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rch 31, 2012

의대 교수가 노아의 방주가 과학적으로 가능하단다



그 많은 동물이 다 방주 안에? 
김정훈 연세대 의대 교수 한국창조과학회 이사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을 역사상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회의론자들에게, 특히 많은 조롱을 받았던 성경기록 중의 하나는 아마도 창세기에 나와있는 노아의 방주일 것이다. 성경은 기록하기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으나, 노아와 함께 방주에 있던 그의 가족과 동물들은 생명을 보존하였다고 한다(창 7:22-23). 그렇다면, 홍수이후 오늘날 우리가 보는 모든 지상의 동물들은 과거 노아의 홍수 때, 방주 안에서 생명을 보전하였던 그 동물들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말이 되는데, 과연 노아의 방주 속에 그 많은 동물들을 한 쌍씩 실을만한 충분한 공간이 있었을까? 
없지요. 왜 오늘날 우리가 보는 동물만 계산하나요? 멸종되어 화석으로 발견되는 수많은 동물들은 악마가 만든 가짜인가요? 한 쌍으로 어떻게 종족을 유지할 수 있나요? 현대를 보면 개체가 몇 십 마리로 줄어 들면 유전적 다양성 상실로 이미 멸종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의대 교수인데 그런 걸 모르시나요, 모른 척 하시는 건가요?

성경은 방주의 제도를, 길이가 300규빗, 넓이가 50규빗, 그리고 높이가 30규빗이라고 분명하게 기록(창 6:15)하고 있는데, 한 규빗을 대략 45cm으로 보면, 길이가 약 140m, 넓이가 23m, 그리고 높이가 14m가 되어, 방주의 크기는 미국의 철도 화물차량 522칸에 해당하는 부피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화물차량 한 칸에는 대략 240마리의 양을 실을 수 있다고 하니, 방주 안에 양을 싣는다면, 자그마치 125,280마리의 양이 들어갈 수 있게된다. 자, 그러면 이제 지상의 동물 가운데 방주에 들어갈 동물의 수를 헤아려 보기로 하자. 
열차의 화물차 한 칸에 약을 240마리 실을 수 있다고요? 그 상황이 어떤지 생각해 보셨나요? 아마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다닥다닥 붙은 상태겠죠. 그 기준으로 동물이 사는 공간을 계산하다니, 정말 할 말이 없네요. 의대 교수인데 어떻게 그 따위 주장을 하나요? 만원 버스에 사람 100명이 탈 수 있으니까 아파트 한 동 정도 공간이면 수십 만 명은 살 수 있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 같네요.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홍수로 인하여 땅에서 생명의 기식이 있는 육체가 다 멸절할 것이므로(창 6:17),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각각 그 종류대로 한 쌍씩 그 생명을 보전케 하라고 말씀하시었는데(창 6:20), 오늘날 지구상에 살아있는 동물 중 이 범주에 해당하는 것은 우리가 소위 포유류, 조류, 그리고 파충류와 양서류라고 부르는 것들로서, 이들 모두를 합한 종의 수는 대략 17,600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이들을 한 쌍씩 실으려면 35,200마리의 동물이 필요하게 되는데, 이들의 몸의 크기는 각기 다르지만, 한 계산에 의하면 이들을 크기 순으로 배열하였을 때 중간에 위치하는 동물은 대략 조그마한 쥐의 크기에 해당되며, 양보다 더 큰 동물은 대략 1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여유 있게 잡아 이들의 평균 크기를 양으로 생각한다면, 방주에 실어야할 동물의 수는 결국 양 35,200마리에 해당하게되고, 앞서 말한 바대로 방주에는 125,280마리의 양을 실을 수 있으므로 이들 동물을 각종의 수대로 한 쌍씩 싣고도 그 두배 이상의 공간이 방주에는 남게된다는 계산이다. 아마도 방주의 남는 공간에는 노아의 식구와 동물들이 먹을 식량과 그들의 배설물, 그리고 통풍을 위한 여유 공간으로 쓰였을 것이다. 
도대체 이런 거에는 왜 레퍼런스가 없나요? 누가 종의 수가 17600이라고 하나요? 누가 양보다 큰 동물 종류가 11%라고 하나요? 동물들은 다들 3차원 공간에 떠서 일렬로 붙어 있었나요? 그 동물들을 구분해 넣으려면 벽과 층 등이 필요하지 않나요? 그 공간은 왜 계산에서 빠지나요? 그거 다 무시해도 교수님 계산대로 하면 한 동물이 자기 몸의 4배 정도 부피의 공간을 차지할 수 있네요. 그리고 가장 자리에 있는 동물들 빼고는 햇빛도 못 보겠군요. 교수님, 일제 시대 고문 기구 아시나요? 교수님이 빛도 안 들어 오고 교수님 몸 부피의 4배가 되는 공간에서 1년 살아 보실래요? 동물들이 다들 죽은 직사각형 물건이라서 완전 밀착해서 방주에 실렸다고 보고, 남는 공간이 자기 몸의 3배네요? 코끼리가 1년에 자기 몸 무게의 몇 배의 식물을 먹고, 몇 배의 배설물을 내는지 아시나요? 동물들은 뭘 먹었나요? 종 별로 한 쌍 씩 실었는데, 사자가 먹은 식량은 뭐며, 열대/온대/한대에서 온 각 동물들을 위한 환경은 어떻게 유지되고, 동물들은 죽은듯이 그냥 가만히 있었나요? 검색해 보니 2010년까지 발견된 살아있는 포유류/조류/양서류/파충류는 약 2만 5천 종이고, 문제는 곤충이 130만 종이네요.이미 멸종되어서 화석으로 발견되는 수많은 종은 왜 계산에서 빠지나요? 130만 종의 곤충도 홍수에 다 죽었을 텐데, 하느님이 곤충은 그 후에 창조했다는 건가요?

