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ugust 23, 2015

파리의 연인 드라마를 다시 보니 왜 이렇게 실망스러울까

군대에 있을 때 파리의 연인을 보았었다. 원래 밤 10시에 TV를 보는 것 자체가 사실 몰래하는 것이고, 야간 근무가 있는 날도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다 보지는 못했다. 한 가지 기억나는 건, 마지막회 하는 날에 야간 근무가 있어서 마지막 회를 못 봤다는 것이다. 어쨌든 당시에 부대원들과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고, 당시의 화제작이었기 때문에, 최근에 파리의 연인을 다시 보았다.

옛날 걸 다시 보면 느끼는 것이지만, 10년만 지나도 본 것을 많이 잊어 버리는 것 같다. 파리의 연인에서 10년 전에도 봤던 걸로 기억나는 부분은 "애기야, 가자"하고 박신양이 피아노 치면서 노래 부르는 부분 두 개이고, 나머지는 완전히 새로 보는 것같이 아무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 드라마를 거의 10년 간 안 보다가 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아주 많이 실망스러웠다.

1. 너무 많은 우연

길거리에서 자동차로 노점상을 받았는데, 마침 그 노점상 주인이 자신의 집 가정부일 확률은? 게다가 세느 강변에서 밤에 우연히 자전거를 고쳐 준 여자를 파리의 옷 가게에서 다시 만날 확률은? 그 여자가 또 자기가 연주하는 바에 친구 따라 올 확률은... 물론 드라마라지만 한 두 번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희박한 확률의 우연이 너무 자주 일어난다.

후반부에 가면, 꼭 중요한 대화를 하는데, 다른 중요한 인물이 거기 근처를 우연히 지나가다 듣는다든가, 우연히 회사에서 마주친다든가 하는 일이 너무나 많이 일어난다. 특히 오주은은 무슨 omnipresent한 신도 아니고, 김정은이 나오면 항상 어디선가 나타나 시비를 건다.

2. 별 동감이 안 되는 사랑의 깊이

박신양과 이동건 모두 김정은을 너무너무 사랑하게 된다.  둘 다 모든 것을 버리더라도 김정은을 택하겠다는 일념으로 움직이는데, 사실 그 이유가 별로 설득력이 없다. 만난 기간도 얼마 되지 않고, 특별히 뭐 대단하게 서로 많이 한 일도 없는데, 그렇게 짧은 시간에 죽을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사실이 현실적이지 않다.

오주은이 박신양하고 결혼하려고 설치는 이유도 공감이 되지 않는다. 단순히 자기가 멸시하던 친구 김정은이 재발인 박신양하고 결혼하는 게 샘 나서 그렇다고 해도 이해가 안 되며, 박신양에게 첫 눈에 반했다고 해도 이해가 안 된다. 처음에는 샘 나서 그런 것처럼 보이다가, 나중에 가면 박신양을 아주 사랑하는 것처럼 나오는데, 박신양은 오주은에게 한 번도 잘 해 준 적도 없고, 둘이 무슨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없다. 단지 박신양이 부자이고, 오주은의 부모가 정략적으로 둘을 결혼시키려고 했다는 것밖에 아무 것도 없는데, 왜 저렇게 쫓아 다닐까?

3. 현실적이지 않은 선악 구분

무슨 초등학생용 전래 동화도 아니고, 나쁜 놈들은 그냥 천성이 나빠서 하는 짓마다 나쁜 짓만 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특히 박신양을 쫓아 다니는 오주은과 제이모터스 사장 역 남자 배우가 그런데, 솔직히 이 세상이 저렇게 대놓고 나쁜 짓만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오주은은 보고 있는 것조차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말투 자체도 진짜 억지스럽게 못됐고, 표독스러운데, 그 게 가끔 그런 게 아니고, 나오는 내내 그렇다. 얼굴 표정도 내내 비꼬고 무시하고 짜증내는 표정이다. 도대체 평소에 늘 저런 식으로 말하고 표정 짓는 사람이 어디 있는지? 초특급 사이코패스 정도나 되어야 할까?

캐릭터가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도저히 공감이 안 된다.

