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December 08, 2015

구글 카드보드 사지 말 것. 가상 현실 (VR)은 아직 먼 것 같다.

서론

삼성이 Oculus와 제휴해서 갤럭시 S6/Note 5에 연결해 가상 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Gear VR 신모델을 최근 출시했고, 꽤 인기가 있는 것 같다. 게다가 몇 달 후면, 몇 년을 질질 끌던 Oculus Rift가 드디어 발매된다. 나는 갤럭시 S6/Note 5가 없기 때문에, 맛보기 용도로 구글 카드보드를 구매해 보았다.

일단 내가 가진 스마트 폰은 1920x1080 해상도에 펜타일 디스플레이를 가지고 있다. 카드보드는 싸게 산 것이기 때문에 품질이 좋을 것은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도 재미는 있을 것 같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미는 없고 한 30분도 안 되어 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여기에는 물론 카드보드 + 펜타일 디스플레이라는 문제도 있겠지만, 지금의 가상 현실 기술 자체의 근본적 문제도 있고 소프트웨어 문제도 있다.

본론

1. 스마트 폰으로 보는 가상 현실 자체의 문제점

스마트 폰은 가상 현실을 위한 전용 기계가 아니다. 그러므로 시스템 인터페이스가 가상 현실을 위해 만들어져 있지 않다. 게다가 가상 현실 앱조차도 가상 현실 부분이 시작하기 전까지, 시작이나 설정 부분 등이 일반 스마트 폰 UI로 되어 있다. 이 게 무슨 소리이냐면, 홈 화면에서 가상 현실 앱을 시작하거나, 시스템 볼륨 조절, 시스템 오리엔테이션 설정, 가상 현실 앱 시작, 가상 현실 앱 설정, 심한 경우 가상 현실 앱 조작을 하기 위해서 카드보드에서 전화기를 꺼내어야 한다. 즉, 매번 조작할 때마다 전화기를 꺼내어 조작하고 다시 카드보드에 넣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이 건 도저히 불편해서 가상현실을 볼 마음이 안 들게 만든다.


2. 카드보드 등 도구의 문제점

이 문제는 고급 VR 도구에서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급 도구는 안 써 봐서 그냥 카드보드 기준으로 말하자면, 전화기 테두리와 카드보드 테두리 등이 다 보인다. 전혀 화면의 내용이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냥 전망대에서 동전 넣고 보는 망원경 속 화면 정도의 느낌일 뿐이다.
그리고 지구는 먼지로 가득하다. 스마트 폰 화면, 카드보드 렌즈 등에 먼지가 있을 수밖에 없고 먼지를 닦아 낸다고 한들, 조작을 위해 스마트 폰을 꺼내 화면을 조작하면 다시 먼지가 붙는다. 이 먼지가 가상 현실 화면에서는 커다란 점이나 실 등으로 보여 시야를 방해한다.


3. 해상도와 성능의 한계

1080p의 펜타일 디스플레이는 평소에 픽셀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상 현실 도구로 보면 픽셀이 보일 뿐 아니라, 보기 싫은 펜타일 매트릭스까지 화면 전반에 선명하게 보인다. 예전 신문에서 사진을 자세히 보면 대각선 점들이 가득한 것처럼 보였는데, 마치 그런 느낌이다. 화질이 안 좋아서 가상 현실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몇 달 뒤에 나올 Oculus도 양쪽 눈의 해상도를 합치면 1080p 정도라고 알고 있다. 과연 픽셀이 보이지 않을까? 보일 것 같다.

그리고 게임이나 입체 렌더링 등에서 딜레이가 느껴진다. 이 점은 S6나 Oculus 등의 더 좋은 CPU를 가진 제품에서는 개선되었을 수도 있다.


4. 소프트웨어의 한계

앱 스토어에서 도시를 가상 현실로 보여 준다는 앱을 받아 보았다. 어떻게 보이느냐면, 내가 360도 돔(dome) 안에 들어가 있고, 그 돔의 벽면이 도시의 사진으로 칠해져 있는 느낌이었다. 전혀 내가 그 도시에 있다는 착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내 주변이 사진으로 덮여 있다는 느낌이었다.  구글 스트리트 뷰의 가상현실도 그런 비슷한 느낌이었다.
구글 카드보드 앱의 가상 현실 비디오에 들어가면 결국 유튜브에서 360도 비디오를 찾아 보여 주는데, 이 인터페이스가 가상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비디오가 시작될 때까지 카드보드에서 전화기를 꺼내어 조작해야 한다.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5. 가상 현실 기술 자체의 한계

적어도 내가 알기로 Oculus든 Gear VR이든 결국 그냥 양 눈에 서로 다른 이미지 두 개를 보여 주는 것이다. 문제는 이 게 근본적으로 현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사람이 눈동자를 움직이거나 초점을 조절해 보는 곳을 조절할 수 있다. 그런데 카드보드에서 보니 이 입체점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할 수가 없다. 즉,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게 아니고, 내게 보이는 것을 수동적으로 보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실제의 사물을 보는 느낌이 드는 게 아니고, 기껏해야 극장에서 보던 3D 영화 화면을 보는 것 비슷한 느낌일 뿐이었다.

정말 현실처럼 보이려면 가상 현실 기기가 사람의 눈동자를 추적하고, 초점을 추적(이 건 가능한지 모르겠다, 사람 눈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해서 거기에 맞는 이미지를 보여 주어야 할 것인데, 아마 이 건 당분간 불가능할 것 같다.

결론

정말 현실이라는 착각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가상 현실을 바란다면 카드보드는 물론이고 곧 나올 Oculus도 그 기대를 만족시켜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특히 카드보드는 거의 정상적 사용이 불가능한 제품으로, 그냥 재미로 한 번 보려면 모를까, 가상 현실 앱을 계속 사용하겠다고 사는 짓은 무모하다고 생각된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나오 듯이, 우리 인간이 현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가상 현실을 체험하는 것은 내가 죽기 전에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