그런데, 여기에서 성경이 말하는 종류(히브리어로 min)이라는 단어가 실제로 오늘날 생물학자들이 정의하는 종을 지칭하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은데, 창조과학자들은 대체로 성경에서 말하는 종류를 적어도 생물 분류학상의 *속*이나 *과*에 해당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방주에 들어갈 동물의 수는 더욱 더 줄어들게 되어 방주는 그들을 수용하고도 더욱 충분한 여유 공간을 가졌을 것이다.

생각하는 자는 믿을 수밖에 없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막연한 추측을 떠나 실제로 계산을 해봄으로서 우리는 성경의 정확함을 발견하게 된다. 위에서 양보다 큰 지상의 동물은 전체의11% 정도라고 했는데, 그러면 그 중에서도 공룡과 같이 몸집이 큰 동물은 과연 어떻게 방주에 실었을까? 생각하는 자는... 그렇다! 동물을 방주에 싣는 목적은 그 종류를 보전하기 위함이므로, 방주에 실리는 동물은 사람으로 치면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나이(young adult)이어야 가장 생식적으로도 적합하지 않았을까? 공룡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몸집도 비례하여 커감으로, 이 나이의 공룡은 아직 그리 방주에 못 들어갈 만큼 크지는 않았지 않았겠는가?! 현대 동물을 보면 생식이 가능한 개체는 이미 거의 자신이 클 수 있는 최대 크기로 자란 것들이요. 공룡 종류가 도대체 몇 종인 줄 알고 하는 소리인가요? 도대체 전세계에 퍼져 살았던 공룡들을 어떻게 사람 몇 명이 다 산 채로 끌어다가 배에 실었나요?

한편,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홍수는 자그마치 1년여나 지속되었다고 하는데(창 7:11, 8:13), 방주 안에서 이들 동물들과 함께 타고 있던 노아의 가족 8명이 그 많은 동물들을 1년 동안이나 돌보는데 이들 8명의 사람만으로 과연 이 일이 가능하였을까? 
불가능하지요.

연구된 바에 의하면, 오늘날 기계화된 최신 설비를 갖춘 공장식의 가축 사육장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전혀 기계화되지 않은 시골에서의 가축 사육의 경우에도 단지 한사람만의 힘으로 수백 마리의 토끼, 돼지와 송아지 등을, 혹은 수천 마리의 비둘기나 암탉 등을 돌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경우는 비교적 자유스러운 시골 환경에서 동물의 교배 등을 통해 보내는 시간을 포함하여 나온 계산이지만, 제한된 공간을 갖는 방주 안에서는 이 같은 일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어 한 사람당 더 많은 동물을 돌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다가 만약에 각 동물들이 필요로 하는 식량을 각기 그들의 우리 곁에다가 비치하는 방법으로 동물들을 방주에 배치하였다면, 동물들에게 식량을 운반하느라 보내는 시간과 노동을 충분히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었을 것인데, 방주의 제도를 알려 주셨던 하나님께서 이와 비슷한 방식의 가장 효율적인 동물 관리 방법을 또한 노아에게 알려 주시지 않았겠는가? 이 같은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8명의 노아의 가족이 한 사람당 약 4,500마리(혹은, 방주에 실린 동물을 분류학상 속의 범주로 본다면, 한 사람당 2,000마리)의 동물을 돌보는 것도 오늘날의 상식에 비추어 보아도 충분히 가능한 일임을 알 수 있다. 
도대체 그 연구는 누가 한 건가요? 한 사람이 외부 사회의 아무 도움 없이 수 백 마리 동물들을 기를 수 있다고요? 똑같은 동물 수 백 마리면 모르겠지만, 한 사람이 하루에 2000가지 종류의 4500마리의 동물을 돌보는데, 2000종의 각각 다른 사료를 자기가 만들어 매일 관리하고 2000종이 요구하는 생활 환경을 유지/관리하고 청소하고 했다고요? 상식에 비추어 충분하다는데, 도대체 누구 상식인가요? 사료를 우리 곁에다가 배치하면 1년 동안 썩지 않나요? 교수님이 2000 종의 동물 배설물을 하루에 치워 보실래요? 교수님 말대로라면 대형 동물원을 그냥 교수님 혼자서 운영할 수 있겠네요. 물리 법칙을 위반하는 "마법"을 부리는 하느님이 뭐 어떻게 잘 해 줬겠지 이러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죠. 마법을 썼다는데 더 이상 무슨 논쟁이 가능하겠습니까.

