 다른 곰팡이나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아 썩지 않고, 시각과 청각을 가지고 활발하게 움직이고 문을 부수고 사람과 대적해 싸우는 것은 생물학/화학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뭐 그래도 이 것은 드라마이니까 그냥 재미있게 보도록 하자.

오늘 시즌 피날레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죽었는데, 대부분 주인공이 아닌 사람들만 죽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다. 어느 정도 우연은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이렇게 생각해 보면 된다. 실제 저 좀비 세상에서 살아 남은 그룹이 처음에 1000개 있었다고 치자. 운이 좋을 확률이 10%라고 한다면, 조금 지나서 10%만 운 좋게 살아 남는다. 그러면 100개 그룹이 된다. 좀 더 지나서 이번에는 10%의 운이 두 번이나 겹친 아주 운이 좋은 그룹이 10개나 남는다. 더 지나서는, 10% 운이 세 번이나 겹친 아주 운이 좋은 그룹이 하나 살아 남는다. 영화는 그 마지막 그룹을 처음부터 따라가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좀비 드라마나 영화의 결론이 깨끗했던 적은 없다. 그것도 그럴 것이, 저 상태로 된 세상에서 복원이 가능할까? 그래서 이 드라마의 결론은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 원작 만화가 있는 것 같은데, 그 것을 보면 드라마가 재미 없게 될 것 같아 안 보련다. 다음 시즌은 이번 가을에 시작한단다. 오늘 마지막 장면에서 팔 없는 좀비 두 마리를 끌고 다니는 두건 쓴 인물이 비치면서 끝나는데, 검색해 보니 Michonne이란다. 발음이 미션일까, 미천일까? 만화 속의 좀 비현실적으로 강한 인물 같아 보이기는 한데, 다음 시즌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기대가 된다.

Saturday, March 17, 2012

진짜 살만한 키보드/마우스가 없다...

이 게 괜찮으면 저 게 안 좋고, 저 게 괜찮으면 이 게 안 좋고... 예전에는 좋은 것이 있고 단지 돈이 없어서 못 샀는데, 이제는 돈을 들이고 싶어도 마음에 드는 게 안 보인다.

나의 키보드/마우스 이력은 다음과 같다.
2000년 근처 : 얻은 표준 키보드 + 휠 달린 마우스
2002년 근처 : 위의 키보드 + A4적외선 무선 마우스
2005년 : Microsoft Wireless Comfort Desktop 4000 (키보드 + 마우스)
2007년 : 아이락스 6XXX 펜터그래프 키보드 + 위의 마우스
2009년 근처 : Microsoft Comfort Keyboard 2000 + 아이락스 무선 마우스, 스카이 디지털 무선 2.4W, 엑스지온 무선 키보드+ 마우스 세트
2010년 근처 : Microsoft Wireless Comfort Desktop 5000 (키보드 + 마우스), 저가 블루투스 마우스 2 개
2011년 : Logitech Wave Pro, Apple Wired Keyboard

그리고 오늘 아이락스 IRK01W X-Slim 실버  키보드를 샀다. 생긴 건 Apple Wired Keyboard를 그대로 베꼈던데, 키 감이 다르다. 그리고 애플 키보드에는 있는 볼륨 조절 키 등이 없다. 그냥 딱 표준 키만 있다. 그리고 선이 애플 키보드처럼 부드럽지 않아 바닥에 놓으면 쫙 펴지지 않고 구불구불하다. 오늘 마우스도 샀는데, 로지텍 M525다. 이것도 별로 마음에 안 든다. 마이크로 기어 윌이 아니라서, 빠르게 스크롤할 수가 없다. 진짜 마음에 드는 키보드가 이렇게 없나...


내가 원하는 건
애플 유선 키보드(와 같은 윈도 키보드)가 무선으로 나오는 것
맥북의 키보드 같은 키보드가 독립된 무선 키보드로 나오는 것
마우스는 MX 1100 같은 모양이면서 휠을 조금씩 움직일 때 흔들리지 않는 것...

Saturday, March 10, 2012

Survival of the fittest does not mean you have to be mean.

The bad survival of fittest in American TV shows and movies

Recently I saw the last episode of The Walking Dead. In that episode, the group of people where the protagonist belongs was discussing whether they should kill a captured member of a hostile group. The guy is a young man and according to him, he did not do bad things, but he just had chosen to act with the group, because one cannot survive alone in the world where zombies prevail.