4. 현실적이지 않은 남자 주인공

Fifty Shades of Grey라는 소설이 그렇게 유명하다길래 아마존에서 샘플을 받아 앞 부분은 좀 읽었는데,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유치해서 도저히 봐 줄 수가 없었다. 거기에 따르면 주인공은 30대 초반의 남자인데, 사장으로 돈이 무지하게 많고, 얼굴은 완벽하고, 운동도 잘하고, 머리 좋고, 여러 언어를 말하고, 무슨 헬리콥터인가도 운전하고 세계 빈민 구호 사업을 하고... 기타 등등 도저히 30대 초반에 다 이루기 어려운 것들을 하고 있었다.

이 드라마의 박신양도 거의 마찬가지다. 30대 초반에 재벌 회사의 사장인데, 경영 능력이 뛰어나고, 프랑스어도 잘 말하고, 대학교 때 하키 선수에다가, 피아노까지 잘 치고... 그런데 따르는 여자가 없었는지, 부모가 억지로 결혼시킨 여자 말고는 연애를 해 본 적도 없다고 한다. 도대체 이런 사람이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나. 

이동건 역시 비현실적이다. 잘 생긴 얼굴의 20대, 디자인은 몇 년 간 놀다가 회사에 갑자기 툭 들어가서 기존 직원한테 전혀 도움도 받지 않고 대작을 단기간에 만들 정도로 천재적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드럼 연주도 잘하는데, 여자 친구가 없다.

나는 문득 작가가 여자가 아닐까 싶었다. 왜냐하면 Fifty Shades of Grey도 작가가 여자였기 때문이다. 찾아 보니 역시 이 드라마의 작가가 여자였다. 이 드라마를 쓴 시점에 작가 나이는 30살 정도였다. 현실을 아직 잘 몰라서였나, 아니면 현실을 부정하고 자기의 환상 세계를 드라마로 이룩하고 싶었나.

5. 황당한 결말

사실 결말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상상이었다"라는 말을 어디에선가 들은 것밖에 기억을 하고 있지 않았다. 군대에 있어서 마지막 회는 다시 못 보았고, 그대로 잊혀졌던 것 같다. 다시 보니 차라리 모든 것이 상상이었다고 하는 게 훨씬 더 나았을 것 같다. 이 건 무슨 도플갱어도 아니고...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원래는 박신양이 회사에서 쫓겨 나고 파리로 가서 말단 일부터 새로 하는 새 인생을 시작하다가 김정은과 다시 만나게 되는 이야기였는데, 시청자들이 반대해서 결말이 바뀌었다고 한다. 초반부와 결말부를 미리 프랑스에서 다 찍어서 왔다가, 결말이 바뀌어서 편집해서 썼다고 한다. 하긴, 마지막 화에 박신양이 파리의 자동차 센터에서 정비공으로 일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도저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한국에서 자동차 대기업 사장이었던 사람이 프랑스로 유학 가서 자동차 정비공을 한다는 게 말이 되나?


결론


이 드라마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은 박신양의 사랑해도 될까요 노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나머지는 현실적이지도 않고, 재벌과 출생의 비밀과 우연히 겹겹이 뒤섞인 전형적 한국 드라마인 것 같다. 좋은 영화나 드라마는 몇 년 지나 다시 보면 새로운 감동을 얻을 수 있을 건데, 파리의 연인은 다시 안 보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중에 다시 볼 생각도 없다.

도대체 이런 드라마가 인기가 있는 이유가 뭘까 하고 생각을 했다. 일단 내용으로는 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객관적인 사실은, 이 드라마가 국내에서 엄청나게 인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작품이 좋은 것과, 작품이 인기가 있는 것은 서로 다른 성질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어떤 음식이 몸에 좋은 것과, 입에 맛있는 것이 서로 다른 성질이듯이. 물론 나에게는 이런 드라마를 쓸 재주가 없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없는 능력이라고 해서 모든 능력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파리의 연인 작가는 사람들이 보기를 좋아하는 드라마를 쓰는 능력은 있는 것 같지만, 좋은 작품을 만드는 사람인 것 같지는 않다.

뭐 물론 "좋은 것"의 기존이 사람마다 다를 테긴 하지만.

4 comments:

oakleyses sa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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