세상이 홍수로 멸망하고 있는 동안, 방주 안에 있는 동물들은 약 1년에 걸친 적지 않은 기간을 그 속에서 보내야만 되었는데, 방주의 용량은 이들을 다 수용하고도 상당 부분의 여유 공간이 있을 만큼 넓기는 하였지만, 이들의 활동을 제한하였을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대부분의 동물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면이나 또는 이와 비슷한 수준의 활동 둔화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비록 온도나 계절과 같은 주위 환경의 변화에 의하여 그 정도가 조절되고 있기는 하지만, 제한된 공간에 처하거나 몸의 필요에 따라서는 온도나 계절에 아랑곳 없이도 나타난다고 한다. 만약, 방주의 동물들이 평균 이틀에 한번정도 이 같은 활동 둔화기를 가졌다면, 노아의 8식구가 돌봐야될 동물의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게 될 것이며, 그에 따른 식량의 소비도 반으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 만약에 동물들이 4일 중의 3일을 활동 둔화기로 보낸다면, 그 수는 더욱 줄어 한 사람당 1,123(혹은 500)마리의 동물만 돌보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동물들을 권념하사(창 8:1)>라는 말이 나오는데, 우리는 그것이 동면과 비슷한 동물의 활동 둔화 상태이었는지 혹은 어떤 다른 초자연적 돌보심이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형태로든 이들을 잊지 않고 특별히 돌보셨다는 사실이다. 
전형적인 기독교 논리 두 개가 나오네요. 
1)전혀 증명되지 않은 "누가 그러더라", 이렇게 전제를 만들고, 그 다음부터는 그것을 사실로 삼아 그 후의 주장을 증명하기.
2)몰라, 내도 이해는 안 되는데, 하느님이니까 우리가 모르는 어떤 방법으로 잘 하셨겠지.
무슨 동물들이 1년에 3달을 먹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죽은 듯이 가만히 있습니까? 북극곰이나 그렇겠죠. 동물들은 자기 생활에 필요한 공간이 있고, 그 공간보다 좁은 데 갇혀 있으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다는 사실은 아시나요? 현대에서 그런 짓을 하면 동물들 대부분이 스트레스를 받아 상당수가 죽을 것 같은데요? 교수님 주장의 근거는 뭔가요?
다시 반복되는 하느님의 "마법" 논리는 할 말이 없네요.  

그 많은 동물이 다 노아의 방주 안에 있다는 사실이 언뜻 보기에는 믿겨지지 않아도, 알려진 과학적 정보를 토대로 철저한 계산을 하여보면 오히려 그 역사적 사실성을 더욱 뒷받침할 수 있음을 발견하게된다. 미국 창조 과학 연구소의 John Woodmorppe는 노아의 방주에 관한 모든 문제들을 연구하여 <노아의 방주: 그 적합성 연구>라는 역작을 내놓았니 이 주제에 관하여 더 자세히 알기를 원하는 분은 이 책을 구하여 읽어보기를 권한다. 
교수님의 말을 객관적인 말로 다시 옮기면, …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믿겨지지 않더라도, 기독교 근본주의자나 목사들이 주장하는 정보를 토대로 내 편의대로 계산을 하여 보면 오히려 성경 구절을 뒷받침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이겠네요. 장님이 다른 장님한테 묻는다고, 또다른 미친 기독교 신자가 쓴 책을 더 읽어 보라는데, 그게 뒷받침이 되나요? 

-이브의 배꼽, 아담의 갈비뼈-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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