Now, most of the people agreed that they had no choice but to get rid of him otherwise he might contact the hostile group and eventually bring a bad situation to the people. One old guy defended the guy from the hostile group, saying if they killed that guy, they would become nothing different from the hostile group. The old guy continued, if they killed that guy just to be safe it would be become like the survival of the fittest, and he did not want to live in a world like that.

I saw another movie called 'In Time', and it that movie also, Darwin's survival of the fittest is used in a negative way. In the movie, a very rich guy who owns thousand years of time said it was just the survival of the fittest that other people were suffering from limited time.

Being fittest is not equal to be strong and ruthless

As we humans have evolved from simpler forms of life, so did everything that are related to us. Sure, for some animals 'fittest' means 'physically strongest', but we (except some Christians) know for us humans, it is not always true. For example, a very smart person may become a doctor and earn more money than a physically strong person who became a construction worker. The smart person may meet a better spouse, and have more chance to have attractive children who will have chances to grow up and reproduce.

Not only intelligence, but other values that we humans think are 'good' will also be appreciated. A kind, thoughtful and generous but physical weak person could meet a better spouse than a bad-tempered, rude but physical strong person does. Yes, for our human species, the survival of the fittest can actually be the survival of the persons who have the values we appreciate.

Things are not fixed as the Bible which was written in thousand years ago, things change and we have the power to change things, too. Even if the survival of the fittest meant the ruthless selfishness before, it cannot be always like that. That is what we humans are capable of.

No argumentum ad consequentiam, please.

It is a different matter whether something is true and whether something is desirable. If X is happening, no matter how you do not like the result you cannot say X is not happening. It is stupid to mention how much you do not like X, when you are debating whether X is true or not. I feel very sad when a weak young animal is attacked and eaten by other animals on TV. All humans feel the same way if he/she is not a psychopath. The survival of fittest in the animal world is often cruel, but you saw that happening on TV. That is how the living things have evolved. Evolution is fact, and if you want to disprove it, bring a single actual evidence not arguments as 'that SEEMS to be too improbable' or 'if it is true the world would be bad".

Sunday, March 04, 2012

당신이 야웨를 선하다고 할 때, 선하다는 기준은 뭐지?

지겹다, 야웨가 선하다는 주장은. 그냥 선한 정도가 아니고, 절대적으로 선한 존재란다. 선의 극치라는 것이지. 정의와 사랑이 넘치고...

나? 나는 별로 선하지 않다. 정의와 사랑이 넘치지도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붙잡혀 노예 생활을 하고 있고, 내게 능력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노예 생활에서 풀어 주고 자유롭게 살게 해 줄 것이다. 그런데 그 선하다는 신이 어째서 "직접" 노예를 사고 파는 법을 가르치고, 노예 제도를 인정하는 것인가?

http://blog.daum.net/plus8291/1569 (레위기 25장)
http://www.youtube.com/watch?v=dDgCnoCMf9k

그건 고대 유대의 이야기잖아, 하나님이 지금 노예를 쓰라는 게 아니잖아!

변명하지 마라. 모든 것을 다 아는 야웨가 노예 제도가 나쁘다는 것을 몰랐나? 당신이 타임 머신을 타고 고대로 갔다고 치자. 초강력 무기를 같이 가지고 가서, 무력으로 모든 적을 다 물리칠 수 있고,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치자. 그 당시 사람들이 노예를 부리고 있고, 노예들이 고생하는 것을 본다면, "이 건 이 시대의 당연한 일이야" 이러면서 그대로 둘 건가? 나 같으면 다 풀어주고, 인간 평등을 가르치겠다. 나같은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어째서 모든 것을 다 알고 선하고 정의로운 신이 그 당시 미개한 사람들과 동조해서 그들과 같은 행동을 하는 거지? 그런 과거의 명령을 왜 현대인들 보고 읽으라고 염치도 없이 책에다가 적어 놓은 거지?

제발, 야웨를 선하다고 하지 마라, 제발. 아니면 선하다의 정의를 사전에서 바꾸든가.

미천한 인간의 기준으로 선악을 논하지 마라. 인간의 눈에는 나쁜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선한 것이다.

그래, 딱 그거다. 우리가 선악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기준이다. 60억명 중 59억 9천 9백 9십 9만 9천 9백 9십 9명이 이렇게 하는 게 선하다고 생각하는데, 한 명은 이렇게 하는 게 선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정신 병자나 사이코패스 등이지. 대부분의 사람의 눈에 악하게 보이고, 그게 악하지 않다고 증명할 수 없다면 그건 악한 것이다. 내가 사람을 죽이면서 내 기준으로는 이건 선한 행동이야, 이래도 아무도 안 받아 줄 것이다.

당장은 나쁜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정의와 계획을 위해 약간 희생하는 것이며, 결국 하나님이 가장 좋은 방법을 택한 것이다.


야웨는 전지전능하고 완벽하다며? 전지전능하고 완벽한데, 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희생을 하지 않는 방법을 못 찾아? 못 만들어? 예를 들어 조두순 사건 같은 것도 어린이 범죄에 대한 사회의 경각심을 일으켜 다른 사고가 일어 나지 않게 하려는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기 위한 것이며, 나영이는 하나님에게 쓰임을 받은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겠지? 그리고 대신 나영이는 천국에 가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고? 내가 야웨라면 그런 목적을 이루면서도 나영이같이 불쌍한 피해자가 없는 방법을 택하겠다? 변명해 봐라. 똑같은 목적을 이루는 데 나영이를 희생하는 신과 나영이를 희생하지 않는 신, 어느 쪽이 더 완벽한가? 야웨가 완벽하다며?

Impossible is Heaven / 天国はありえない / 천국은 있을 수 없다.

Yeah, you heard me. It is impossible. Why? Let me explain. So you think your soul will go to heaven after you die, right? According to you, your body is detached from your 'soul' and rot on the Earth, but your 'soul' will go to a place where there is no pain, no anxiety, no worries, etc.

You have human emotions. No matter how good person you are, you have human emotions. You love someone, you want to do something and you get bored, etc. When many people lives together, inevitably their interests collide. So if your soul is just like you now, and go to Heaven and live with enormous number of other souls there, there must be collisions of interests. That will make you unhappy. Suppose you love a girl. But there could be another guy who love the same girl. You both die and go to Heaven, and you both want to be with her all the time, only you and she. But it is impossible as long as your emotions and way of thinking remain the same as on Earth.

So, Christians might insist that suddenly when you go to Heaven you lose all the desires and emotions and become peaceful. But if so, is that really you? Since your physical body is lost, the only thing that can identify you as you is your consciousness, otherwise you will be indistinguishable from other countless souls. But suddenly your consciousness changes the way you have never been? Is that really you? Just think of what Heaven really would be like.

そう、天国はありえないのだ。なぜ? 今から説明をしよう。キリスト教徒であるあなたは自分が死んだ後に天国に行くと信じているだろう。あなたによると、あなたの肉体はあなたの魂から外されて土の上で腐るが、あなたの「魂」は苦しみや痛み、愁いなどのないところに行く。


あなたは人間の感情を持っている。あなたがいくら良い人だとしても、あなたは人間の感情を持っている。あなたは誰かを愛するし、あなたは何かをしたいと思うし、あなたは退屈になったりもする。たくさんの人が一緒に住むと、人々の欲望が衝突するのは避けられないことである。もし、あなたが今のあなたの意識を持ったまま天国にいき、そこに住んでいる無数の他の存在と一書に住んだら必ずそんな衝突が生じる。それはあなたを不幸にする。例えば、あなたがある女の子を愛するとしよう。でも、この世にその女の子を愛する他の男がいる。あなたとその男は死んだ後一緒に天国に行って、天国でその女の子とふたりきりでいたいと思う。でも、もしあなたの考え方がこの世に生きている時と同じだったらそれは不可能である。


では、キリスト教徒たちはあなたが死んで天国に行ったら生きていた時の欲望や感情を全部なくして安らかな状態になる、といいかもしれない。でも、もしそうであったら、それは本当にあなたなのか? あなたの肉体はすでになくなったため、あなたの存在を区別するのはあなたの意識だけである、そうではないとあなたは他の無数な魂と区別できなくなる。でも、天国に行ったら急にあなたの意識が今までとは全然違うことに変わる? それは本当にあなたなのか? 天国のことを具体的に考えてみよ。それは矛盾だとわかってくるだろう。


그렇다, 천국은 있을 수 없다. 왜냐고? 지금부터 설명을 하겠다. 크리스천인 당신은 자신이 죽으면 천국에 갈 거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당신들의 설명에 따르면, 당신의 육체는 당신의 영혼으로부터 분리되어 땅에서 썩어 가겠지만, 당신의 영혼은 걱정도, 근심도, 슬픔과 불안도 없는 곳으로 간다.


당신은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당신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당신은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수도 있고, 무엇을 하고 싶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지루함도 느낀다. 당신이 죽어서 당신의 의식을 그대로 가지고 천국에 가서 수 많은 다른 영혼들과 같이 산다면 서로의 이해 관계가 충돌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한 여자를 사랑한다고 치자. 하지만 이 세상에는 그 여자를 사랑하는 다른 남자도 있다. 당신과 그 남자는 둘 다 죽어 천국에 간다. 천국에서 당신은 그 여자와 계속 단 둘만 있기를 원하지만, 당신 의식이 지구에 있을 때와 같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 여자와 단 둘만 있기를 원하는 다른 남자도 있고, 그 두 바람은 동시에 만족될 수 없으니까.


그러면 크리스천들은, 천국에서는 살아 있을 때 가졌던 욕망과 감정이 전부 없어지고 평화로운 마음의 상태를 가지게 되기 때문에 그런 걱정이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것은 당신인가? 당신의 육체는 이미 없어졌으므로, 당신의 존재를 나타낼 수 있는 건 당신의 의식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다른 무수한 영혼과 구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천국에 가면, 당신 고유의 감정이 없어지고 더 바라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는 평화로운 상태로 된다? 그건 정말 당신 자신일까? 천국이 어떤 것일지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라. 당신이 존재하는 그런 아무런 걱정이 없는 곳이 존재한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韓国では漢字を使わないのではないか?

いや、違う。韓国の事情は複雑だけど、短い答えは「違う。」である。


では、その理由をこれから述べよう。韓国には「ハングル」という固有の文字がある。これは15世紀に朝鮮の世宗という王が発明した文字で、24字で全ての音を表現する表音文字である。日本のひらがなのようなものだと思えばいいだろう。その前までは韓国には独立文字がなかったので、漢字だけを使っていた。しかも歴史的に韓国の古代の国の政権は支配に中国の制度を利用しようとしたので、例えば地名も人名も中国式に変えた。(現代の韓国の地名、人名は中国式) 元々もあった純粋な韓国語の単語が失って同じ意味の漢字語がそれを代替した場合も多い。例えば、日本では「あした」という日本固有の言葉がある。それを漢字の明日と表記してもそれは「みょうにち」ではなく「あした」である。多分韓国語にも明日を意味する純粋な韓国語があっただろうが、いまは漢字の「来日[r/nae-il]」という単語しか残っていない。


韓国語の語彙の相当な部分を漢字語(大体中国から伝わって漢字を並べることでできている単語)が占めている。今や日常でほとんどハングルだけて書いていても、言葉自体に漢字語があるので、それをハングルという表音文字で表記していることである。それは比喩でいえば、「私は大学で数学を勉強しています。」を「わたしはだいがくですうがくをべんきょうしています。」のように表記しているのに同じだ。ひらがなを使っていても漢字を使っていないとも言えない。


人の名前も中国式になっている。韓国語では純粋な韓国語を漢字の意味を借りて漢字で表記することはない。だから漢字はいつも漢字の音で読まれる。人の名前が漢字でできているのは日本も同じだろうが、韓国の人名は本当の漢字の発音でよまれるというのが違う。韓国の人名は苗字が一字(稀に二字である場合もある)で、下の名前が二字(時々一字である場合もある)でできている。最近は例外的に漢字を使わない下の名前も時々あるが、まだ少ない。


韓国の地名もほとんど中国式で漢字でできている。はるか昔には純粋な韓国語だった地名も朝鮮とかになって漢字に変えた場合がある。例えば、大田[dae-jeon]は昔は「はんばっ」と呼ばれたらしくて、それは文字通り大きい畑という意味である。現在韓国の都市の名前では「ソウル」を除いては全てか中国式名前なっている。


私は韓国の固有の語彙や地名、人名が失われて中国の文化に染まっている今の韓国の状況がとても悔しいと思う。でも、失われたのは仕方ないだろう。数十年まえのハングル専用政策などの影響もあって、いまはほとんど日常で漢字を使うことはない。履歴書で名前を漢字で書いたり、論文とか新聞で漢字を時々みることしかなくて、外国人の観光客のための表示版で漢字があるだけだ。しかし、果たして韓国は日本より漢字を使わないと言えるの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